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썸준 Sep 05. 2020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7

현지인 집에서 가고시마 가정식을 체험하다

2019.3.25 (월)


오전 9시, 장거리 라이딩에 몸이 아직 적응이 안됐는지 힘들어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않고 방에서 그냥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할 정도로 피곤하였다. 침대 속에서 몸을 뒤척이다가 안되겠다 싶어 일어나서 샤워를 한 후, 기분 전환을 위해 시원한 캔커피를 마시며 오늘 일정을 계획하여 보았다.  


오늘은 전체적으로 여유 있게 가면서 임팩트 있는 이벤트 하나만 하는 게 날 거 같아, 예전에 airbnb에서 숙소를 알아볼 때 알게 된 '가고시마 음식 쿠킹 클래스' 액티비티가 생각 나 오늘 참여가 가능한지 확인해보았다. airbnb 숙박업을 하면서 서브로 쿠킹 클래스도 같이 운영하는 곳인데, 현지인 집에서 현지 음식을 같이 만들고 먹어보면서 그들의 라이프스타일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 같았다. 다행히 저녁 식사 타임 때 참여가 가능하였고, 안그래도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이라 어떻게 가야하나 고민이었는데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차량 픽업(오후 4시)도 가능하다고 하여 픽업도 같이 신청하였다. 


시간을 보니 어느 덧 11시, 방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거 보다, 어짜피 가고시마 중앙역으로 이동해야하니, 액티비티 참여 전에 중앙역에 있는 카페도 가고 쇼핑몰도 둘러보는게 나을 거 같아 중앙역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12시가 거의 다 되어 가고시마 중앙역으로 가는 트램을 탔다. 트램도 이제 몇 번 타봤다고 긴장하지 않고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중앙역으로 향하는 2번 트램에 몸을 실었다.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하던데 낮부터 하늘에는 구름이 한가득이었다. 


얼마 안있어 가고시마 중앙역에 도착하였다. 트램역에 내려 아뮤플라쟈에 있는 스타벅스로 가는 길목에는 젊은 사쓰마의 군상(若き薩摩の群像)이 자리잡고 있었다. 1865년, 중앙 막부의 허락 없이는 유학이 금지되었던 당시, 사쓰에이 전쟁을 통해 앞선 서양 문물을 경험한 사쓰마 번은 번 차원에서 극비리에 젊은이들을 영국으로 유학 보내 선진문물을 배워오게 했고 돌아온 이들이 훗날 일본 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우리도 당시 해외 유학 파견을 통해 개화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분명 있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근대화에 성공했는데 우리는 왜 실패했는지, 웅장하게 서 있는 기념비를 쳐다보고 있으니 울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이런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국가 선진화에 힘써 일본을 앞서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이 가슴 깊은 곳에서 강하게 밀려 올라왔다. 


중앙역에 위치한데다 점심시간대라 그런지, 스타벅스 카페 안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두어 시간 정도 책도 읽고, 앞으로의 여행 방문 예정지에 대한 정보 탐색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구경 차 바로 옆에 있는 아뮤플라자 프리미엄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맨 윗층인 7층부터 둘러보았다. Tower Records라는 음반가게에 먼저 들어가보았는데, 서점 어학코너에서의 한국어 위상과는 달리, 매장 내 K-pop 음반의 규모가 J-pop에 못지 않게 꽤 컸고 K-pop 음반을 살펴보는 학생들도 많았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 곳 가고시마에도 한류가 없진 않구나를 느낄 수 있어 뿌듯했고, 젊은 사쓰마 유학생 동상의 위엄에 못지 않게 우리 아이돌 그룹의 위상 또한 높아 보였다. 현지 젊은이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국어도 배우고, 나아가 이들도 우리를 배우러 한국에 가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도 선진국이 되는 그 날이 오길 한 번 더 기원해보았다.  

음반가게에서 나와, 아랫층에 있는 도큐핸즈를 둘러보려고 하였으나, 급작스럽게 배가 고프기 시작하였다. 얼마 안있으면 쿠킹 클래스라 일부러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매장만 둘러보려고 했는데, 안되겠다 싶어 다시 내려와 아뮤플라자 지하에 있는 푸드코트로 향하였다. 


가볍게 요기하기에는 맥도날드 버거가 날 거 같아 '테리타마'라는 메뉴를 주문한 후 자리를 잡았다. 평일 낮 시간치고 푸드코트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교복 입은 학생들이 많이 보여 놀랐다. 방과 후 친구들과 모여 간식 먹고 놀다 가는 거 같았는데, 중고등학생들도 크게 공부에 대한 압박 없이 대체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창 생활을 보내는 거 같았다. 많은 사람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독서실 책상을 연상케 하는 1인용 테이블이었는데, 혼자 먹는 사람이나 그 주변 사람이나 서로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라, 카페에서도 느꼈던거지만, 홀로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이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버거를 먹고 나가는 길에, 사보텐이라는 카츠산도 가게를 지났는데, 배가 덜 찼는지 포장을 너무 먹음직스럽게 잘해놔 3종 카츠산도를 하나 집어들고 푸드코드를 빠져나왔다. 일본의 포장 스킬, 역시 대단하고 우리가 배울 부분이 많은 거 같았다. 


'한국인은 시간을 잘 지킨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 약속시간 15분 전에 픽업 장소인 중앙역 동쪽 출구 쪽으로 이동하였다. 사전에 호스트께서 픽업할 차량 이미지와 픽업해주시는 분(남편) 사진을 보내주셔서, 쉽게 찾겠지 하면서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벌써 저 멀리 픽업 차량이 서 있는 것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일찍 온다고 왔는데 나보다 빨리 와있다니, 일본 사람들이 약속 시간보다 미리 와 있는 걸 중시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좀 더 차량에 가까이 다가갔다. 사진 속 그 분이 차량에서 나와 스케치북에 'June'이라고 쓴 것을 보여주시며 맞냐고 여쭤보시길래, 맞다고 하고 인사를 한 후 차량에 탑승하였다. 


마중을 나오신 분은 타케시 상인데, 시골 아저씨 특유의 정감 가는 인상이었다. 가는 동안 짧은 일본어와 영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오늘 메뉴는 무엇인지, 못 먹는 음식은 있는지, 가고시마에 벚꽃은 언제 만개하는지, 한국사람들은 주로 뭘 먹는지 등의 캐쥬얼한 대화를 나누었다. 

경사가 심한 산 하나를 넘어 가고시마의 서쪽 동네로 오니 시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동네가 나왔고, 얼마 안 가 타케시상 집에 도착하였다. 


차에 내려 마당을 둘러보는데, 은은하게 밀려오는 흙과 풀내음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앞마당에 토종닭 4마리가 머리를 앞뒤로 흔들어대며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이 재밌었다. 집 안에서 호스트 히카리 상이 나오셔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집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는데, 2층 주택으로 1층은 내외께서 사용하시고 2층에는 3개 방이 있는데 airbnb용으로 운영하신다고 하였다. 


집 안 부엌으로 들어갔다. 오늘 만들 메뉴가 무엇인지 여쭤보니, 규동과 '타케노코'가 메인이고 사이드로 아게와 미소국 등을 만들 예정이라고 하셨다. 밥은 타케시 상 담당인데, 전날 물에 불려놓은 현미를 팟(pot)에 담아 주방 밖에 있는 '로켓' 불에 밥을 짓는다고 하시는데, 오늘은 밖이 추워 실내에 있는 화로를 사용하실 거라 하셨다. 실내에 있는 화로는 가고시마 스타일은 아니고, 훗카이도와 같은 추운 북쪽 지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인데, 히카리상이 추위를 타는 편이라 따로 설치를 했다고 하셨다. '타케노코'는 우리말로 죽순인데, 봄에만 나는거라 많은 가고시마 사람들이 봄에 즐겨먹고, 싱싱할 때는 생으로 먹으나 오늘 타케노코는 하루이틀 지난 거라 구워서 먹을 예정이라고 하셨다.

히카리 상이 나보고 평소에 요리를 하냐고 여쭤보시길래, 거의 안하는 편이라고 하니, (내가 하겠다고 나서지 않기도 했지만) 요리를 직접 해보라고 하시진 않고 옆에서 도울게 있으면 도우라고 하셔서 그냥 구경만 하기로 하였다. 요리 중간에 텃밭에 있는 파를 뽑으러 같이 나갔는데, 파 윗쪽 녹색부분을 잡고 위로 땡기니 한참 후에 땅 깊은 곳에서 흰 머리 부분이 쓱 나오는 것이 신기하였다. 파를 뽑자마자 껍질은 벗겨서 바로 밭에 버리셨는데, 버리면 아까 그 토종닭들이 와서 먹든다고 하셨다. 

주방과 화로 위 음식들 조리가 다 되었다. 다른 음식들은 먹어본 적이 있어도, '구운 타케노코'는 처음이라 어떤 맛인지 궁금하여 가장 먼저 먹어보았다. 씹었을때 아삭한 식감과 풍겨나는 봄 느낌나는 맛이 인상적이었다. 

식사 중에 나눈 이야기들은 재미있고 유익하였다. 저번주에 가고시마 대학에 갔는데 사람이 없었다고 하니 일본 학기는 4월부터 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물론 춘분 공휴일이긴 했지만 학기 전이라 사람이 없는 이유가 있었구나하며 무릎을 치기도 하였고, 드라마 얘기가 나와서 일본 NHK 대하 드라마 중에 '세고돈'과 '사나다 마루'를 안다고 하니, 일본인 모두 방영되는 대하 드라마를 챙겨보는 것은 아니고 자기네 지역이 배경으로 나오는 드라마만 보고 그렇지 않으면 거의 보지 않는다고 하여 지역주의는 어딜가나 있구나라며 껄껄대며 웃기도 하였다.  

식후 디저트와 커피를 내주셨는데, 최대한 현지 음식 및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신경써주셔서 너무 감사하였다. 게스트하우스에 묵거나 쿠킹클래스에 참여한 사람들 대상으로 지도에 출신지를 표시하고 있는데 나한테도 부탁을 하셔서 표시를 해드리고,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집을 나서면서 히카리 상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다시 가고시마 중앙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타케시 상 차에 몸을 실었다.  

가고시마 현지 가정집뿐만 아니라 가정식도 체험해보고, 궁금한 것에 대해 여쭤볼 수도 있었고, 이들과 네트워크도 형성할 수 있어서, 단순 요리 체험 이상의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더 식사를 하러 가봐야겠다 싶었다. 


차를 타고 가고시마 중앙역쪽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졌다. 내가 우산이 없는 걸 아셨는지 중앙역 말고 호텔 쪽에 내려주신다고 하여 텐몬칸으로 말씀 드린 후 텐몬칸에서 하차해서 호텔로 복귀하였다. 아까는 정신없이 얘기하느라 몰랐는데 방에 들어오니 긴장이 풀렸는지 피로감이 급격히 밀려왔다. 아직 저녁 9시 전이라 피곤하다고 바로 자기에는 조금 이른 거 같아, 피로도 풀 겸 가고시마에서 센토(대중목욕탕)는 아직 가본 적이 없어 방문도 해볼 겸, 텐몬칸과 중앙역 중간 쯤에 위치한 기리시마온천(霧島温泉) 센토에 가보기로 하였다. 


호텔에서 슬슬 걸어 기리시마 온천에 도착하였다. 오래되어 보이는 외관과 실내 모습에 역사가 있고 현지인들이 즐겨 찾을 거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남녀가 들어가는 입구는 달랐지만, 안 쪽에서 요금을 받는 아주머니는 한 명으로 중앙에서 양 쪽 모두를 관리하시는 게 독특하였고, 개인 락커가 있지 않고 바구니에 본인 짐을 담아 선반에 놓고 입욕하는 것이 '우리는 남에 물건에 손 안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다만, 수건과 샴푸는 본인이 지참하던가 현장에서 별도로 구매해야 했는데 이 점은 우리 대중 목욕탕과 달랐다.  

일본은 확실히 우리와는 대중탕 이용하는 문화가 달랐다. 때 빼고 광을 내기 위해 목욕탕에 가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하루 일과 후 지친 몸을 녹이고 푹쉬기 위한 용도로 센토를 이용하는 경향이 강한 거 같았다. 요금도 390엔으로 우리나라 대비 저렴한 편이었는데, 그만큼 일상에서 중요하고 많이 이용한다는 점이 가격에 반영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탕에 몸을 여러 번 녹이고 나와 호텔로 복귀를 하였다. 몸이 노곤노곤해졌는지 방에 다시 들어오니 눈꺼풀이 무거워 눈이 스스르 계속 감기려고 하였다. 내일은 라이딩 계획은 없지만, 그래도 가고시마 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예정이라 너무 늦지 않게 잠에 들기 위해 몸을 침대 속 깊숙이 넣었다. 그래도 몇 일 됐다고 처음에는 불편했던 침대가 지금은 편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이전글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