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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준 Oct 18. 2019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2

일본인 라이프스타일 관찰을 위한 첫 발걸음, 키워드는 배려와 성숙

2019.3.20 (수)


아침 7시, 어제 자기 전에 세팅한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고쓰키(甲突) 강변을 한 바퀴 뛰고 올 계획이었는데, 알람 소리에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려고 했으나 몸살 기운이 확 돌아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현지 생활 첫날부터 괜히 무리했다가 남은 일정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까 봐 좀 더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설쳤는지, 여행 준비한다고 무리하면서 쌓인 피로가 지금 터졌는지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다. 


2시간 정도 더 잔 후에 나갈 채비를 해서 카페로 항하였다. 오전에 컨디션 회복 차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오늘 일정도 좀 더 정교화하고 싶었고, 카페만큼 현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호텔 주변에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들이 있긴 했지만 좀 더 보편적인 모습을 보기에는 체인점이 나을 거 같고 아무래도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도 더 좋을 거 같아 '탈리스 커피(Tully's Coffee)'라는 커피 체인점으로 가기로 하였다. 


일본 카페는 겉으로 보기엔 우리와 비슷해 보였으나, 카페 내부 구조와 직원 서비스 및 방문객 이용 행태 면에서 우리와는 다소 달라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로웠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카페 안에 스모킹 전용 룸이 별도로 존재하고 그 규모도 꽤 크다는 것이었다. 한 동안 카페 내에 흡연공간을 설치했다가 지금은 아예 없애 버린 우리와 달리 일본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일본인들의 흡연율이 엄청 높아 실내 금연 시행 시 예상되는 흡연자들의 반발과 매출 감소를 막기 위해 스모킹 룸을 운영하는 것인가 싶었으나, 검색을 해보니 오히려 흡연율은 한국(20.4%)이 오히려 일본(17.9%)보다 더 높았다. 그렇다면 물론 흡연자 유인을 위한 상업적 목적도 있지만, 별도 공간 마련을 통한 흡연자의 권리도 보장하겠다는 건데, 담배 판매는 허용하면서 동시에 흡연에 대해선 엄격한 잣대를 대는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과는 달리 흡연을 대하는 방식이 뭔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가 쪽 바 테이블 아래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수납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바 테이블에 앉을 때 보통 옆 좌석에 짐을 놓아 5명 테이블에 2-3명 밖에 앉지 못해, 자리를 잡아야하는 고객이나 최대한 많은 손님을 받아야하는 카페 주인 입장에서 모두 손해인데, 테이블 아래 짐을 걸 수 있는 고리 설치 혹은 자리 아래 짐바구니 구비만으로도 모두가 득을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작은 디테일 부분은 아직 우리가 배울 게 많구나 싶었다.  

그리고 주문한 음료/ 음식이 나오면 진동벨로 알려줘 고객이 직접 가져가게 하는 우리와 달리, 주문 후 바로 제공이 어려운 경우 고객에게 번호표를 주고 완료 시 종업원이 직접 테이블로 가져다주는 구조도 일본 특유의 고객 환대 문화가 반영된 거 같아 인상적이었다.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이용 행태도 우리와는 조금 달랐다. 카페를 '작업 하기 위한 공간'이 아닌 '대화를 하기 위한' 혹은 '식사를 위한 공간'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더 강한 거 같았는데, 카페 내에서 업무를 본다던가 독서나 공부를 하는 것보다, 차 한잔 하면서 얘기를 나눈다거나 아니면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나가는 경우를 절대적으로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를 보고 '업무는 사무실에서, 공부는 도서관에서'처럼 일본인들은 무언가를 이용할 때 그 본연의 존재 목적에 맞게 이용하는 경향이 좀 더 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점심시간대에 혼자 와서 조용히 커피에 식사(샌드위치나 파스타)를 하고 나가는 여성들이 꽤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우리나라에 혼밥 문화가 확산되었다고 해도 여성 혼자 카페에 와서 식사만 하고 나가는 경우가 아직까지 많지는 않은데, 혼자 하는 것에 대해 주변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거처럼 보여 우리보다 '홀로' 문화가 훨씬 예전부터 자리 잡혀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오늘 오후에는 가고시마 시립 미술관과 백화점과 쇼핑몰 등을 둘러보면서 현지인 라이프스타일 관찰에 집중하기로 계획을 잡고, 미술관 방문 전에 텐몬칸에 위치한 '쿠마소테이(熊襲亭)'라는 흑돼지 샤브샤브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런치 샤브'를 주문하였는데, 돼지 고기임에도 소고기와 같은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어 가고시마 흑돼지 질이 정말 뛰어나긴 하구나를 알 수 있었고, 이 곳만의 특제소스와 곁들여 먹으니 그 맛이 배가 되었다. 이 곳 역시 음식 맛이 전반적으로 심심했는데 '더운 바닷가 지역=짠 음식'이라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가설이 반드시 맞지만은 않구나, 사고의 유연성을 가져야겠구나라는 생각도 음식을 먹으면서 해보았다. 

샤브샤브 맛 외에 인상적이었던 건, 끓는 물에 고기를 넣었을 때 나오는 불순물을 건지기 위해 '아쿠토리'라는 뜰채를 사용하였는데, 작은 것 하나라도 디테일하게 신경 쓰고 배려하는 일본인들의 습성을 알 수 있었고, 국내 샤브샤브집에도 이와 유사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없다면 우리도 벤치마킹하면 좋을 거 같았다.


텐몬칸을 지나 가고시마 시립미술관(鹿児島市立美術館)에 도착하였다. 미술관에서는 전시 작품 감상보다는 일본인들의 미술관 관람행태는 어떤지, 우리랑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미술관을 처음 설립한 역사 기간에 비례하는 만큼 우리보다는 관람 태도면에서 좀 더 성숙하지 않나 싶었는데, 우선 작품 관람 시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하였으며, 혼자 둘러보기 보단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는 것이 좀 더 보편화되어 있는 거 같았고, 미술관에 와서 작품 관람하는 것이 특별한 날에 하는 행위라기 보단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인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립 미술관을 나와 야마카타야(山形屋) 백화점으로 이동하였다. 1917년에 개점한 100년이 넘은 백화점으로, 지금 봐도 건물 외관이 멋스럽고 웅장했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당시 백화점이라는 개념도 생소했던 조선과 일본간의 국력차이가 실로 엄청 났었구나를 체감할 수 있었다.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주로 방문하는 고객들도 젊은 층보다는 70대 이상의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고령임에도 백화점에 나와 쇼핑도 하고 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는 모습이 같은 연령대의 우리나라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젊고 건강하게 보여, 같은 고령화 사회라고 해도 삶의 질이나 대하는 태도가 우리와는 달라 보였다.   

또한, 우리와 달리 백화점 직원 중에 60대 이상의 은퇴자들도 꽤 많았다. 주 고객이 노년층이다 보니 그들을 응대하기 위함인 거 같았는데, 젊은 직원들과 같이 어울려 일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었으나 계속 보다 보니 오히려 보기가 좋았다. 물론 이들도 세대 간에 갈등이 없진 않겠지만,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젊은 층과 노년층이 동시대를 같이 살아나가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마카타야 백화점을 나와 트램길을 따라 마루야 가든(マルヤガーデンズ)으로 이동하였다. 도쿄에서 방문했던 '디앤디파트먼트'의 가고시마 브랜치가 있는 곳이라고 하여 가봤는데, 야마카타야 백화점과는 달리 아뮤플라자와 연령대가 비슷한 젊은 층들이 주로 방문하는 트렌디한 복합 쇼핑몰이었고, 디앤디파트먼트 뿐만 아니라 '로프트(Loft)', '준코도 서점(ジュンク堂書店)' 같은 관심 가는 매장들도 같이 위치해있었다. 


준코도 서점은 실내가 세련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설이 잘 구비된 그런 특별한 서점은 아니었으나, 지방 서점 치고는 출간된 책은 여기 다 모아놓았다라고 해도 믿겨질 만큼 도서 보유량이 어마어마하였다. 특히 만화의 나라답게 코믹 섹션이 엄청 컸는데, 만화를 보는 것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우리와 달리 이들은 만화 역시 일반 책과 동급이다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거 같았다. 

디앤디파트먼트에서는 d travel 가고시마 편 가이드북에 소개된 관광 명소 및 식당 정보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출국 전에 알지 못했던 특히 가고시마 시외 지역에 대해 다양하게 알 수 있어, 아직 여행 전체 일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천군만마를 얻은듯한 든든한 느낌이었다. 

로프트는 문구, 가정용품, 여행, 헬스&뷰티 같은 다양한 종류의 생활용품을 파는 곳인데, 평소 관심이 많은 문구류 섹션을 오래 둘러보았다. 문구류 중에 파일 정리 케이스, 책상 수납 케이스와 같은 제품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일본이 효율성을 매우 중시하고 그것을 향상시키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잠을 좀 더 자서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루 종일 걸었더니 급격히 피곤해졌다. 방에서 가서 조금 쉬는 게 날 거 같아 가는 길에 '호라쿠 만쥬(蜂楽饅頭)'에서 만쥬와 편의점에서 샐러드를 사서 방에서 식사를 하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2시간 정도 쉬었더니 어느 덧 저녁이 되었다. 아무리 가고시마에서의 일정이 아직 많이 남았다 해도 저녁 시간을 호텔 방에서 보내긴 뭔가 아까워, 차라리 카페에 가서 오늘 일과를 정리하는 게 낫겠다 싶어 텐몬칸에 있는 다른 '탈리스 커피'로 가보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씩 음미하며, 오늘 일본인 라이프스타일 관찰을 위해 방문했던 카페, 미술관, 백화점들을 떠올려보았다.   

카페에서는 일본인들의 '배려'와 '홀로'문화를 볼 수 있었다. 스모킹 룸 설치를 통한 '흡연자에 대한 배려', 직원이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는 '고객에 대한 배려', 수납공간 설치를 통한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통해 이들의 평소 인식 및 태도 속에 배려가 깊게 자리 잡혀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혼자 와서 식사를 즐기고 나가는 여성들을 보고 '홀로' 문화 역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음을 볼 수 있었다. 

미술관에서는 작품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관람 태도가 우리보다는 좀 더 성숙해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백화점에서는 우리보다는 좀 더 역동적인 노년층의 라이프스타일과 젊은 세대와 은퇴세대 간의 상생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현재 이들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의 우리 모습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일은 자전거 라이딩을 할 예정이었으나 일기예보에서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하여, 일정을 변경하여 운영해야 할 거 같았다. 오늘과 비슷하게 가고시마 대학 주변이나 가고시마 중앙역 쪽 쇼핑몰을 둘러보면서 일본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내일은 또 어떤 여정이 펼쳐질지 부푼 기대감을 앉고 깊은 잠을 청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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