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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준 Aug 30. 2020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5

도심 속 공원의 역할과 저가 프랜차이즈가 주는 시사점에 대해 생각해보다

2019.3.23 (토)


어제 안 쓰던 몸을 오랜만에 써서 그런지 라이딩 후에 피곤했었던 것도 있고 피곤한 상태임에도 기분이 좋다고 술을 조금 과하게 마셔서인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온몸이 찌뿌둥하였다. 

물론 오늘 오전은 방에서 푹 쉴 생각으로 어제 기분 좋게 마시긴 했었으나, 막상 당일 아침이 되니 여행지에서의 소중한 시간을 방에서 쉬면서 보낸다는 게 뭔가 아깝게 느껴졌다. 


씻고 나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시원한 캔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할지 정리하고 있는데, 창문 밖에서 어린 아이들이 크게 떠들고 웃는 소리가 들려 내다보았다. 유치원생들이 단체로 선생님과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에 쪄들어 있는 우리 아이들과 달리 이들은 좀 더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자라고 있는 거 같아 그 소리가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듣기에 좋았다.


내일은 카노야 지역으로 라이딩을 할 계획인데, 오늘은 내일 있을 라이딩을 위해 컨디션 회복 차, 어디 멀리 가지 않고 텐몬칸 주변을 둘러보며 현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해보기로 하였다.


오후 1시, 호텔에서 나와 텐몬칸 거리를 따라 쭉 걷는데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터라 갑자기 배고픔이 밀려왔다. 뭘 먹을지 두리번거리다가 여기에 있는 동안 한 번 가봐야하지 했던 아게타테야(揚立屋)라는 사츠마아게 전문점이 눈에 띄여, 사츠마아게로 가볍게 허기를 달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게(あげ)는 '기름에 튀긴 것'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로 치면 어묵 같은 것인데, 사츠마(옛 가고시마 명칭) 지역에서 나는 생선을 으깨 기름에 튀긴 어묵이라고 할 수 있다. 가게 안에 앉을 만한 테이블이 마땅치 않아 어디서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차라리 테이크 아웃해서 중앙공원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면서 먹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다양한 종류의 사츠마아게가 담겨있는 'A세트'를 구매한 후 중앙공원으로 이동하였다. 


아직 날씨가 쌀쌀하긴 했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공원에 나와 한가로이 주말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대부분 그냥 풀밭 위에 앉거나 돗자리를 깔아놓고 누워 있었는데, 장비가 좀 과한 우리나라 한강 텐트족보다는 오히려 이들이 자연을 좀 더 가깝게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벤치에 앉아 짭조름한 사츠마아게를 먹으며 생각에 잠겨보았다.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를 보며 행복해하는 젊은 부부,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무슨 얘기를 하는지 깔깔대며 웃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니,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공원이라는 존재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활력을 얻고 힐링하는데 있어 미치는 영향이 꽤 크겠구나, 우리나라도 도심 속에 자연을 즐기며 휴식할 수 있는 공원들이 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중앙 공원에서 나와 오는 길에 봤던 세리아(Seria)라는 100엔 굿즈샵에 가보기로 하였다. 텐몬칸 상가 지역 내에서 세리아 외에도 다양한 100엔 생활용품 샵들을 볼 수 있었는데, 오래전부터 접어든 장기적인 불경기로 인해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문화가 우리보다 더 굳건히 자리 잡힌 거 같아, 주로 어떤 용품들을 취급하는지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세리아가 위치한 건물로 들어서는 길에, 생각도 못했는데 같은 건물 3층에 텐파라(Tenpara)라는 영화 멀티 플렉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중앙공원에서도 숙취가 조금 남아 있어 방에 다시 가서 쉴까 생각했었는데, 안 그래도 현지에서 영화 관람도 계획하고 있었던 터라, 계속 돌아다니는 것보다 영화 한 편 보면서 쉬는 게 낫겠다 싶었다. 마침 얼마 기다리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는 '그린북'이라는 영화도 있고 해서, 세리아는 영화 관람 후에 보는 걸로 하고, 영화관으로 곧장 올라가기로 하였다. 


영화 티켓은 티켓 발급기에서 화면 메뉴얼에 따라 구매했는데, 단계별로 선택해야 하는 사항들이 우리보다는 디테일한 편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장에서 티켓 구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인터넷이나 모바일보다는 현장 구매를 좀 더 선호하는 거 같았다. 

상영관 입장 전, 일본 영화관 푸드는 어떤지 궁금하여 영화관 푸드의 상징인 '팝콘+콜라'세트를 구매하였다. 독특했던 것은 팝콘과 콜라를 큰 네모 트레이에 담아줬는데, 물론 트레이의 주 용도가 음식을 옮기는 거였지만 팝콘 먹을 때 바닥에 흘리는 것을 트레이가 잡아줄 수도 있어 괜찮은 아이디어다 싶었고, 우리나라 영화관 에스컬레이터 아래 팝콘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떠올려봤을 때 우리도 벤치마킹하면 괜찮을 거 같았다.


티켓 확인 후, 상영관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외국 영화라 그런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일본도 본 영화 상영 전 10분 정도 광고를 보여주는 건 우리와 비슷하였다. 

2시간 정도 상영 후 영화가 끝났는데, 나의 관심은 영화 상영 마지막 부분에 있었다. 예전에 도쿄 여행 때 긴자에 있는 '긴자 시네 스위치'라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영화가 끝나자마자 불이 켜지고 우르르 나가는 우리와 달리, 엔딩 자막이 끝날 때까지 불이 꺼져있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던터라, 그것이 지역 혹은 영화관 특성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일본인들의 공통적인 영화 관람 행태인지 비교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고시마 텐파라 역시 엔딩 자막까지 불이 켜지지 않았고, 대부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공통적인 특징이라 볼 수 있겠구나 싶어, 이들의 영화 관람 행태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제작자들의 노고에 대해 최소한의 예우를 표하는 이들의 표현 방식인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영화관에서 나와 세리아가 있는 2층으로 향하였다. 

판매 제품이 몇 개 카테고리에 치우쳐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주방, 욕실, 문구 등 생활 전반에 필요한 다양한 용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도 전반적으로 저렴했는데, 가격이 저렴하다고 물건의 퀄러티도 같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퀄러티도 꽤 수준급이었다. 

가게 내에 방문객들은 마치 백화점 매장 둘러보듯 물건을 신중히 살펴보고 있었는데, 소득 수준과는 별개로 양질의 물건을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과 그 속에서 그렇게 구매하는 것이 이들의 생활 속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고, 가성비 중시 소비 문화가 보편화되고 성숙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가성비 소비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데, 저가 생활용품 시장에 앞으로 새로이 진출하려는 회사들이 더욱 많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이들과 섞여 물건들을 쭉 둘러보다가 자전거 물통 세척에 필요한 세제와 스펀지를 저렴한 가격(216엔)에 구매한 후 건물 밖으로 나왔다. 


100엔 샵을 둘러봤다고 거리에 있는 100엔 샵들만 눈에 들어왔다. '100 Yen Shop meets'도 보이고, 얼마 안 가 첫날 이온 대형마트에서 봤던 100엔 베이커리 파보리(Favori)도 보였다. 그때는 영업 종료 후라 제품들을 보지 못했었는데, 가는 길에 잘 됐다 싶어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빵 종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100엔이라는 가격이 눈에 확 띄었고 진열되어있는 빵 하나하나 모두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100엔짜리 빵 맛은 어떨 지 궁금해 몇 개를 골라 계산대로 이동하였다. 일반적인 가게와 달리, 계산 전에 고객이 직접 빵을 비닐에 담아 직원에게 주면 직원이 계산해주는 구조가 특이하였다.

100엔짜리 빵 팔아 남는 게 있을까 했는데, 매장 내 판매하는 제품과 인력 운영을 보니, 소수의 인기 제품을 대량 생산에 단가를 낮추고 매장 내 인건비를 최대한 아껴 이익을 남기겠다는 전략이 아닐까 싶었다. 

빵 맛은 100엔짜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꽤 괜찮았는데, 우리도 저성장이 장기화된다면 머지않아 저가 베이커리 프랜차이즈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증가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파보리를 나와 근처에 있는 마루센 서점으로 이동하였다. 위층 만화책 코너부터 돌면서 내려왔는데 준코도 서점처럼 이 곳도 만화책 보유량 어마어마해 일본인들의 만화 사랑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었다. 

어학 코너에서는 아쉽게도 한국어 교재를 볼 수는 없었는데, 그 나라 언어에 대한 관심이 곧 그 나라의 국력을 나타낸다고, 현지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위상이 아직까지는 그리 높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설마 여행 가이드북에도 한국이 없으려나 혹시 하는 마음에 여행 코너에 가보니 다행히 서울 가이드북은 여러 권 보였다. 서울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내용을 보면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서울(한국)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엿볼 수 있었을 거 같아 일본어도 같이 공부할 겸 한국에 돌아가서 볼 서울 가이드북을 하나 구매하기로 하였다. 디앤디파트먼트에서 봤던 d travel 가고시마 편 가이드북도 있길래, 아무래도 믿을만한 현지 가이드북 하나 있으면 여행 계획 시 국내 웹사이트에서 얻지 못하는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아 같이 구매하기로 하였다.  

지하에 있는 문구류 층도 둘러보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였다. 직원분이 어찌나 책을 비닐봉지에 야무지게 정성껏 잘 담아주시는지, 책에 대한 가치뿐만 아니라 그 책을 판매하는 마루센에 대한 신뢰도 같이 올라가는 거 같았다. 일본은 포장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담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는구나를 다시 느낄 수 있었고 이런 것은 우리도 배우면 좋겠다 싶었다.  


지친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우나기노스에요시(うなぎの末よし)라는 장어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가고시마 하면 흑돼지가 워낙 유명해 가고시마와 장어가 잘 연결되지 않긴 하지만, 생산량이 전국 2위일 만큼 장어가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생산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양질의 장어가 많을 터, 어떤 맛일지 부푼 기대를 앉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장어와 밥이 따로 나오는 우나쥬(うな重)를 주문하였다. 소스도 일품이었지만 입 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는 식감이 예술이었다. 나도 옆 자리 할아버지처럼 장어에 맥주도 한잔 곁들이고 싶었으나 내일 예정되어 있는 라이딩이 있으니 무리하고 싶지 않아 장맥(장어+맥주)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 복귀 길에 편의점에 들러 내일 라이딩에 필요한 먹을 것들을 구입 후 방에 복귀하였다. 아직 9시 전이지만, 이미 자정을 넘은 듯한 피로감이 갑자기 몰려왔다. 

내일 카노야 라이딩을 위해 오늘은 일찌감치 자두는 게 좋을 거 같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간단히 내일 일정을 정리한 후 침대에 누웠다. 

왕복 80km가 넘는 코스인데 별문제 없이 잘 갔다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들다가도, 뭔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개척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들뜨기도 하였다. 좋은 컨디션으로 내일을 임할 수 있게 깊은 참을 청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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