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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in Seattle Jun 30. 2024

시애틀 하이킹 10. Wallace Falls

난이도 하. 산불이 난지도 모르고 하이킹을 하다

하이킹을 시작했을 땐 몰랐다. 하늘이 점점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공기가 매캐해지더니, 하늘이 점점 붉어지고, 마치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 것처럼 불길한 붉은빛이 사방을 감싸기 시작했다. 우리가 서둘러 산을 빠져나왔을 때, 드디어 핸드폰이 터지면서 경고 문자를 받았다.




오늘의 하이킹 장소는 Wallace Falls 트레일로, Wallace 폭포는 Lower Wallace Falls, Middle Wallace Falls, Upper Wallace Falls - 아래 폭포, 중간 폭포, 윗 폭포 - 세 개의 폭포로 이어진 긴 폭포를 보러 가는 하이킹 코스이다. 트레일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꽤 많은 차가 있었고, 우리는 의심 없이 하이킹을 시작했다. 트레일의 초반만 하더라도, 주위가 좀 어둡고, 하늘이 살짝 붉은 느낌은 있었지만, 크게 이상한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모르는 채 우리는 계속 위로 위로 위로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일순간 온 세상이 어두워지더니 하늘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오렌지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약 오전 9시 정도의 하늘. 뭔가 점점 어두워지는 트레일


이상하게 매캐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쯤, 이미 목이 따끔따끔하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금생각하면 이미 산불 연기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유해물질과 미세먼지 때문이었을 텐데,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모른 채 계속 산을 올랐다. 하늘이 좀 붉어지는 것 같고, 공기도 탁해지는 느낌이라 주변에 산불이라도 난 건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미 핸드폰이 안 터지는 지역에 들어와 있어서 (시애틀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하이킹을 가면 아직도 핸드폰이 안 터지는 지역이 많다.)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지 몰랐고, 어서 Upper Wallace Falls를 보고 내려가자는 생각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본 Wallace 폭포는 이런 모습. 사진에 뿌연 필터를 씌워놓은 것 같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고, 목은 더 따끔따끔해지고, 머리는 더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서 산을 내려와 달려가듯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으로 돌아와 핸드폰의 시그널이 잡히기 시작하자마자 경고 문자가 울렸다. 아니, 이런 상황인지도 모르고 하이킹을 하고 있었다니...서둘러 이 지역을 떠났다. 시애틀 도심으로 점점 돌아오면서 조금씩 숨 쉬는 것이 편해지고 공기가 편해지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 후로도 며칠 동안이나 시애틀 도심에서도 매캐한 냄새가 공기 중에 머물렀다.


[문자 내용]

공공 안전 경고

이곳은 스카이 밸리 화재 지역입니다. 볼트 크릭 화재에 대한 준비 경고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대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의류, 침구, 수건, 약, 수표, 신용카드, 현금, 신분증, 주소록, 중요한 전화번호, 휴대용 라디오, 손전등 등을 챙기세요. 대피 경로와 반려동물을 어디로 데려갈지 확인하세요.




이 해 9월 시애틀 지역에서는 다른 해에 비해 산불이 상당히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시애틀을 포함한 퓨젓 사운드 지역은 북쪽의 캐스케이드 산맥, 브리티시 컬럼비아, 남서 워싱턴, 동부 워싱턴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심각한 연기와 대기 질 악화를 겪었다. 이 해의 주요 산불 중 하나는 볼트 크릭 산불로, 이로 인해 북서 워싱턴 주의 공기가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데 이 중심에서 하이킹을 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한국처럼 경보 시스템이 빠르지 않고, 무엇보다 핸드폰이 안 터지는 지역이 많다 보니 상황을 파악하는 게 늦어 일어난 황당한 사건이다. 이 날 많은 지역에서 건강에 해로운 수준의 대기 질 경보가 발령되었다고 한다. 대기의 오염 물질이나, 미세먼지 때문에 느껴졌던 목의 따끔거림이나 두통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종말이 온 것 같은 느낌. 오렌지빛 하늘에 떠 있는 새빨간 해.


지구에 종말이 온 것처럼,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변하면서, 새빨갛게 불타던 해는 꽤나 공포스러웠다. 사진에서 보이는 하늘이 대략 오후 12시 정도의 하늘.


워싱턴 주의 산불 시즌은 보통 7월 초에 시작하여 10월 초까지 지속되며, 이 기간 동안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적어 산불 발생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이 기간에 하이킹을 간다면 미리 가려는 트레일 근처 장소들의 산불 정보를 파악해 두자.


(산불을 피해서 ) Let's hike!



3줄 평 (난이도: 하)

- 세상의 종말을 본 느낌

- 근처에서 산불이 나면 머리가 매우 아프고, 목이 따끔거리고 코가 매캐하다

- 산불을 조심하자!


AllTrails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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