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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Aug 13. 2020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할 땐, 계란 간장밥

계란 간장밥에 대한 고찰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할 텐데."


놀랍다. 결혼 10년 차, 삼십 대 후반인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가끔 밥 할 시간이 없어서 라면을 먹을 때, 일요일 늦게 일어나 빵과 우유를 주섬주섬 먹고는 배가 불러서 밥을 먹어야 하나 망설일 때 남편에게 저 말을 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먹는 끼니는 단호박이나 감자를 쪄먹거나 과일을 먹거나 가끔은 그냥 건너뛰기도 하는데 주부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단한 사명감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밥, 즉 쌀알을 먹여야 한다는 이상한 집착이 있다.



"아침밥 안 먹으면 학교 못 가."


8시 20분에는 늘 집을 나섰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나면 노란색 종합과자 선물세트가 들어있던 플라스틱 가방을 챙겨 엄마 앞에 앉았다. 그러면 그 뚜껑을 열어 잔뜩 있는 머리핀과 머리끈을 뒤적거려 머리를 묶어주셨다. 그 뒤에는 밥을 먹어야 했는데 어린 시절에는 몸이 뒤틀리게 밥이 먹기 싫었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아슬아슬하게 끝나갈 때까지 밥을 해결해야 8시 20분에 나설 수 있는데 밥이 목에 잘 넘어갈 리 없었다. 그러면 엄마의 으름장이 시작된다. "아침밥 안 먹으면 학교 못 가."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파야 했던 시절이었다. 개근상이 마치 나의 성실함의 척도라고 여기는 집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라고 꾸역꾸역 학교에 못 간다는 협박(?)에 매번 지고 말았다. 국에 말아서라도 삼키고 김에 싸서라도 먹었다. 지금은 남이 차려주는 아침밥상이 호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호텔에서 자고 일어나서 비몽사몽 한 기분으로 먹는 조식이 그렇게나 맛있다는 걸 말이다. 아침밥 안 먹으면 학교를 못 갔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호강했던 세월이구나 싶다. 아침부터 따뜻한 밥과 반찬은 여간한 성실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호랑이 기운이 솟는 콘푸로스트도 아니고 딸기잼 담뿍 바른 토스트도 아니고 우리 집은 늘 밥을 먹었다. 아침부터 생선이 구워져서 나올 때도 있을 만큼 아침밥은 진지했고 나의 입은 그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진지하지 못했다. 늘 엄마가 떠주는 밥은 많았고 시간은 없었다. '실랑이할 시간에 다 먹었겠다.'라는 말은 지금도 엄마들의 단골 멘트인가 보다. 내 친구들이 아이들한테 그 말을 할 때면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난다.


밥을 씹어도 씹어도 넘어가지 않고 입안에서 부풀어 오르듯이 양이 무럭무럭 늘어날 때, 먹어도 먹어도 이 밥그릇은 화수분인가 싶게 밥이 줄지 않을 때 절망의 얼굴로 앉아있으면 엄마는 계란 프라이를 해서 얼른 밥을 비벼주셨다. 매끈매끈하게 참기름을 두른 계란 간장밥을 손에 쥐어주시면 밥그릇을 잡고 꿀떡꿀떡 삼켰다. 그마저도 입안에서 밥알을 세고 있으면 엄마는 야무지게 숟가락에 담아 입에 넣어주시곤 했다. 어쩜 그리 모든 게 촉촉 할 수 있는지, 지금도 그 계란 간장밥을 떠올리면 입안이 매끄럽다.



자매품 버터 간장밥도 있다. 마가린으로 먹은 기억도 많을 것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쌀을 먹어온 우리는 쌀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민족일 수도 있겠다.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불교문화가 들어오고 살생을 금했다. 육류의 섭취가 제한이 되고 자연스럽게 곡물이 주식이 되면서 채소반찬을 먹는 것이 기본 밥상이 되었으리라. 고려 말 불교가 쇠퇴하고 육식에 대한 선호를 되찾게 된 후에도 '주식'이 되어버린 밥은 늘 중심이 되어 다른 것들을 '부식'으로 만들어버리는 재주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쌀이 탄수화물 덩어리, 다이어트의 적이라며 요즘 이만저만 미움받는 게 아니다. 물론 모든 영양소를 완벽하게 갖춘 식품은 아니지만 곡류 중에서는 우수한 편에 속하는 단백질도 가지고 있고 지질도 있다. 비타민B1도 가지고 있다. 쌀은 완벽하고 좋은 식품이니 섭취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식구에게 밥을 먹여야 하는 이유에 조금이라도 편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이야기해보았다. 삶의 형태가 바뀌었고 식생활이 바뀌었지만 밥을 지어 먹이는 마음의 변화는 없길 바라며 없다고 믿고 있다. 남편은 간장계란밥을 싫어하지만 있는 채소나 열무김치 등에 고추장을 넣어 밥을 비벼주면 한 그릇 담뿍 먹어준다. 식구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단순히 할 일을 했다 라는 기분보다는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해준 기분이 든다. 그러니 날이 더워도, 입맛이 없어도 밥을 잘 챙겨 먹길 바란다.  꼭꼭 씹으면 나는 단맛을 음미하는 시간이 있길 바란다.


어딜 가든 밥 굶는 일 없이 밥 거르는 일 없이 너무 바빠 컵라면으로 대체하는 점심이 인생에 많지 않기를,

누군가의 식구(食口)인 당신이 늘 건강하고 든든하기를 바라는 오후다.





이걸 레시피라고 써도 되는지 모를 계란 간장밥을 만들어 보자.


재료

밥 한 공기(210g)

계란 1개 (특란)

참기름 적당량

간장 1TS (장조림 간장 추천)

깨 조금



1. 계란 프라이를 한다. (식용유보다는 들기름으로 하면 맛이 더 좋다)

2. 계란 프라이를 했던 프라이팬을 기울여 간장을 살짝 데운다는 느낌으로 넣어준 뒤 밥에 부어준다.

3. 참기름을 적당히 두르고 깨를 뿌린 뒤 밥을 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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