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위하여, 가지찜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가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
이상한 입맛이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가지를 좋아했다. 특히 엄마는 가지를 쪄서 손으로 죽죽 찢어 간장 양념으로 무쳐주셨는데 이 물렁하면서도 시원하면서도 양념을 온몸으로 머금고 있는 가지무침이 좋았다. 따뜻한 밥에 올려먹으면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그것만 있어도 밥상이 행복했다. 가족들 중 나만 열렬하게 그 반찬을 좋아한다는 걸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급식을 해서 그 전까지는 도시락을 들고다녔다. 친구들의 입맛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었다. 대부분의 도시락 반찬들은 제육볶음이나 불고기로 시작해서 소시지 부침이나 볶음김치 었다. 누구 하나 도드라지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과 나누어 먹기 좋은 반찬을 위주로 싸주셨으리라. 그래서였을까. 왜 내 여름 도시락에는 가지무침이 없었을까. 나는 그때까지도 가지가 그렇게 미움받는지 몰랐다.
성인이 되고 밖에서 밥을 먹을 기회가 늘면서 밥상의 주된 대화중에 하나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이었는데 ‘저는 가지를 좋아합니다.’라고 자주 대답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3초 안에 3가지 말해보세요!라고 한다면 수박, 가지, 김이라고 대답할 준비가 늘 되어있었다. 그래서 아무 망설임 없이 ‘가지를 좋아합니다.’라고 하면 ‘가지요?’라는 반문이 늘 돌아왔다. ‘아, 저도 좋아해요. 참 맛있죠.’라는 대답은 희귀성을 가지며 심지어 기억 속에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목록이 아주 짤막하게 생길 정도로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저 물컹물컹하고 별 맛없는 가지를 좋아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해야 했다.
유치원생 아이들과 함께 요리수업을 할 때면 싫어하는 채소에 대한 이야기가 더 격렬하게 나오는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당근이 싫어요 양파가 싫어요 오이는 맛없어요 하면서 심지어 그 대열에 가지는 껴주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모 참여 수업을 하면 부모님들도 아이가 오이를 안 먹어요. 당근을 안 먹어요.라고는 하시지만 가지를 안 먹어요를 염려하시는 부모님은 또 안 계시는 것이었다. 가지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가? 아니면 염려할 가치도 없는 채소인 것인가? 나는 한 번씩 슬퍼졌다.
가지는 수분이 94%, 단백질은 1%에 기타 영양소는 그렇게 자랑할만한 것이 없는 채소이다. 안토시아닌 색소가 그나마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안토시아닌 색소인 나스닌과 히아신을 가지고 있는 가지의 보라색을 블루베리의 보라색만큼 건강하게 여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렇게 가지는 별 취급을 못 받고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지의 싫은 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생으로 먹어도 그다지 별 맛이 없고 생으로 씹는 식감은 약간 스펀지 같기도 하고 찌거나 익히면 무른 식감이니 튀김으로 먹거나 하지 않는 이상 쫄깃하고 찰진 것을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는 그렇게 환영할 만한 식감은 아닌 것이다. 맛도 식감도 신통찮지만 가지의 매력은 무엇으로 양념하든 그 양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굴소스를 넣어서 후다닥 볶아내도 그 소스 맛이 따스하게 가지에 배어든다. 최대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가지白-
2009년에 스마트폰을 가지게 됐다.
그 전에는 컴퓨터가 없는 곳에서는 딱히 남 소식을 모르고 살다가 스마트폰이 생기니 여기저기 들여다볼 것들이 많이 생겨났다. 특히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가 줄을 이어 타인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여행에, 음식에, 좋은 풍경에, 이것저것 좋아할 일들이 넘쳐났다. 엄지손가락을 척하니 들고 있는 버튼을 누르고 하트를 누르고 정말 좋아 누르는 것도 있고 보았다는 표시로 누르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누르기도 했다. 그리고 역으로 누군가 나의 사진과 글에 긍정의 표시를 남겨줄 때마다 그것이 기뻤다. 나의 일상과 삶을 좋아해 준다니. 이 얼마나 관심의 표현인가 싶었다. 하지만 늘 빈약한 나의 좋아요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듯했지만 내심 좋아요가 폭발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남이 좋아하는 내 인생. 그것이 빛나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내 인생이 빛나 보일 법한 사진과 말들로 그 공간을 채워나가 보았다. 물론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피곤함을 잘 이겨내는 성실함은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시시하고 무(無) 맛에 가까운 내 일상을 꾸준하게 기록하다 보니 꾸준하게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물론 나와 진한 대화를 나누는 지인들이 대부분이지만 내 일상을 지지해주는 그들의 좋아요는 다정했다. 세련미 없고 독특한 맛이 없어도 내 이야기가 사람들의 이야기로 겹쳐져도 낯설지 않고 되려 그 이야기들을 다 받아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어느 여름날, 바닥에 앉아 밥을 먹어야 했던 성북동 어디쯤에 있는 그 청국장집에서 반바지를 입어 살이 바닥에 찰싹 붙는 중에 소박하게 밑반찬이 나왔다. 그것들을 집어 먹으며 ‘근데 너는 무슨 반찬을 좋아해?’라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가지!’라고 대답하고는 ‘나도!’라고 말하는 친구와 웃으며 가지 반찬을 두 번 더 청하여 먹었던 날이 있었다. 분명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딘가에는 있고 나는 보라색 매끈한 가지를 여전히 사랑한다. 셀럽은 될 수 없지만 가지는 한글을 배우는 카드 첫머리에 등장하며 모두의 텃밭에서 오래오래 키워질 것이다.
재료
가지 1개~1.5개(약 300g)
양념
풋고추 1개, 청양고추 1개
고추장 1.2T
고춧가루 1T
간장 1T
깨 1T
참기름 1T
올리고당 1T
1. 고추를 다진 뒤 모든 양념을 넣고 섞는다.
2. 가지를 1/3 정도 깊이로 칼집을 넣어준다.
3. 양념을 가지 위에 올린다.
4. 찜기에 한 김이 오르고 나면 5~7분 정도 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