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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Sep 15. 2020

그저 가을 아욱 된장국을 끓이는 이야기

계절을 이름에 품은 음식, 가을 아욱 된장국 



날씨가 변하는 순간은 백번은 족히 겪었으면서도 늘 신기하다.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가뿐하게 넘어가니 말이다.


비가 유난했던 올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인 물이 많은 달고 단 수박은 여름 첫 무렵 세 통을 사서 먹은 뒤로는 만날 수 없었고 빗속에서 우중충하게 살아낸 여름이 지나자 산산한 가을이 왔다. 밤에는 창문을 닫고 잔다. 에어컨 전원코드는 뽑아서 정리해두었다. 


책장을 넘기 듯 계절이 바뀌니 음식도 바뀌어간다. 


그 계절의 시작점에서는 늘 계절 이름이 붙은 음식을 떠올리게 된다. 

가을 아욱처럼 가을 꽃게, 겨울 무, 봄 냉이, 여름 열무.. 이렇게 계절을 앞에 붙여 발음할 수 있는 식재료들은 한층 더 깊은 맛이 난다. 이것들을 발음할 때면 마음이 느슨해지면서 작은 것들이 계절을 꽉 채우고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특히나 그중 가을 아욱국을 좋아하는데 가을이 되면 다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가을마다 전어를 먹고 자라지를 않아서인지 전어보다는 아욱이 더 마음에 든다. 물론, 아욱이 자라나는 것을 본 적은 없으나 채소코너를 지날 때, 마침 가을느낌이 물씬한 어느 날 아욱이라도 만나게 되면 지나치지 못하고 한단 집어 들게 되는 것이다. 가을 수확인 느낌으로, 초록 아욱이지만 아욱은 단풍 같기도 하다. 


그렇다, 오늘은 좀 더 자세하게 아욱 된장국을 끓이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렇게 생긴 풀을 먹을 생각을 했다는 건 늘 신기하다. 뭐, 다른 채소를 보면서도 생각한다.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음식을 만드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 위생적으로 전처리된 시간을 단축시켜주고 편리하고 좋은 식재료도 구입을 하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메트로놈을 켜놓은 듯한 박자로 재료를 다듬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콩나물을 다듬을 때 이 많은 것을 언제 다 다듬는담 생각한다. 남은 콩나물을 한 줌 쥐어 올렸다 내려놓을 때면 어차피 내가 아무리 빨라봤자 손이 두 개인지라 더는 빠를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며 언젠가는 다듬겠지 라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만지다 보면 속이 후련하게 끝이 온다. 정박자의 리듬으로 따복 따복 다듬는 건 생각보다 머리가 맑아진다. 



아욱은 이렇게 껍질을 벗겨야 한다. 질깃한 부분을 제거한다. 



아욱은 끝부분에 억센 부분을 자른 후 줄기 끝을 톡 꺾어서 껍질을 제거하면 된다. 생각보다 재미있다. 고구마 줄기도 비슷하게 손질하는데 언젠가 남편을 시켰더니 나보다 더 잘 해내서 놀랐다. 어린 시절에 엄마는 이런 전처리를 종종 시키시곤 하셨는데 손가락을 고물고물 놀리는 것이 꽤나 즐거웠다. 전처리 중에 본연의 향기를 맡아보며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어린아이들에게 어떤 느낌인지를 질문하면 더 즐거운 답이 나온다. 초록 채소를 다듬을 때면 아이들은 숲 속 냄새가 난다 라고 표현을 해주기도 한다. 나는 솔의 눈이라는 음료수의 향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밭에서 일하고 들어오신 할매 옷자락 냄새 같기도 하다. 



바락바락 주물러야 하는 아욱 세척법




'바락바락': 네이버 국어사전                              

바락-바락    발음  [ 바락빠락 ] 

부사    

1. 성이 나서 잇따라 기를 쓰거나 소리를 지르는 모양. 


2. 빨래 따위를 가볍게 조금씩 주무르는 모양. 

  영산댁은 건져 낸 시래기를 곱게 다지고 국 솥에다 된장과 함께 바락바락 주무르고 숙이가 받아 놓은 뜨물을 붓는다. 출처 <<박경리, 토지>>




아욱을 소금물에 넣고 바락바락 주물러야지만 아릿한 맛을 제거할 수 있다. 꼬집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을 이용하여 주물러준다. 그런다고 아욱이 마구 너덜너덜 해지지 않는다. 생각보다 아욱은 튼튼하다. 물을 두어 번 바꿔가며 아욱을 '바락바락'주물러서 헹궈준다. 



건새우를 볼 때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생각은 이상한 연결고리가 있다.




건새우를 국물 요리에 넣을 때, 특히 나처럼 건져내지 않고 함께 먹을 때는 뾰족한 수염과 다리가 아플 수 있다. 키친타월에 감싸서 살살 비벼주면 뾰족한 수염과 다리가 떨어진다. 


엄마는 잔치국수를 잘해주셨다. 알록달록 고명을 다양하게 하여 한껏 예쁘게 국수 위에 올려주셨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맛있다 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심심한 멸치와 새우로 낸 국물 맛을 아이가 맛있다 느끼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노랗고 하얗던 계란지단 맛으로 먹었다. 지방에 사셨던 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자주 오시진 않았는데 할아버지가 오시면 엄마는 잔치국수를 하셨었다. 유난히 기침소리가 무서웠던 외할아버지는 국수를 후룩후룩 잘 잡수셨다. 나는 지금도 멸치와 새우 육수 냄새가 나면 어렴풋한 기억으로 할아버지가 국수를 잡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단 둘만의 애틋한 기억은 없는 나의 외할아버지는 가을날, 육수 냄새와 함께 기억이 난다. 잔치국수 온기처럼 모락모락. 



 

된장국을 끓이는 시간은 늘 특별하다.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 



쌀뜨물에 새우를 넣어 한 김 끓이고 나서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준다. 식사를 준비할 때, 특히 된장국을 끓이는 날에는 나는 여러 사람들을 떠올린다. 보고 싶은 사람이, 끼니를 함께 하고 싶은 그리운 사람들이 떠오른다. 


 된장은 다정함을 가지고 있다. 


조금은 다른 된장이긴 하지만 된장국을 떠올리면 숙소에서 나와 걷던 중 비가 쏟아졌던 도쿄 여행 이튿날이 생각난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 아침밥을 먹었는데 뜨겁던 톤지루 한 그릇이 살짝 축축하게 젖었던 목덜미를 덥혀주었다. 11월이었고 가을의 꼭대기인 날이었다. 


된장은 그렇게 온기를 가지고 있다. 



먹기 좋은 크기로 동강동강 잘라 넣어준다.  



남편과 둘이서만 살아가는 나는 여러 반찬을 놓고 밥을 먹진 않는다. 세 가지 정도의 반찬을 기본으로 밥을 먹는 우리 집 밥상에는 그 밥을 짓는 동안 엄청난 이야기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오른다. 국 안에는 가을도 있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모습도 있고, 아욱을 사들고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오던 길에 이야기도 있다. 한낮의 햇볕은 여전히 뜨겁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 아욱국을 한술 떠 입에 넣고는 포근해진 마음으로 밥공기를 기울여 밥을 쓱쓱 말아서 후룩후룩 저녁을 먹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선풍기를 뜯어 날개를 닦아 말려놓고 앉아 본격적인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그저, 가을 아욱 된장국 한 그릇일 뿐인 이야기였다.  









 

긴팔을 입고 싶어 지는 날이다. 가을 아욱국을 끓여보자. 




재료

아욱 120g

건새우 25g

된장 50g

고추장 20g

마늘 1/2T

홍고추 2개

쌀뜨물 1L


1. 아욱은 껍질을 벗겨주고 소금물에 주물러 씻어준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다.

2. 건새우는 키친타월로 감싸 살살 비벼서 뾰족한 부분을 제거한다.

3. 마늘은 다져주고 홍고추는 어슷 썬다. (대파를 넣어도 된다.)

4. 쌀뜨물에 새우를 넣고 한 김 끓인 뒤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준다. 

5. 거품이 올라오면 걷어주면서 한 김 또 끓여준다.

6. 마늘과 아욱을 넣고 끓여준 뒤 홍고추 또는 대파를 넣고 한번 더 끓여낸다. 

7. 간이 안 맞을 경우 국간장을 1T 정도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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