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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Oct 21. 2020

토요일 3교시가 끝나면 다사랑 분식집에 가자

파삭파삭한 기억, 김말이 튀김

"졸업할 때까지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었어."



토요일은 3교시까지 수업을 했었고 후다닥 청소를 하고 하교를 하면 학교 앞 도로가 묘하게 들뜬 분위기였다.

학교가 네댓 개가 붙어있는 그 도로에는 아직 싱싱하게 떠있는 해만 바라봐도 마음이 동동 뜨는 아이들이 밝게 쏟아져 나왔다. 그래 봤자 집에 가거나 학원에 가거나 가끔씩 햄버거 가게에 가서 웃고 떠들고 하긴 했지만 대체로 별거 없었던 토요일이었다. 금요일 퇴근에 두근거리는 것과는 또 다른, 밝은 토요일 12시가 되기 전 그 하교시간을 종종 떠올린다.


학교에는 매점이 있었다. 과자, 음료수, 빵은 기본이었고 크로켓, 팥 도넛, 꽈배기를 팔았다. 참 이상한 버릇이었지만 과자를 사면 한 봉지를 오롯이 혼자 먹는 게 아니라 반드시 나누어 먹었는데 그게 같은 과자를 사도 그랬다. 혼자 넉넉하게 먹으면 맛이 없었나 보다. 책상 한가운데 넓게 과자봉지를 갈라놓고 두어 번 집어먹으면 없는 게 맛이었다.


평일에는 늦은 시간까지 야간 자율을 학습을 했고 3층 교실에서는 작은 학교 정원과 그 옆에 불 켜진 매점이 보였다. 끝나면 학원에 갔고 체육시간을 빼면 햇볕을 보는 일이 크게 없었던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그러니 3교시가 끝나고 학교를 나서는 발길에는 햇볕도, 웃음도 묻어 나왔었나 보다.


학교 앞에는 많은 분식집이 있었다. 우리 학교를 제외하고서라도 네댓 개의 학교가 있었던 곳이라 어딜 가도 사람이 많고 어떤 집이든 맛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종종 가던 곳은 허리를 굽히고 엉금엉금 자리에 앉아야 했던 다락이 있던 다사랑 분식집이었다. 낡은 양은 쟁반을 받침대 삼아 끓여 나온 떡볶이 냄비를 내어주는, 고춧가루가 뿌려졌지만 하얀 느낌이 있는 무절임을 단무지 대신 주는 즉석떡볶이집.



튀긴 신발을 먹어보진 않았지만, 그래요, 튀기면 신발도 맛있을 거 같아요.



다사랑 분식집에 가면 늘 고민하던 일이 있었다. 오늘은 야끼만두와 김말이를 몇 개를 먹을 것인가였다. 많이 시키면 남기고 후회하고 빠듯하게 시키면 딱 한입만 더 먹고 싶었던 그 튀김들.

튀김 기름방울 올라오듯 자글자글하게 웃고 떠들고는 같이 학원도 가고 집에 걸어오기도 했던 친구들이 있어서 학교 생활은 늘 좋았다. 나란히 있던 여중, 여고 시절을 같이 보낸 집 가는 방향이 같았던 친구는 지금도 한 번씩 불쑥 연락을 해 온다. 언제 만나도 늘 그 느낌으로 반갑고 또 반갑다.



김말이 속재료는 크게 별거 없다. 집에서 혼자 하고 있자니 명절 냄새가 난다.



살고 있는 곳에서 한 블록만 내려가면 고등학교가 있다. 그 학교 근처에는 딱히 이렇다 할 분식집은 없다. 대신 아이들이 하교할 때 보면 낯선 진풍경이 펼쳐진다. 학교를 둘러싸고 500m 정도를 차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가끔 두 줄로 서있기도 했다. 학교에서 나온 아이들은 척척 차를 찾아서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 드라이브 스루 같기도 하다. 앞차가 빠지면 차들은 한발 앞으로 바싹 다가서고 그 뒤로도 차가 꼬리를 물고 섰다. 걷거나 버스를 타고 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한 학교 앞 도로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척척 떠나갔다. 토요일 수업이 없는 요즘 아이들은 어둑해질 때만 집에 가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이 진풍경을 가끔 산책 끝무렵에 바라보곤 한다. 저 아이들에게는 그들만의 다사랑 분식집이 어떤 모양새로 존재할까 라는 궁금증을 가져봤다. 우리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고등학생 아이들은 튀김 가마 속 기름방울처럼 와글와글하니 즐겁다. 그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음식을 만들며 그 시절을 추억할까.



자투리 당근과 양파, 잡채 하고 남은 당면, 먹다 남은 김으로 만들었다. 조각조각 기억이 담겨있는 느낌이다.



2,3년 전 주말에 졸업한 학교 앞을 가보았다. 주말이어서 문을 닫았으려나 했는데 아이들이 없는 그 가게가 열려있었다. 고등학생 때면 다 컸을 때의 기억이라 큰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억이란 것은 좁을 길을 넓게, 그리고 환하게, 좀 더 크게 만드는 힘이 있나 보다. 한산한 가게에 앉아 치열하지 않게 떡볶이를 먹으니 조금은 맛이 덜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분명 맛있는 맛이었다. 달큼한 떡볶이 국물에 이제는 한 개씩 먹기도 벅찬 느낌이 드는 튀김의 식감도 여전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이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고 자라난 여고생이 나중에 아기를 가져서 입덧에 이 떡볶이가 생각나서 먹으러 왔었단다. 그런 사연들이 있으니 사장님은 주말이라고 쉽게 문을 닫지 않는다며 같이 떡볶이를 먹던 친구가 이야기해줬다. 사장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인지 진위여부야 알 수 없지만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 친구들도 한두 번씩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 가보았다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과 열심히 숟가락질하고 개수를 채워 튀김을 미쳐 못 먹은 친구 앞접시에 튀김을 놓아주던 그 맛이 그리워진 건지도 모르겠다. 잔뜩 튀김을 튀겨내고 나니 누군가와 나누어 먹고 싶어 졌다. 이젠 먹고 남겨도 좋아. 집에 갈 때 싸줄게 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게 되었는데 말이다.



가장 맛있는 튀김은 파삭한 기억 속에 있는 그 튀김.


못 먹어본 음식도 많고 신기한 음식들이 늘어나기도 한다. 그래도 늘 기억 속에 있는 음식의 맛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또한 오래 간직하려 한다. 먹고살았던 기억만큼이나 삶에 진득하게 녹아있는 기억이 또 있을까 싶다. 대단한 사건이 있지도 않고 엄청난 자극이 있지도 않은 기억들이지만 그 풍경과 그때의 맛을 혀끝에 잘 간직하고 살다 보면 밥그릇마다 이야기는 쌓이고 그만큼 인생은 배불러질 거라 생각한다. 어디에서나 누구나 배부른 기억과 맛을 기억하길 바란다. 토요일 3교시가 끝난 시간에는 다사랑 분식집에 가자. 꼭.



두어 번 튀겨야 더 바삭한 튀김, 기억은 곱씹으면 더 맛있다.






당면이 빠진 재료 사진, 그래도 김말이 튀김을 해보자.



재료(열개 분량)

김 3장

양파 60g

당근 40g

간장 1T

설탕 1/2T

당면 80g(한 줌)


튀김옷

튀김가루 2/3컵(얼음물)

물 90ml

달걀 1개


1. 따뜻한 물에 당면을 불려준 뒤 물기를 제거해준다.

2. 양파와 당근을 채 썰어준다.

3.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채소를 넣고 볶아준다. (백후추 분말을 조금 넣는다.)

4. 그리고 당면을 넣고 함께 볶는다.

5. 설탕을 뿌려준다.

6. 팬을 기울여 간장을 넣고 끓어오르게 한 뒤 당면과 섞어서 볶아준다.

7. 간은 약 80% 정도만 맞추면 된다.

8. 반죽을 준비하고 튀김가루 소량은 따로 준비한다.

9. 반죽을 준비하는 동안 볶은 당면을 충분히 식혀준다.

10. 김밥 김이나 일반 김 모두 상관없다. 김을 4등분 한 뒤 당면을 넣고 말아 준다.

11. 튀김가루를 가볍게 묻힌다.

12. 튀김 반죽을 입혀주고 튀긴다.

13. 한 김 식힌 뒤 다시 튀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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