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영 Oct 19. 2020

덤덤하게 겨울로 가는 길, 브로콜리 너마저

브로콜리 볶음과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한 낮, 보일러 온도를 슬금 보니 22도다. 쌀쌀한 숫자구나. 여름에는 시원한 숫자였는데.


어제는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너무 놀랐어.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자주 안 하니까 외출할 때 입는 옷을 입을 기회가 많지 않더라고. 여름옷 정리해서 넣는데 올여름 한 번도 입지 않은 화려한 원피스가 있는 거야. 아쉬워서 넣기 전에 한번 입고 거울 앞에 서봤어. 내년에는 이 옷이 예쁘게 잘 맞을까? 일 년 사이 훅 바뀐 몸과 훅 변한 유행으로 쭈뼛거려지게 되진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야.


나는 올해 누굴 만나고 살았던가 되짚어봤어. 또 코로나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네. 아기가 있는 친구들은 도통 만날 엄두가 안나기도 하고 불요불급(不要不急)한 만남인지 생각해보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또 저만치 물러나더라고. 나는 누구에게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인가를 되돌아보면서 말이야. 그러다 보니 우리는 보고 싶어도 참말 만나기 힘들게 올 한 해를 보내고 있구나.




브로콜리는 20분 정도 봉오리 쪽을 충분하게 물에 담가준다. 소금물도 좋다. 나는 베이킹소다를 썼다.



원래도 자주 연락하지도 않았었고 자주 만나지도 않았는데도 만났던 날들이 알알이 살아있는 거 보면 자주 여행을 가야만 하고 자주 외출을 하고 자주 좋은 풍경을 봐야지만 사람이 살아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 주변에 자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 온 물건이나 먹었던 음식 사진을 제외하고는 들려줄 이야기가 없어라는 표정으로 말을 하곤 하더라고. 꼭 무엇이 남아야만 여행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 줄의 생각, 마음에 자리를 틀고 앉는 감정, 진하게 기억되는 풍경을 남기는 사람이 좋더라. 그러니 자주 만나지 않아도 나누었던 이야기 끝에 한 줄의 생각, 함께 음식을 먹었던 장소를 떠올리면 느껴지는 도드라지는 감각, 손을 크게 흔들어주던 마음 같은 것이 남아있으니 만나지 않는 시간도 꽤나 근사하게 괜찮다고 느껴. 물론, 이 쌀쌀해지는 날에 만난다면 얼마나 따숩게 좋을까 싶지만 말이야. (브로콜리 너마저_춤)




브로콜리는 꼭 먹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소금물에 2분만 데쳐준다.



가을이었고 내 옷차림을 돌이켜보니 트렌치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했어.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보통은 메뉴를 딱딱 말하는 편이었지만 그날은 오늘은 속이 좋지 않으니 맵지 않고 보드라운 것이 먹고 싶어라고 어려운 말을 했지. 종종 나는 그런 식으로 먹고 싶은 것을 표현하곤 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듣고 식당을 찾아내는 너의 친절함을 늘 좋아했어. 익숙하지만 무얼 먹을지는 짐작할 수 없는 길을 걸어서 간 곳은 방바닥이 따끈한 식당이었고 이곳에 이런 식당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상에 차려진 것은 연포탕. 맑은 국물에 야들한 낙지가 들어있던 고소한 냄새가 나던 연포탕. 천성이 바느질이 잘되어진 깨끗하게 다림질된 천 같은 너는 어쩜 메뉴도 이렇게 찾아내나 싶었고 그날, 서너 달 만에 만난 우리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자극적이지 않은 연포탕을 한 그릇 말끔하게 먹었지. 따뜻한 방바닥과 따뜻한 연포탕과 따뜻한 너는 가을 낙지만큼이나 완벽하게 늘 제철음식같이 올바르고 적당하게 기억에 남아있어. (브로콜리 너마저_그 모든 진짜 같던 거짓말)



브로콜리 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머프 딸기밭처럼, 아직은 상상 속 브로콜리 밭.



푸념을 늘어놓거나 심심한데 딱히 말할 곳이 없는 사람들은 나에게 전화를 잘해. 왜, 누구라도 상관없이 이야기하고 싶은 날 있잖아. 퇴근길에 괘념치 않고 아무렇게나 전화할 곳. 하루에 많이 걸려오면 서너 통이 걸려오기도 해서 나란 사람의 역할이란 무엇일까를 돌아보게도 해. 그런데 돌이켜보니 우리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길게 통화해 본 적이 없더라고. 너는 나에게 전화를 길게 하지 않으니까. 툭하니 내려놓는 다정한 선물 같은 전화는 하곤 하지만. 그래서 길게 통화나 카톡을 하지 않아도 그 한 줄로도 마음이 다 하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 들었어. 한 줄에 온 마음을 다 담을 줄 아는 사람을 친구로 뒀다는 것은 만나지 않는 시간을, 혼자서 누구에게도 어떠한 푸념을 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라는 걸 잘 알게 됐어. 곧 코로나가 끝나면 조금 일찍 도착해서 너희 회사 뒤편 스타벅스에 앉아서 노래도 듣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다 보면 창밖에서 크게 손을 흔들면서 반갑게 오는 너를 기다릴게.  칼국수도 먹으러 가고 한겨울 코트를 한편에 잘 접어서 놔야 하는 골목길 동태탕 집도 가고. 그리고 차를 마시면서 긴 이야기를 바쁘지 않게 하자.



마늘을 잔뜩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언제나 좋다. 별거 아닌 요리도 늘 좋다.



추위는 늘 바삐 오는 거 같아. 해가 일찍 저물고 밤이 길고 집에 오는 길이 어둑해지고 도톰한 수면양말을 꺼내신고 티브이를 보기 좋은 계절. 봄이 따스한 계절이긴 하지만 따뜻함이 가장 좋은 겨울이 어쩌면 따뜻한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건강하게 제 몫을 하며 이렇게 살아낼 거고 그 언젠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활짝 웃으며 그렇게 지내자. 소소하게 밥을 잘 먹고, 출근길에는 곧 든든하게 머플러도 꼭 두르고. 알겠지?

(브로콜리 너마저_유자차)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를 들으며 밥을 해보는 시간.






초록나무 같은 브로콜리를 볶아보자.



재료

브로콜리 1개 (약 250g)

마늘 10개

소금 1/2T

식용유, 카놀라유 중 2T

후추 조금



1. 브로콜리는 물에 봉오리 부분을 20분 이상 담가 둔다.

2. 소금물에 담가 두는데 식초, 베이킹 소다에 담가 두어도 된다.

3. 흐르는 물에 충분히 세척해준다.

4. 소금 한 스푼을 넣고 팔팔 끓은 물에 2분 데쳐준다.

5. 물기를 빼주고 한 김 식혀준다.

6. 한입 크기로 잘라준다. (이때 두꺼운 줄기 부분은 제거한다.)

7. 마늘은 편 썰기를 해준다.

8. 팬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익혀준다.

9. 브로콜리를 넣고 볶는다. 3분 정도면 충분하다.

10. 소금과 후추를 넣어준다.

이전 08화 토요일 3교시가 끝나면 다사랑 분식집에 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