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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ul 20. 2020

80년대생은 몬테크리스토를 그리워한다

패밀리레스토랑과 튀긴 샌드위치의 기억

80년대생은 몬테크리스토를 그리워한다.

2002년에 대학을 갔다. 분식집을 벗어나고 나니 갈 수 있는 식당들은 꽤나 많았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식당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가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럽게 맛있다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100만 화소를 자랑하는 핸드폰으로 음식 사진을 찍어 싸이월드에 올리던 시절이었다.


90년도 후반을 중심으로 하나 둘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기기 시작했다. 92년도 T.G.I.F, 95년도에 베니건스, 96년에는 마르쉐가, 이어 빕스와 아웃백이 생겼다. 경기도에 살았던 나는 대학에 가서야 베니건스 1호점인 대학로점에 가보았으니 그 문화를 좀 늦게 접하기는 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신기했고 즐거웠다. 놀이동산에 가는 듯한 기분이 들만치 알록달록하고 이국적인 인테리어도 좋았고 희한한 이름의 음식들도 좋았다. 좋은 날에 가는 그 좋은 곳 중 초록색으로 선명하게 이름이 적힌 간판이 있는 베니건스는 유난하게 더 기억이 남는다.


가보지 않은 미국 지명이 지점마다 붙어있었던 베니건스



2004년 베니건스에서 일을 했다.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콘 위에 둥그렇게 잘 담아내던 아르바이트생은 좀 더 커다란 세계로 진출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니폼을 입고 놀이동산 직원처럼 밝게 일하는 그 모습이 좋아 보여서 홀린 듯 베니건스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초록색 티를 입고 초록색 어닝 밑에서 일을 하는 것은 생각만큼 밝은 웃음이 나오는 일은 아니었다. 다리가 일단 너무 아팠고 생각보다 일이 고됐다. 그릇들은 예민하고 묵직했으며 손님들은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친구들과 갈 때는 예쁘다며 앉았던 의자도 정리할 때는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래도 또래인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즐거웠다. 냄새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들을 나르고 다 먹고 남은 음식을 치워댔다. 남은 음식들을 버리는 장소에는 늘 알 수 없는 느끼한 냄새들이 범벅되어 있었다. 초록 유니폼에는 여러 음식 냄새들이 늘 있었고 그래서 매일 세탁했다.


기억이 흐리긴 하지만 3개의 근무조가 있었는데 근무가 일찍 끝나는 날이나 일을 쉬는 날에는 손님으로 종종 베니건스에 가곤 했다. 뭐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우리는 우리가 숱하게 나르던 음식 중에 몬테크리스토를 먹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일단 이 메뉴는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에는 없었고 따뜻한 음식을 나를 때 가장 배고프게 만든 메뉴(?) 1위였다. 프랑스의 오븐에 구워 먹는 샌드위치인 크로크무슈가 미국으로 오면서 좀 더 강력하게 느끼해진, 튀겨낸 샌드위치는 그 당시는 쓰지 않았던 말인 단짠단짠의 최고봉, 맛이 없으면 반칙인 메뉴가 되었다.


일하면서 종일 느끼한 냄새가 싫었을 법도 하지만 갓 튀겨내고 따뜻한 샌드위치를 보는, 일하느라 다리 아픈 청춘들은 그 메뉴가 '일 끝나고 먹어야지. '라고 다짐하게 되는 힘이 되어주는 메뉴였다. 슈가파우더가 뿌려진 따뜻한 샌드위치에 라즈베리 잼을 담뿍 올려먹으면 위로가 되었다. 노동의 끝에 먹는 몬테크리스토는 우리에게는 커다란 보상 같은 음식이었다.


스무 살 초반의 노동의 맛으로 기억되는 몬테크리스토는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고 회식을 하는 나이가 되면서 슬금 잊어버려졌다.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도 그렇게 신나 하며 가지 않았다. 그저 한 번씩 꾸덕한 투움바 파스타가 먹고 싶어서 아웃백에 가거나 콘셉트를 바꾼 빕스에 가보거나 동네에 있던 벽돌집 T.G.I.F에 추억을 곱씹으러 가보곤 한 게 전부다. 그나마도 베니건스는 점점 매장 수를 줄여서 마지막으로 가본 곳은 서울역점이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맛있는 게 넘쳐났고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면 줄줄 나오는 식당들에 시선이 뺏겼다. 이역만리에 있는 어떤 나라든 그 나라 음식을 제대로 맛 보여주는 식당들이 늘어나고 나서, 나는 몬테크리스토를 까맣게 잊었다.  그리고 2016년, 베니건스는 몬테크리스토와 함께 사라졌다.


샌드위치를 눌러주는 작업, 쇼팬 하우어 책은 이렇게 쓰인다.



17년도 여름, 문득 몬테크리스토가 생각이 났다. 이젠 어디 가서 사 먹어야 하나 막막해진 메뉴를 대강 재연해서 먹어보자 했다. 재료를 검색하니 온통 집에 없는 재료들 뿐이었다. 몬테크리스토는 빵 사이에 치즈와 햄, 칠면조 햄을 넣어 튀겨낸 음식이다. 칠면조 햄이나 그뤼에르 치즈 같은 것은 우리 집 냉장고에는 없었다. 그래서 있는 슬라이스 치즈와 닭가슴살과 햄으로 어설프게나마 만들어 보았다.


튀겨서 맛있고 튀겨서 느끼한 이 오묘한 샌드위치



대략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 슈가파우더까지 뿌려주고 난 뒤 라즈베리 잼을 올려 6월 한복판, 한낮에 혼자 앉아 이 샌드위치를 먹었다. 눈물이 날만큼 먹고 싶었다거나 이 맛이 너무 그리워요 라고 할만한 맛은 아닌 듯도 싶지만 이 튀긴 샌드위치를 먹으니 반가웠다. 느끼해서 연거푸 또 먹고 또 먹기는 괴롭기까지 할 수 있지만 따뜻한 샌드위치 한쪽을 말끔하게 먹었다. 그리고 좀 더 앉아 기다리며 식힌 뒤 남은 거 포장해서 집에서 먹는 기분으로 또 한 조각을 먹었다. 오래간만에 사이다도 한잔 했다. 사라진 식당과 사라진 그 메뉴는 그래도 기억 속에 잘 살아있었다. 정확하게 몬테크리스토의 맛을 설명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모두 다 기억하고 있는 그 맛, 친구들과 정사각형의 대학로 매장에서 먹었던 짜고 달고 기름지고 행복했던 이 맛을 추억하는 80년 대생들은 많으리라. 쫀드기와 달고나만이 추억의 음식이 아닌 것이다. 먼 훗날, 행사장 추억의 음식 코너에서 이 메뉴를 만났으면 좋겠다.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멋진 젊은 친구가 만들어 준다면 더 좋겠다.


다신 만들지 않겠지만 잊지 않을 메뉴, 이십 대의 몬테크리스토.






추억의 몬테크리스토를 만들어 보자.


재료

식빵 3장

닭안심 3쪽

슬라이스햄 2장

치즈 4장

버터


튀김옷재료

밀가루 1컵

베이킹파우더 1/2t

달걀 1개

우유 150ml

소금 1/2t


1.  닭안심은 넓게펴서 허브솔트로 밑간한 뒤 180도에서 10분 구워준다.

2 . 튀김옷 재료를 섞어준다.

3. 빵에 버터를 바르고 치즈,햄,치즈 순서로 올려주고 빵을 덮는다.

4. 빵 위에 다시 버터를 바르고 치즈,닭안심,치즈를 넣고 버터바른 빵을 덮어준다.

5. 묵직한 도마 등으로 눌러준 뒤 빵 테두리를 자르고 반으로 자른다.

6. 튀김옷을 입히고 튀겨준다.

7. 기호에 따라 슈가파우더를 뿌리거나 라즈베리잼을 곁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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