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록 여름 반찬
영양사는 밥을 언제 먹어요?
점심시간에 식권을 팔고 있으면 식사를 하러 오신 손님들이 종종 이 질문을 했다. 보통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나가다가 매우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런데 영양사님은 식사 언제 하세요?라고 묻곤 하셨다. 그러게, 밥때에 밥을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밥을 언제 먹나.
처음 일했던 구내식당은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주는 곳이었다. 이른 아침 지하철 2호선의 공기를 느끼며 일곱 시까지 출근해서 아침밥을 배식하고 나면 나의 아침밥 시간은 아홉시 반쯤, 열한시부터 한시까지 점심시간을 지나고 나면 내 점심시간은 세시였다. 제때 밥을 먹지 못하는 직업. 점심시간에 맞게 밥을 먹고 커피 한잔을 사들고 지나가는 직장인들을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웠었다. 그 부러운 마음이 눈에 보여서 인지는 몰라도 밥을 못 먹고 일하는 영양사를 불쌍하게 여긴 손님들은 우유며 간식거리를 주고 가셨다.
유독 그 시절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 당시 나의 사수였던 선임 영양사는 아침 배식이 끝나고 난 뒤 식사를 할 때면 면기에 밥을 덜고 물을 말아서 그걸 훌훌 먹었다. 특히 고추장아찌를 좋아했는데 그런 반찬을 하나 두고 밥알이 많지 않은 그 면기의 물을 훌훌 떠먹었던 것이다. 일도 고됐고 생각하고 해야 할게 많았던지라 여유 있게 앉아 맛을 음미하며 밥을 먹고 싶지 않았겠지. 아니, 먹지 못했겠지. 그렇게 늘 부실하게 밥을 물에 말아 그녀는 훌훌 넘기듯 밥때 넘긴 밥을 목으로 넘겼다.
살림을 하면서 한 번씩 더운 여름날에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 어느 순간 식사는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지를 놓고 고르게 되는 하나의 일이 돼버린다. 식사 때도 놓쳤고 나 하나 먹는데 그냥 라면이나 후루룩 끓여 먹고 말까 라는 생각도 라면을 몇 번 이어서 먹다 보면 죄책감이 되어버려 관두게 된다. 진은 빠졌지만 밥 한술 먹어야 다음 일을 할거 같을 때, 나는 물 말은 밥을 떠올린다. 입이 깔깔하니 그저 밥 한술 넘길 반찬을 궁리해본다.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우리 엄마는 반찬 하나로 뚝딱 식사를 하실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더군다나 햄도, 계란도 없이 나물을 무친 거라던지, 무를 푹 익게 조린 거라던지로 말이다. 때를 놓친 늦은 오후, 엄마의 식사 풍경은 그랬다. 그러던 내가 자라서 삼십 대가 되고 나니 나홀로 밥상에는 반찬이 하나만 있어도 좋은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여름이라면 말이다.
여름은 푸성귀가 많이 나오니 여간 신나는 게 아니다. 물론 비닐하우스가 있어서 겨울에도 여름과일을 맛보는 세상이 되긴 했지만 자연스러운 것은 그 계절에 본디 나오는 것들이다. 흔하디 흔한 여름 채소 중에 푸릇한 고추를 좋아하는데 맵지 않은 커다란 오이 고추도 좋고 쌈장 푹 찍어먹는 풋고추도 좋고 작고 야무진 청양고추도 좋다. 씻기만 해도 반찬이 되어주니 불 쓰기 싫은 여름에 이만한 게 있나 싶다.
비가 와서 한동안은 7월 치고는 심하게 덥지 않았다. 방바닥에 걸레질만 하고 돌아서도 땀이 송글한 여름은 아마 다음 주부터 본격 시작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쨍하고 푹하게 익은 여름은 안심이 되는 채소값을 만들어주고 가뿐하게 고추 한 봉지를 사들고 와서 된장과 꿀을 섞어 쓱쓱 무치고 나면 더운 여름의 한 끼가 돼줄 것이다. 때 지난 식사시간이지만 아삭하고 싱싱한 초록 빛깔 여름 반찬들은 물 말은 밥과 함께 나를 기운 나게 해 줄 것이다.
재료
오이 고추 3개
된장 25g
마늘 3g
꿀 1/2t
깨 적당량
1. 고추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준다.
2. 마늘을 다진다.
3. 재료를 넣고 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