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너의 집은 어디라고 생각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가 집으로 생각하는 게 도대체 어디일까? 집이라는 게 어떤 의미지? 뭐가 집이어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들로만 가득 찼고 실제로 내가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얼버무리며 상담센터를 나오면서 집이란 어떤 걸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전적 의미의 집은
1.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2. 사람이나 동물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의 수효를 세는 단위.
3.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
이라던데.. 음.. 이건 너무 딱딱한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사실 아니다. 유치원 때는 의정부에서 살았고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진으로 남아있다.) 7살 때는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유치원 6개월 초등학교 6개월을 다니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고 다시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해서 2학년 때까지 다니다가 3학년 때 전학을 갔다. 전학 갔던 학교에서 5학년까지 다니고 중국 선양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만 4개를 다녔던 나는 그 이후에도 중학교는 다시 말레이시아에서 다니다가 졸업은 중국 베이징에서 했고 고등학교까지 베이징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대학교를 진학했다.
이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이기에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억은 많지 않다. 내 기억 속 가장 오랫동안 학창 시절을 보냈던 곳은 베이징이었는데 그렇다고 거기가 나의 집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이미 나는 베이징을 떠나왔고 거기에서 살던 집도 이제는 없다. 그 동네에 안 간지도 벌써 몇 년은 되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할머니 집에서 살았고 그 이후에는 혼자 살았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미국에서는 기숙사에서 살다가 셰어하우스에서 살다가 결국 미국인 가정집에서 방을 하나 빌려 1년 정도 머물렀다.
20대 중반까지 지내면서 이렇게 많은 곳을 옮겨다닌 사람이 또 있을까? 이렇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집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뭔가 내가 머무를 수 있는 안전한 공간. 내가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미국에서 집에 관해 질문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생각하는 이런 공간은 없었다. 어디에 있어도 금방 떠날 준비를 해야 했고 정착하면서 산다는 것 자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집을 찾지 못한 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점점 집에 관해 생각해보고 찾아보게 되었다. 아니 나만의 집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었고 더 이상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나만의 추억을 묻히고 손때를 묻히며 시간과 비용을 들여 꾸몄다. 코로나로 인해 강제적으로 떠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나는 마침내 서울에 정착 아닌 정착을 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집’이라는 개념이 내 안에 잘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나에게 포근함과 따듯함을 주는 집이 되었다. 앞으로 어딘가 떠난다고 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런 집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