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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icity Mar 31. 2022

#4. 당신의 인생 카운슬러는 누구입니까?

무당 할머니는 말씀하셨지 “너는 외국 나갈 팔자여”


사업하셨던 할아버지는 연초에 무당 할머니를 불러 항상 굿을 했다. IMF때 사업이 망한 걸 보면 그리 용한 무당 할머니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지지만, 할머니가 한번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나는 외국을 돌아다니며 살아야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할머니의 얼굴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 때 내 위로 쌀을 공중에 흩뿌리며 점을 치던 모습과 엄마의 좋아하던 모습(어머 우리 큰 애 외국 나가 살아요?(왜그랬지?)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첨단 IT기술자를 위로하는 선녀님과 도령님

IT회사를 다니고 놀랜 것 중 하나가 주변에 운세를 알아보거나 점을 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했다. IT기술은 말그대로 최첨단기술 아닌가? 그런데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회사 일과 사적인 일로 힘겨울때마다 용하다는 선녀님과 도령님과 철학관을 찾아다닌다는 것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한번 본 점괘가 마음에 안 드는지 용하지 않은 것 같다며 또 누군가를 찾아 먼 거리도 마다 않고 지방으로 운세 출장을 갔다와서, 좋은 소식을 듣고 왔다고 하고 그 당시 일어나는 좋은 일들과 연결시키는 것도 무리수라고 생각했다.


종교도 없고, 운세도 안 믿지만 옆에서 듣고 보다 보니 궁금해졌다. 옛날 쌀로 점치던 할머니의 말도 떠올랐다. 맞다 나는 외국서 살 팔자라고 했는데?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그때 마침 팀원 중 한 명이 금박 명함을 내주시는 철학관 아저씨를 회사 인근 카페로 소환했다. 시간당 5만원을 내고 출장온 아저씨에게 차례로 1시간씩 아저씨에게 귀한 말씀을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이내 내 귀를 의심하고 실망했다. 뭐라는거야? 아이고 내 팔자야. 아저씨야 그리 나쁜게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듣기엔 나쁘다. 내가 점을 안보는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난 나쁜 말을 듣기 싫다. 좋은 말을 듣기위해 나쁜말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미래가 두렵고 무서웠고 그래서 듣지 않기로, 믿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쫄보인거지, 운세를 보는 사람들은 정말 용감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들었던 나의 사주를 극복하고 싶었고, 바로 육아휴직을 냈다. 하지만 결국 있었던 자리로 되돌아왔고 다시는 물으러 다니지 않고 있다.  


인생 네비게이션 ‘점신’님, 오늘 어디로 가야하나요?

그러던 중 전에 인터뷰를 보고 잠깐 혹했던 강헌의 “명리”라는 책이 있었는데, 나와 생년월일시가 같은 친구 하나가 힘들때마다 그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해왔다. 그 친구가 최근 후배와 철학관 한 곳을 다녀오더니 다시 나의, 아니 본인의 사주팔자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본인도 힘들다는 얘기다..) 너와 나는 운명 공동체라며 넌 요새 안 힘드냐며, 미리 알기도 싫고, 듣기 싫다고 하는 나에게 카톡으로 본인의(그러니까 나도 같을) 사주를 날리고 전화 걸어 얘기하고.. 고만 좀 하라고 친구에게 말은 했지만, 왠지 잠잠하면 궁금해진다. “그래서 올해 어떻데? 노년운은 있데니? 회사 언제까지 다닌다냐?”


최근 회사 사람들에게 추천 받은 “점신”앱은 매일 접속자수가 40만을 넘는다. 예전 IT회사를 다니던 사람들도 운세앱 포스텔러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긴 나도 전에 많은 사람들이 점괘를 보러 가는 것을 알고는 역술인 앱을 만들면 좋겠다며 우스게로 점심을 먹으며 얘기한 적도 있던 것 같은데 말만하고 실천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를 따라가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버린 분당, 판교, 강남 IT인들의 고통과 불안을 돈으로 맞바꿀 수 있었는데 -__-...(나 재물운이..)


팔자는 숙명이지만 그 안에서 내가 바꿀수 있는 건 운명!

친구는 미리 알아야 대비를 할 수 있다며 계속 구구절절 카톡을 날린다.

 

"극소수 1프로 들만 대박 대불행. 술술 풀리는 부자 있듯 아주 기구한 사람들도 1프로. 우리들같은 나머지 인생들은 거기서 거기.. 좋은일도 있다 힘든때도 있는거래, 참!~ 우리 돈 좋아하고 예술 좋아한데. ㅋㅋㅋ 그리고 올해 벌이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 많이 하래"


듣기 싫은, 알기 싫은 얘기도 있지만, 갑자기 "하고싶은 일 많이 하래"가 눈에 쏙 들어온다. 나는 지금 일에 도움이 하나도 안되는 것 같은 딴짓을 주변사람들에게까지 강요하며 글을 쓰라며 일을 벌리고나선, 일요일 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일하려 글쓰랴 힘들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 하라는 저 말이 위안이 되면서 듣고 싶은 것을 들을때까지 먼 곳을 마다않고 달려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꺼번에 이해되버렸다.


친구는 덧붙인다. 팔자는 숙명이지만 그 안에서 내가 바꿀수 있는 건 운명이라고. 어릴 적 만난 할머니의 말도 언젠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조만간 친구를 오프 모임에 불러 우리의 사주팔자를 한번 봐야겠다.


201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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