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의 가호 아래, 몽생미셸
프랑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꼭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곳이 몽생미셸이다. 몽생미셸의 뜻 자체는 미카엘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그 말 뜻과 일치하게도 몽생미셸의 꼭대기에는 대천사 미카엘의 동상이 위치해있다. 바다 위에 외딴섬처럼 자리 잡은 몽생미셀은 본래는 수도원에서 시작했다. 베네딕트 수도회에서 설립한 수도원이었던 이 곳은 유럽의 다른 수도원처럼 경건과 청빈을 이념으로 하는 수도사들의 수양 공간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미카엘 대천사의 계시를 받은 한 사제가 이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주교나 신부와 같은 사제들 외에도 개인의 수도를 중시하는 수도사들이 존재했다. 때문에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성당과는 다르게 수도사들이 거주하는 수도원은 도시와 벗어난 곳에 위치하곤 했다. 특히 베네딕트 수도회는 매우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었는데 금언과 불을 이용하여 난방을 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특히나 금언을 중시했는데 불가의 수행방식 중에도 말을 하지 못하는 묵언수행이 있는 것을 보아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정신수양에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나 보다. 하긴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정신이 공허해지는 것을 느낄 때가 많긴 하다. 어떤 때에는 다른 사람과 어색한 순간을 피하기 위해 말을 하기 위해 말을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하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집착할수록 정작 나와의 대화는 소홀해진다.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외롭다는 느낌을 받을 때만 나는 나와의 대화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그럴 때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산책을 한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마음을 달래는 수양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방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란 배부르고 등 따시면 눕고 싶고 게으르게 늘어지고 싶어 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렇게 안락한 삶을 살면 초심을 잃고 사람이 풀어지게 된다. 일주일에 주말, 그것도 하루 이틀은 그렇게 보내면 행복하지만 그런 생활이 일상이 되면 나태해진다. 이직을 할 때 3개월 정도 그런 생활을 해본 적이 있는데 1개월 정도는 매우 행복했지만 그 이상이 되니 매우 무기력해졌다. 난방을 하지 않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규율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게으름을 경계하기 위한 그들의 자구책은 아니었을까. 몽생미셸에서 난방이 허용된 곳인 성경을 필사하는 수도자가 머무는 공간뿐이었다. 필사자의 손이 얼면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적을 수 없으니까. 몽생미셸의 수도원 안에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엄한 규율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엄격했던 수도회도 세속에 찌들기 시작했다. 귀족들이 말년에 종교에 귀의하기 위하여 많은 재산들을 수도원에 기부하기 시작하였고 귀족들의 재산에 눈이 먼 수도사들이 귀족들에게 좋은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불을 피워 난방을 하기 시작하면서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이 깨지고 그들의 타락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몽생미셀에서 귀족들이 머물던 공간에는 난로의 그을음이 남아있다. 몽생미셑이 귀족들만이 찾는 수도공간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귀족이 아닌 일반 순례자들도 몽생미셀을 꼭 방문하고 싶어 했는데 몽생미셸이 갯벌 한가운데 있다 보니 썰물 때 걸어서 이동하다가 밀물 때 물에 휩쓸려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죽음을 각오하더라도 신을 만나자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의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몽생미셀은 백년전쟁 때 바다 위에 떠 있는 점을 바탕으로 군사시설로 이용되기도 하였고 주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현재의 몽생미셀은 수도원의 모습과 요새의 모습이 혼재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수백 년의 역사를 품은 몽생미셀은 미카엘의 발아래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