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미관은 지켜져야 한다
유럽의 도시들은 각자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지만 파리 만큼이나 그 도시를 떠울릴 때 아름다움과 낭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도시는 없을 것이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파리를 방문하며 파리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이 도시를 사랑해 정착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이 있다. 특히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파리는 선망의 도시이다. 그런데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파리 사람들이 그들의 도시를 오랜 세월동안 아끼고 가꾸어왔기 때문이다. 파리 사람들에게 파리란 단순히 거주공간만이 아닌 예술품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파리를 가꾸기까지 파리 사람들이 했던 노력을 소개할까 한다.
대학에 다니면서 서울의 역사와 문화라는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 그 수업에서 서울의 형성과정과 함께 도시의 형성에 중요한 요소인 도로의 구축에 대해서 배우면서 오스만 남작의 도시 계획에 대해서도 배운 적이 있었다. 나폴레옹 3세 때 파리는 도시의 기능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때문에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만 남작에게 도시의 정비를 맡겼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의 부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필연적이었다. 게다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각종 물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도 도시를 죽은 도시가 아닌 살아있는 도시로 유지하는데에 중요한 요소이다. 도시의 도로는 이러한 물자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마치 인간의 혈관과 같다. 도로가 잘 구축되면 언제든지 빠른 시간 내에 시내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꼭 시내 중심부에 살 필요도 없다. 이렇게 되면 도시 중심부에 많은 주택이 있을 필요도 없다.도시의 주거지가 분산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숨겨진 도로 정비의 장점은 도시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파악하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 파리의 상황에 적용한다면, 통치에 불만이 있는 시민들의 봉기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었다 정도 되겠다. 어쩌면 이것이 나폴레옹 3세가 오스만 남작에게 도시 정비를 명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통치자의 통치행위의 상당부분은 자신의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고는 하니까. 이 것은 역사 전반을 통틀어 공통적인 현상이다. 도로 정비와 더불어 주택 정비 사업도 같이 이루어졌는데 파리 중심부의 건물들이 비슷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당시의 주택 정비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복층으로 지어졌으며 1층에는 레스토랑, 상점 등의 상업시설을 위치시켰다. 일종의 주상복합 건물인 셈이다. 오스만 남작의 도시계획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에투알 광장의 개선문 전망대이다. 개선문 전망대에 오르면 파리 전체의 전망도 조망할 수 있는데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도로가 뻗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도로 사이로 당시에 정비된 건물들이 파리의 스카이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파리의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은 여러 군데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곳을 추천하고 싶다.
파리하면 생각나는 랜드마크는 에펠탑이다. 파리 만국박람회를 대비해 구스타프 에펠이 디자인한 에펠탑은 처음 만들어질 때 파리 시민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 당시의 건물들이 대리석 등의 석재로 만들어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철제로 만들어진 구조물이었던 에펠탑은 파리 사람들에게 참으로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낯선 것에 대하여 경계하고 긴장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감정은 본능이며 유전자에 오래도록 새겨져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인간이 수렵생활을 할때에 낯선 동물이나 낯선 무리의 사람들을 볼 때 먼저 다가가기 보다는 경계하고 배척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스타프 에펠은 왜 사람들이 반기지 않는 낯선 모습의 에펠탑을 만들었을까. 앞서 말했듯이 유럽의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자재는 석재였다. 그만큼 강도면에서나 내구성 측면에서 석재를 따라올 자재는 없었다. 헌데 석재는 그 채굴이나 운반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제철 기술도 함께 발달하면서 강철이 매력적인 건축 자재로 떠올랐다. 강철은 단단한 강도는 물론이거니와 석재에 비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데에 제약이 없다는 측면에서 매력적인 재료였다. 구스타프 에펠은 당시 다리를 건설하는 데에 쓰이기 시작하던 이러한 강철을 에펠탑의 재료로 사용하게 된다. 당시 만국박람회란 자국의 국력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컸으니 강철로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구조물을 만든다는 것은 당시 프랑스의 발달된 산업을 자랑하는 데에 적합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익숙치 않은 모습 때문에 에펠탑은 파리 시민들의 반발로 만국 박람회 이후 철거될 위기에 빠졌으나 전파 송신탑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실용적인 목적을 이유를 근거로 그 위기를 벗어난다. 에펠탑은 한동안 파리 시민들의 미움을 받았으나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면서 현재는 파리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게 된다. 때문에 에펠탑은 사람이 무엇인가에 익숙해지면 호감을 가지게 된다는 이론의 사례로 많이 일컬어지고는 한다. 에펠탑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 좋은 시기는 낮보다는 밤이다. 밤이 내려와 온세상이 어두워질 때 에펠 탑은 황금 빛 자태를 뽐내며 그 존재를 빛낸다. 한때는 파리의 골칫거리였으나 현재는 파리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에펠탑의 존재가 참으로 재미있다.
파리의 미관을 즐기는 방법 중 가장 낭만있는 것은 유람선이다. 파리의 야경과 센 강의 다리들을 한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밤에 본 파리는 낮에 본 그것보다 더 빛이 났다. 하지만 낭만과 현실은 조금 다른가보다. 겨울이라 그런지 강바람이 거세 얼굴이 어는 것 같았다. 어쩐지 승객이 별로 없더라니. 낭만도 계절을 보아가며 즐겨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