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죽의 프랑스 여행-파리 5-2

희대의 야망가 나폴레옹

by 넙죽

나는 전장의 신이다


지중해의 작은 섬 코르시카에서 프랑스로 유학 온 한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귀족이었던 아버지 덕에 유학 온 그는 프랑스의 군사학교에서 착실히 실력을 키워갔다. 졸업 후 장교로 근무한 그는 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혁명정부의 눈에 들어 고속 승진하여 결국에는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 소년의 이름은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이 출세하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은 그의 천재적인 전술 덕분이다. 당시 프랑스의 주적은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이었는데 이들 나라들은 왕정국가로서 혁명에 성공하여 왕을 몰아낸 프랑스혁명정부의 존재를 불편해했다. 나폴레옹은 이들의 공격을 깔끔하게 격파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파리에는 그의 위업을 기리는 건축물이 있다. 바로 개선문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개선문은 에투알 광장에 위치한 개선문이다. 거대한 크기도 크기이지만 그 디자인도 위용이 있다. 사실 개선문은 로마의 개선문을 본 따 만든 것이지만 로마의 것보다 훨씬 거대하다. 개선문 전면에는 나폴레옹의 모습이 새겨져 있어 이 개선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나타내고 있다. 개선문 안쪽에는 프랑스를 위해 죽어 간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그들의 희생으로 승리한 전투들이 새겨져 있다. 사실 나폴레옹을 기리는 개선문이 하나 더 있기는 하다. 루브르 박물관 한쪽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이다. 이 개선문도 화려하고 멋이 있지만 그 크기가 작고 여성스럽다 하여 나폴레옹은 싫어했다고 한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큰 것인가 아니면 큰 건축물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 모든 통치자들의 공통된 속성이 발현된 것일까. 프랑스의 개선문들은 나폴레옹의 전성기를 잘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에투알 광장의 개선문
나폴레옹이 로마의 황제처럼 조각되어 있다
밑줄 쳐진 이름들은 전장에서 죽은 자들의 이름이다
나폴레옹의 초기 개선문인 카루젤 개선문

조국 프랑스에 부와 명예를


나폴레옹 시대에 영광을 보여주는 장소가 한 군데 더 있다. 루브르 박물관이다. 본디 궁전이었던 이 곳은 베르사유나 퐁텐블로로 궁전의 기능이 옮겨가면서 왕실의 보물을 보관하는 창고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해외에서 획득한 전리품들을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싶어 했던 나폴레옹의 의지로 박물관으로 그 모습이 바뀌었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는 세계 각지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 곳에서 많은 유물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전쟁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씁쓸했다.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가장 찬란했던 전성기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자랑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폴레옹 개인에게는 그의 성과를 이보다 잘 보여줄 공간은 없었지 않았을까.

프랑스의 보물들이 보관된 루브르 박물관


야망가의 몰락


천년만년 갈 것 같았던 나폴레옹의 권세도 오래가지 못했다. 나폴레옹의 몰락은 나폴레옹의 오만에서 비롯되었다. 전 유럽이 나폴레옹의 발아래 있었으나 오직 영국만은 나폴레옹의 군사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해전에 능했던 영국의 넬슨 제독은 나폴레옹의 함대를 족족 침몰시켰다. 연이은 패전에 영국 정벌을 포기한 나폴레옹은 전 유럽의 대륙 봉쇄령을 통해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경제적으로 고립당한 영국보다 오히려 영국과 무역을 하던 러시아가 더 큰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살아야 했던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명을 어긴 채 영국과의 무역을 재개했고 이에 분노한 나폴레옹은 러시아로 원정을 떠난다. 하지만 신은 나폴레옹의 편이 아니었던가. 연이은 러시아 강추위로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동사했다. 이런 나폴레옹의 군대를 러시아 군대가 게릴라 전법으로 끊임없이 괴롭혔고 때로는 보급품의 부족으로 병사들이 굶어 죽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원정의 대참패였다. 패배의 결과로 나폴레옹은 권좌에서 내려와 지중해의 엘바섬으로 귀양을 갔다. 이후 섬을 탈출해 재기를 시도하지만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더 오지인 아프리카의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후 나폴레옹의 유해는 파리로 옮겨져 안장된다. 일명 나폴레옹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앵발리드이다. 건물 중앙 지하에 안장된 크고 붉은 관이 그의 관이다. 나폴레옹이란 영웅의 시대도 그렇게 끝이 났다.

나폴레옹의 묘인 앵발리드
크고 붉은 관이 그의 관이다.
앵발리드 옆 군사박물관에 있는 나폴레옹의 동상
나폴레옹의 전공이었던 대포가 늘어서 있다.

사회적인 성공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인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항상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사회적인 성공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가족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을 택할 것인가.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인 성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인 성공에는 눈에 보이는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승진과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인 수입의 증가이다. 이 두 가지로 나는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한껏 뻐기며 술 한잔 거하게 살 수도 있다. 때로 사회적인 성공을 위하여 자존심과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때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나보다 낮은 직급과 적은 봉급을 가진 다른 이와 나를 비교하며 그래도 나는 저 친구보다는 낫지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이런 것을 본다면 사회적인 성공은 일시적인 달콤함은 주지만 궁극적으로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는 볼 수 없다. 그저 남들도 이렇게 사니까 나도 이렇게 산다라고나 할까. 또 한편으로는 남들과 달리 개인의 생활을 즐기는 선택을 하기에 지금 당장 잃는 것들이 두려워서인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나폴레옹의 삶을 보면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았다. 이름도 낯선 코르시카 섬의 작은 소년이었던 그는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당시 사회적인 위치의 정점인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당시 서구 세계의 전부라고도 볼 수 있는 유럽에서 그의 존재감은 상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얻는 위장병과 길고 외로운 유배생활이었다. 그의 가정생활도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다.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은 첫 번째 황후였던 조세핀이었으나 정략적인 문제로 인하여 그녀와 헤어지고 오스트리아 황녀 출신의 마리 루이즈와 재혼한다. 마리 루이즈에게서 간절히 바라던 아들을 얻기도 하지만 그 아들도 오래 살지 못하였고 그가 황위에서 내려오자 마리 루이즈도 그를 떠났다. 젊은 시절의 그는 불세출의 장군에 그를 따른 사람들도 많았고 지속되는 전쟁에서의 성공이 많은 기쁨을 주었겠지만 나이 들고 초라해진 그에게 남은 것은 별로 없었다. 어렸을 때 뛰어난 위업을 이룬 위인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과연 그들이 정말 행복했을까라고 묻고 싶어 진다. 그만큼 나도 어른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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