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근세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권력은 각지의 영주들이 아니라 각 국가의 왕들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왕들은 권력을 자신의 손에 집중하기 위해서 상비군과 관료제를 마련하였고 상공업이나 의료, 법률 분야에 종사하며 급속히 성장한, 중산계층인 부르주아 계층을 성장시켜 귀족들을
견제했다. 국가의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면서 귀족들은 할 일이 없어지고 궁정에서 연일 펼쳐지는 화려한 연회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봉건귀족에서 궁정 귀족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귀족들의 화려한 궁정생활이 깊게 묻어난 곳이 베르사유 궁전이다. 화려한 외관도 외관이지만 실내도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져 있어서 당시 프랑스 왕정의 부와 권력을 엿볼 수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백미는 사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정원이다. 한번 길을 잃으면 다시 길을 찾기 쉽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공원이다. 베르사유 궁전은 원래 프랑스 국왕의 사냥터였으나
루이 14세의 명에 의하여 궁전으로 지어졌다. 루이 14세는 프랑스 절대왕정의 절정기를 이룬 왕으로 짐은 곧 국가다라는 오만한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정도로 강대한 권력을 가졌던 왕이다. 그러나 그가 속한 부르봉 왕조는 이후 백 년도 가지 못하고 만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연일 펼쳐지는 연회와 왕족들의 사치가 벌어지는 동안 프랑스의 재정은 파탄 나고야 만다. 사실 궁정의 사치와 환락이 재정파탄에 일조하기는 했겠지만 그것이 주된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당시 프랑스는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무리한 대외전쟁을 수행했었다. 그 외 재정 운용의 실패 등이 겹쳐져 국민들의 삶 또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동안 왕과 귀족들의 권력 독점에 불만을 가졌던 부르주아 계층들이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고 울분에 가득 찬 시민들이 봉기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대혁명은 성공을 거두어 혁명정부가 수립되고 당시 국왕이었단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 목이 잘리게 된다.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가 국민들의 원성에 귀를 기울였다면 대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거대한 흐름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베르사유 앞 루이 14세의 동상
대혁명의 억울한 희생양, 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이란 우리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를 일컫는 말이며 파리의 대성당의 이름이기도 하다. 고딕 양식의 웅장한 대성당은 파리 한가운데 작은 섬인 시테섬에 자리 잡아 파리 시민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왔다. 성당 안에는 예수님의 머리에 씌워졌던 면류관이 보관되어 있어 그 성스러움을 더한다. 우리에게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로 유명한 장소이기도 하다. 매시 정각에 맞추어 시간을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면 저 안에서 노트르담의 꼽추인 콰지모도가 종을 울리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성당이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는 고초를 겪는다. 노트르담의 전면 부인 파사드에 장식된 왕들의 조각상이 프랑스의 역대 왕들이라고 착각한 시민들이 그 조각상들을 파괴한 것이다. 사실 그 조각상들은 성경에 나오는 유대의 왕들로 프랑스의 왕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사실 분노에 휩싸인 민중들의 눈에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 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트르담 성당은 억울한 희생양이 되었다.
파사드 하단부에 장식된 유대의 왕들
예수님의 면류관이 장식되어 있다
혼란의 시대에서 조화의 시대로, 콩코드 광장
파리에 위치한 콩코드 광장은 높이 솟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오벨리스크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시 약탈해 온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집트가 프랑스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러나 콩코드 광장이 가진 이야기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콩코드 광장의 원래 이름은 루이 15세 광장이었다.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대혁명 시기 기마상은 광장에서 끌어내려지고 그 자리에 단두대가 놓여있었다고 한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정치적인 혼란이 계속되어 왕족이나 귀족들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의견이 다른 사람들도 단두대에 올려 처형했다. 광장에는 많은 피가 흘렀고 많은 이들의 통곡도 함께 흘러나왔다. 수많은 피와 눈물이 마르고 나서야 평화와 조화의 시대가 찾아왔다. 그리고 피가 뿜어져 나왔던 광장에는 분수가 자리 잡아 물을 뿜기 시작했다. 이 광장에 콩코드(조화)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제 조화의 시대를 살고 싶어 하는 프랑스인의 바람이 담겼기 때문은 아닐까.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피가 흘렀던 광장에는 관광객들로 채워진다
프랑스 대혁명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프랑스의 절대왕정을 전복시킨 것만이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은 아니다. 시민의 힘으로 구체제를 전복시키고 시민의 정부를 세운 것. 그리고 구체제의 상징인 왕을 단두대에 올린 것. 이 엄청난 사건들은 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었다.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의 실현. 물론 서양의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존재했었다. 고대 그리스도 민주주의 국가였으니까. 하지만 그동안 의 민주주의는 그 권한이 제한적이었고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주권을 갖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국민들은 그들의 피를 댓가로 왕과 귀족들로부터 국가의 주권을 획득했다. 물론 대혁명 이후의 정치가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은 아니다. 혼란과 공포의 혁명정부 시기,나폴레옹 일가의 제정이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단두대에 세운 부르봉 왕가의 왕정이 다시 들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대혁명 이전과 이후는 분명 달랐다.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그 생각은 전세계에 큰 울림을 주었고 현대의 민주주의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