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근교 요코하마
일본의 개항은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개항은 미국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미국이 이른바 흑선이라는 근대식 전함을 이용한 무력시위를 한 결과였다. 미국이 일본을 개항지로 선택한 배경에는 미국의 서부 개척과 연관이 깊다. 골드러시로 대표되는 미국의 서부개척은 아메리카 대륙 지역에서 미국의 영역을 폭발적으로 팽창시켰다. 미국이 서부지역을 개척하면서 태평양 연안 역시 미국의 영역이 되었고 미국의 상품들과 사람들을 실어 나를 항구도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항구들을 기반으로 동아시아로의 진출을 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다른 유럽의 열강들에 비해 후발주자이긴 했으나 후발주자의 불리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동아시아 지역은 이제 막 세계로 그 기세를 떨치기 시작한 미국에게 매력적인 진출지였다. 그러나 미국과 동아시아지역 사이의 태평양은 너무 큰 바다였기 때문에 물과 식량 등을 보급하고 선원들도 쉬어갈 장소가 필요했다. 다시말해, 동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중간 보급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결정된 곳이 바로 일본 이었다. 요코하마도 그 당시 개항한 항구 중 하나였다. 서양세력의 무력에 굴복한 결과였지만 요코하마는 개항 이후 급속도로 성장했고 현재는 일본 전체에서 손꼽히는 항구도시로 자리잡았다. 비록 서양세력에 의한 개항은 타의였고 위기였지만 일본은 그것을 기회로 삼았다. 위기는 의지와 관계없이 찾아오지만 그 위기에 대처하는 것에 따라 결과는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기회로 일본은 주변국들에게 그들이 당한 방식을 그대로 배워 써먹었다. 그 대상이 된 것은 모두다 알다시피 한국, 대만, 중국 등 주변국가였다.
요코하마가 개항하면서 일본에는 서양인들이나 서양의 물자만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도 같이 유입되었다. 중국인들은 주로 통역이나 항구노동자 등에 종사하기 위해서 요코하마에 정착한 것이다. 당시 중국인들은 미주지역에서 항구 노동자나 철도 건설 등의 일자리에 종사했기 때문에 영어에 능통했다. 또한 일본과 같은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대략적인 의자소통이 가능했다는 점도 그들이 개항도시 요코하마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은 동아시아에서 꽤나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데 이곳 차이나타운의 중심에는 관제묘가 있다. 관제란 도교에서 신격화된 삼국지의 관우를 의미하니까 관제묘란 관우를 모신 사당인 셈이다. 관우는 생전 뛰어난 무장이었고 충신이었기 때문에 도교에서 무신이자 충절의 신으로 여겨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관우가 재물의 신도 겸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의 고향이 산서 지역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산서 지역에는 소금이 많이 났고 소금은 고대사회부터 귀한 재화였기 때문에 그곳의 출신인 관우가 재물의 신이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소금은 당시에 황금에 비견될 만큼 귀한 재화였는데 그 이유는 소금이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더울 때 땀을 흘리며 체온을 조절하는데 인체에서 땀을 배출하는 것은 인체 내의 소금, 나트륨 덕분이다. 지금에야 소금이 건강에 안좋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소금을 섭취하지 못하면 땀을 제때 배출하지 못해 체온을 조절할 수 없고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그 때문에 소금은 고대에 매우 귀하게 여겨졌고 비싸게 거래되었다. 소금이 가득 든 짐을 지고 중국 전역을 떠돌아다녔던 산서 지역의 상인들은 자신들의 고향 사람 중 가장 유명하고 강한 사람인 관우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삼아 그들의 안녕을 빌었고 자연스럽게 관우는 상인들의 신, 더나아가 재물의 신이 되었다.
이렇듯 관우는 중국인들이 중시하는 여러 가치들을 대표하는 신이기 때문에 도교에서 상위의 신으로 모셔지고 또한 사랑받는다. 이곳 관제묘에서 요코하마의 중국인들은 타국의 땅에서 이방인 의 삶을 살면서도 자신들의 신에게 복을 빌며 자신들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