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와 말뚝의 합주곡
로마 제국이 흔들리고 국경이 느슨해질 때, 이탈리아 반도로 수많은 이민족들이 넘어왔다. 주민들은 이민족들의 침입을 피하기 위해 도망칠 곳을 찾았지만 그들의 눈 앞에는 바다와 그 바다를 끼고 있는 갯벌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주민들은 그 갯벌과 갯벌의 섬들에 말뚝을 박고 주변의 돌을 쌓아 그들의 땅을 만들어냈다. 신이 그들에게 선사한 땅이 아닌 그들의 흙투성이 손으로 만들어 낸 땅. 그들은 그 땅을 일구어낸 데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사람들의 목표는 그들이 지낼 땅을 마련한 데에 그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의 땅과 한 몸이 된 바다, 아드리아해에서 그들의 삶을 찾았다. 그리고 그들의 배를 띄워 아드리아 해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탄생한 이야기다.
베네치아라는 도시는 수많은 운하와 다리들이 단단히 엮여 있는 도시이다. 그중에서도 운하는 이 도시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갯벌 위에 세워진 이 도시에 흐르는 물들이 고여서 썩지 않게 계속 흐르도록 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별다른 하수시설이 없었던 과거에는 이 운하로 생활오수들을 그대로 흘려보냈기 때문에 운하의 물들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한다면 도시 전체가 악취와 병균으로 가득 차 버릴 수 있다. 운하는 그 외에도 수많은 상품들을 실은 배들이 오가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큰 운하인 그란 카날이 지나는 리알토 지역은 예전부터 베네치아의 중요한 상업지역이었다. 리알토 지역에 놓인 리알토 다리가 큰 배도 다닐 수 있는 거대한 홍예교로 지어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운하와 더불어 베네치아의 명물인 다리들도 이 도시가 살아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앞서 말했듯이 베네치아는 갯벌과 그 갯벌에 있는 섬들을 메꾸어 만들어진 도시이기 때문에 그 지반이 매우 불안정하다. 때문에 갯벌 전체를 메꾸기보다는 비교적 지반이 불안정한 곳을 피해 도시를 만들었고 각 지역들을 잇기 위해 수많은 다리들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지형의 불가피함이 만들어낸 운하와 다리들이 현재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베네치아를 찾게 하는 명물이 되었다. 베네치아를 여행하면서 만나는 좁은 골목들, 수많은 운하와 다리들이 미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도시를 온몸으로 느끼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베네치아는 분명 아름답고 멋진 도시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은 도시이다. 특히 지반이 약해서 자동차 등 지상교통 수단이 다니기 어렵기 때문에 어지간한 거리는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베네치아 인들은 이점을 수상버스와 개인 보트, 곤돌라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극복했다. 베네치아 인들은 그들의 발인 보트를 너무 사랑한다고 전해지는데 그들의 집에 보트를 위한 출입구를 따로 만들 정도이다. 오히려 보트가 있는 쪽이 정문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또한 바다의 갯벌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보니 다른 도시들처럼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할 수 없어서 매우 곤란한데 베네치아 인들은 이따금 내리는 빗물을 저장하여 식수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베네치아 인들은 그들이 머무는 땅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용할 물까지도 그들 손으로 만들어낸 셈이다.
마지막으로 베네치아 인들이 직면한 불편함은 시신의 매장이었다. 베네치아는 매우 한정된 부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 자가 아닌 죽은 자들을 위해서 할당할 땅이 매우 부족했다. 그렇다고 해서 산 자와 죽은 자가 같은 공간에 오래 있다 보면 시신이 부패해 도시에 역병이 돌게 된다. 베네치아 인들은 이 어려움을 죽은 자들을 위한 별도의 섬을 만들면서 해결했다. 일종의 묘지 섬인데 오로지 죽은 자들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느낌 때문인지 섬 전체에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베네치아인에게 주어진 공간은 매우 한정되고 특수했지만 베네치아 인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꾸려나갔다. 도시가 인간을 만들고 인간이 도시를 만든다는 말이 절묘하게 들어맞는 도시가 바로 베네치아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명성이 워낙 자자한지라 우리 부부는 이 도시에서 좋은 사진을 많이 남겨 기억에 담아두고 싶었다. 특히나 신혼여행 아니던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담기 위해 우리는 사진작가 한 분에게 스냅사진을 의뢰했다. 어설픈 우리보다는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길이 더 낫지 않겠는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시간을 피해 좋은 사진을 건지려다 보니 매우 이른 시간에 사진작가님을 뵙게 되었다. 젊은 남자분이었는데 한 시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같이 움직이며 포즈도 잡아주시고 좋은 포토 스폿도 많이 알려주신 좋은 분이었다. 이 분은 우리의 남은 일정을 물어보시며 어디에 가면 좋은 곳이 있다는 말씀도 많이 해주었는데 특히 본인은 이탈리아에 오고 나서 밀라노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밀라노를 그저 거쳐가는 곳이라고 여기거나 아예 방문하지 않는 것을 매우 안타까웠다고. 특히 밀라노의 나빌리오 운하는 꼭 가보라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밀라노에 방문하면 한번 가보노라고 마음먹은 곳이었는데 추천의 말까지 들으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이분도 피렌체를 여행할 때 피렌체의 두오모를 찍다가 나처럼 그림을 밟아서 한창 실랑이가 벌어졌었다고 했다. 피렌체의 이른바 '그림꾼'들이 작가님한테도 마찬가지로 50유로라는 큰 금액을 불렀었다는데 이 분은 여차저차 협상을 해서 20유로에 합의를 보기로 했단다. 집사람이 나도 피렌체에서 그림을 밟았노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는데(사실상 놀림이었지만) 작가님은 눈이 똥그래지면서 나는 얼마에 합의를 보았냐고 물었다. 나는 다행히 한 푼도 뜯기지 않았다고 말하자 묘하게 작가님의 눈빛이 슬프게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물론 옳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나만이 그림을 밟은 것은 아니라고 아내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