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유의미하게 써야 된다는 강박감
초등학생 시절부터 귀가 아프게 들었던 구절이 있다. 바로 '네가 헛되게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다.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의미 있게 보내라는 금언 같은 말이지만 나는 이 말에 강박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다. 어릴 때에는 '놀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라.' 정도로 여겨졌다면 보다 많은 죽음들을 경험해본 지금의 나이에서는 하루가 끝나가는 것을 볼 때 두렵고 조바심이 들 때도 있다.
나이가 어릴 때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것이 매우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의 죽음은 삶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한두 시간 전까지 아침밥을 맛있게 먹던 사람도, 지난 명절까지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아주던 사람도 금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조차도 내가 언제 죽을 것인지 어렴풋이 알 뿐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소멸이 때로는 삶을 완전하게 만들어준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고매한 철학자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뿐 나로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고 느끼기에 하루가 가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특히 회사를 다니느라 가용시간이 너무도 짧아져버린 요즘에 이르러서는 더 그렇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나의 물리적인 하루는 회사에 출근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의 하루는 회사에 출근하여 정신없이 일하다가 지쳐 퇴근할 때 즈음에 이르러서야 시작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주어지는 몇 시간 되지 않는 그 시간에서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열심히 해보기도 한다. 어린 시절 공부하느라 미뤄두었던 컴퓨터 게임을 열심히 해보기도 하고, 독서도 해보며, 조금 더 활기찬 하루를 위해서 운동을 하기도 한다. 야경이 좋은 곳에 가고 좋은 곳에서 밥을 먹기도 하면서 오늘을 기억할 추억을 만들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에서 크게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저 가는 시간만이 아쉬울 뿐인 것이다. 금세 잠에 들어야 하고 그러면 또 다음날 출근일 테니까 조바심이 난다. 심지어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던 날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씻고 잠만 잘 때도 많다. 그렇다면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주말이라고 해서 상황이 다를까. 아니다. 그저 늦잠을 잘 수 있고 쓸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질 뿐이다.
시간이 가는 조바심, 안타까움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나의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현실에서도 기인한다. 취업이나 이직뿐만 아니라 연애, 결혼까지 말이다. 보다 더 일찍 시작했어야, 조금 더 빨리 깨달았어야 하는 부분들은 우리를 아쉬워하게 하고 조바심이 들게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든다.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내일부터라도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었나.
나는 나이에 비해서 취업을 빨리 한 편이었고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공부한 덕에 우수한 성적으로 첫 직장에 입사했지만 불행히도 첫 직장과 나는 맞지 않았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버티다 못해 나는 이직을 선택했고 이직한 직장에 만족하면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물론 이직한 직장이라고 해서 힘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첫 직장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본다면 나의 첫 직장 선택과 그곳에서의 나의 행동들은 실패였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경험까지 실패였는가라고 자문한다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모두가 인생을 살면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여겨지는 것도 그 당시에는 알 수 없는 것일 때가 많다. 내가 이직한 회사도 신입사원들의 이직률이 낮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첫 직장에 비해 이직한 나의 직장이 객관적으로 더 좋은 직장이다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첫 직장에서의 실패와 그 경험이 나를 버틸 수 있게 해 주고 이직한 직장이 가진 장점들을 더 잘 보게 만들어주었다. 크게 보면 인생의 진로나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또 작게 보면 하루를 보내는 데에 있어서의 선택도 그러하다. 지금 노는 것도 나에게 기쁨을 주는 행위로 본다면 꽤나 의미가 있고 공부를 하는 것도 미래의 성취를 위하여 또 의미가 있다. 하물며 낮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때리는 행위 자체도 나의 몸과 마음에 휴식을 준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인생에서 의미가 없는 행동과 시간이 없다. 오늘부터는 부디 더 조급해하고, 가는 시간에 덜 집착해보는 습관을 들여보아야겠다. 시간을 있는 그대로 흘려보내는 연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