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삶은 사라져 가고
우선 지금 우리 세대에게 있어 보통의 삶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느냐라는 것이다. 기성세대에게 보통의 삶이란 명확했다. 20살에 대학을 가고 30살 정도에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갖고 40살 즈음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가는 식이었다. 개인의 선호가 많이 반영되는 집과 차량, 가구의 구매 부분에서도 이상하리 만큼 획일화된 경향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것은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취업하고 비슷한 수준의 재정 수준을 가졌기 때문도 있겠지만 취향의 영역까지 보통의 삶에 최대한 다가가려는 경향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 세대의 삶은 많이 다르다. 기성세대의 기준으로는 이미 결혼도 해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는 없으며 주변의 친구들 중 절반 정도만 결혼하고 그중 절반 정도만 아이를 기르고 있다. 지금 우리 세대에 있어 보통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보통의 삶이라는 것이 이제는 지나치게 높게 설정된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하는 줄 알았던 취업은 너무도 힘들어졌고, 취업이 늦어지니 결혼도 출산도 어려워졌다. 특히나 기성세대 중 상당수에게는 당연했던 '내 집 마련'이라는 것도 우리 세대에게는 특권 같이 다가온다. 과거의 삶의 기준을 따라가는 것이 이제는 너무도 버거워졌다. 보통의 삶이라는 것이 더는 보통이 아니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렇게 노력하고 힘들여 보통의 삶이라는 기준에 자신을 맞춘다 한들 과연 그 길의 끝에 행복이 활짝 웃으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냐는 거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보통의 삶에서 정말 행복하고 있다면 '나는 잘살고 있어.' '내 인생은 그럭저럭 괜찮아.' 등의 말로 스스로를 위로할 일은 없을 테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꼰대라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도 이러한 심리에서 기인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될 테니. 그리고 그러한 보편성이 나에게 위안을 줄 테니 말이다. 과거에는 기성세대를 안 좋게 불렀던 '꼰대'라는 이 말도 이제는 나이와는 크게 상관없는 단어가 되었다. 소위 '젊은 꼰대'라는 새로운 인류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젊은 꼰대'라는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나는 보통의 삶이라는 기준에 맞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물론 노력도 많이 했지만 운도 꽤나 따라주었다.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이 참아야 한다. 특히나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일종의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말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위한 도전의 길은 항상 위험을 수반하니까. 한번 보통의 삶을 벗어나게 되면 패자부활전 따위는 없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보통의 삶을 힘겹게 따라가는 중이지만 한편으로는 과감하게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질 때도 있다.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고, 마음 내키는 대로 놀러 가는 형들을 볼 때마다 나이도 어린 내가 '그렇게 욜로 하다가는 골로 간다.'라고 젊은 꼰대스럽게 말을 할 때가 많지만 진심으로 그들이 행복해 보일 때가 많아 부럽다. 보통의 삶 기준으로는 내가 그들보다 가진 것이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나보다 가진 것이 더 많고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삶을 벗어나는 것이 아주 많이 두렵기도 하지만 보통의 삶을 계속 추구한다고 하여 나에게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니 이제라도 조금씩 하고 싶은 것들을 미루지 않는 일탈을 해보아야겠다.
때로는 보통의 삶이라는 기준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좌절감, 심하게는 상실감까지 주기도 한다. 사회에서 보통, 평범이라고 보이는 삶의 모습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평생 달려가도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느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신기루가 맞기도 한 것이 드라마나 광고, 영화 등에서 보이는 바람직한 가정이라는 것은 좋은 면만을 보여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집이 화목해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한들 가족 간의 관계가 좋은 것은 아니다. 또한 겉으로 화목해 보인다고 하여 그 구성원 전체가 행복한 것은 또 아니다. 누구나 상처나 결핍 하나씩은 가지고 있고 다만 그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것을 굳이 남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을뿐더러, 남의 결핍을 헤집는 것 자체도 사회적으로 무례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례한 자들은 세상 어디에나 상당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혹여나의 결핍을 가리는 것에 실패하여 남들에게 보이면 아, 저 친구는 보통의 삶의 기준에서 이미 멀어진 것처럼 보여버리니 악착같이 괜찮은 것처럼 나의 치부를 가리기도 한다. 그러나 굳이 그런 힘든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보다 남들은 나의 인생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나 또한 남의 인생에, 사회가 덧씌운 일반적인 삶의 기준에 신경을 꺼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나부터도 그러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한 발짝 나아가기로 했다. 나는 남들과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다른 길이지 틀린 길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