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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의 베트남 여행 - 하노이 4-2

숙적 중국으로부터의 문화적 영향

by 넙죽

중국 유교의 영향, 문묘


하루가 멀다 하고 치고 박던 형제들도 시간이 지나면 닮아가듯이 베트남도 중국의 지배를 오랜기간 받다보니 중국의 문물도 참 많이 받아들였다. 중국으로부터 유교와 불교, 도교 등을 받아들였는데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유교의 수용이었다. 유교는 알려졌다시피 신앙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처세와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술의 이론적 기반으로 기능하였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수많은 국가들이 이 유교를 통치이념삼아 자신들의 통치 구조를 공고히 하였다. 한 국가가 유교를 주된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과거제도와 문묘이다. 과거제는 유교를 공부한 우수한 유생들을 국가의 관료제 안으로 들이기 위한 제도이고 문묘는 유교에서 스승으로 여기는 성인들을 모신 일종의 사당이다. 베트남에도 과거제도와 문묘가 존재하였는데 베트남 여행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바로 이 문묘였다. 보통 문묘는 홀로 있지 않고 유생들을 키우는 교육기관과 함께 있기 마련이다. 이 문묘도 베트남의 국립대학 격이었던 국자감과 함께 존재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전성기 때에 비하면 많이 축소되었다고는 하나 현재 남아있는 부분도 상당히 넓어 과거 유교가 베트남에서 가졌던 위상을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성균관 같았다고나 할까. 학문의 정점을 찍은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보니 지금도 베트남 대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으러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보통 어떤 곳이던 가장 안쪽에는 가장 높거나 중요한 사람이 모셔지기 마련이다. 집안에서 가장 안 쪽방을 집안 어른이 쓰고 회사에서는 부서장의 자리가 가장 안쪽자리에 놓여있듯이 말이다. 헌데 유교의 성현들을 모신 이 문묘의 가장 안쪽은 공자 맹자 등이 아닌 베트남 역대왕조의 성군들이 모셔져있다. 공자와 맹자, 안자 유교 성현들도 모셔져있지만 베트남의 왕들보다는 앞쪽에 모셔져있다. 좋은 곳은 수용하되 우리가 베트남인임을 잊지 말자는 의지의 표현인듯 하여 참 베트남스럽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유교 성현들 보다 베트남의 왕이 더 안쪽에 모셔져 있다


중국 불교의 영향, 일주사


베트남이 중국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유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중국의 종교인 불교 또한 베트남으로 많이 전파되었다. 본디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되어 동남아시아를 거쳐서 동아시아 지역까지 전파되었는데 베트남은 같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태국과 같은 남방불교 보다는 중국 불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모습을 보인다. 특히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다른 지역의 불교보다도 기복신앙의 형태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기복신앙이란 현세의 복을 빌기 위한 신앙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내세에서의 평안이나 개인의 깨달음을 더 중시하는 동남아 지역의 다른 남방불교와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하노이에 위치한 일주사는 이러한 기복신앙으로서의 불교의 모습이 강하게 남아있다. 베트남의 리 왕조의 왕이었던 리 따이똥은 후계가 없어 고민하다가 관세음보살에게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리 따이똥은 아들을 얻게 되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기둥이 하나인 일주사를 지어바쳤다. 절이라기보다는 작은 암자에 가까운 이 곳은 연못 위에 기둥 하나가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진귀한 모습이기에 신묘한 느낌이 든다. 부처님의 공덕이 건물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인간의 간절한 기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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