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여행
30년 가까운 회사생활은 한 아버지가 은퇴를 하셨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로서는 짐작도 되지 않는 세월이다. 얼마 되지 않은 사회 생활 기간임에도 상처받고 힘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그 긴 세월 동안 아버지에게도 힘든 일이 참 많으셨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인 나로서는 그저 가끔 아버지와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 것이 유일한 위로였던 셈이었다. 아버지가 그동안 그 자리를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기에 아버지와 함께 한 이번 여행에서는 좋은 것들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타이베이 근교의 지우펀을 찾았다. 지우펀에 들어서자 수 많은 홍등들이 골목을 가득 채워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 냈다. 늘어선 홍등들을 바라보며, 지우펀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얼굴도 살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모습에 나도 비로소 안심을 하며 웃음지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를 어리게만 보는 아버지. 아니 아빠. 어른이 된 뒤에 몇번 아버지라고 부르려 했으나 거리감이 느껴지신다며 아빠라는 호칭을 더 좋아하시는 나의 아빠. 아빠와 대만에 와서 참 좋았다.
지우펀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근처에 위치한 황금 폭포를 가보고 싶어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인터넷 검색을 하여도 어떻게 가야할 지 감이 잘 오지 않아서 길을 가시는 택시기사님께 물어볼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당연히 대만분이라 생각하고 대화를 할 때 어느 정도의 바디랭귀지를 쓸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도 능숙하게 우리 말로 대답해주셨다. 처음에는 한국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말을 잘 하시는 오리지널 대만 분이었다. 나로서는 큰 횡재를 한 셈이었다. 항상 신년 운세를 보면 귀인을 만날 것이라는 운세가 나와도 귀인을 만난 적이 없더니 올해의 나의 귀인은 이분이셨나 보다. 황금 폭포에 가는 길을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는데 웬걸. 잠깐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라 짬이 나니 직접 태워다 주신단다. 그것도 무료로. 대만의 날씨가 너무 더워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시고 있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염치가 없기는 하지만 그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사님의 호의 덕분으로 황금 폭포에 매우 편하게 닿을 수 있었다. 아마 대중교통을 이용했더라면 아버지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매우 힘든 길이었을 것 같다. 매우 감사한 마음에 기사님께 약간의 돈으로나마 보답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기사님은 한사코 거절하셨다. 오히려 택시 안에 있던 생수 몇병까지 억지로 쥐어주시고는 천천히 잘 구경하고 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셨다. 낯선 사람의 호의를 받아 본 적이 얼마만이었을까. 아니 나도 낯선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어 본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였을까. 대만 아저씨의 이 작지 않은 친절로 나와 아버지는 황금 폭포를 무사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만에 대한 매우 따뜻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 한국에서 길을 못찾아 당황하는 외국인을 보면 먼저 말을 걸게 될 것 같다. 내가 받은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