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왕궁, 생 미셀 성당
벨기에는 현재 매우 발전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번영에 밝은 부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듯이 벨기에의 번영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바로 레오폴드 2세의 콩고 식민화이다. 유럽 열강들이 앞다투어 식민지를 확보하고 그 식민지들로부터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던 시기의 왕이었던 레오폴드 2세는 벨기에도 식민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그는 비교적 다른 열강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의 콩고로 침략하여 그들을 희생양 삼아 벨기에 왕실의 부와 번영을 꾀했다. 왜 벨기에가 아닌 벨기에 왕실이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당시 콩고는 레오폴드 2세의 사유지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벨기에 의회에서도 콩고에서 레오폴드 2세가 무슨 짓을 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된 수탈품은 고무였는데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콩고 주민들을 잔인하게 학대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추후 콩고는 벨기에로부터 독립하게 되지만 아직까지 식민통치의 상처는 아직 극복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때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한 나라였었다. 엄밀히 말하면 네덜란드에 의한 일방적 합병이었지만 말이다. 지리적, 인종적. 역사적 유사성 때문에 두 나라는 종종 구별하기 어렵지만 그 두 나라가 영원히 함께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우선 가장 큰 요소는 종교였다. 칼뱅파 등 신교를 신봉한 네덜란드와 달리 벨기에는 구교인 가톨릭을 믿었다. 아마 역사적인 이유도 한몫했을 터인데 원래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에 걸친 대 영토를 소유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던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군주 펠리페 2세에게서 독립하고자 했으나 결국 독립을 이룬 것은 네덜란드 지역뿐이었기 때문이다. 벨기에는 그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 프랑스 등의 지배를 받았기에 그들의 종교였던 가톨릭을 계속 믿게 되었다. 특히 프랑스와의 지리적 인접성과 그들에게 점령당했었던 역사 탓에 벨기에는 지금까지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브뤼셀에 위치한 생미셸 대성당은 벨기에의 이러한 모습들을 잘 보여주는 성당이다. 도시를 대표하는 거대한 가톨릭 성당 그리고 성당 내부에 놓여 있는,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미카엘의 동상은 벨기에에 미친 가톨릭과 프랑스의 영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