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만나다
베이징 시내 중심부에 약간 외곽으로 가면 황실의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외국인과 내국인 모두에게 인기가 있는 이화원이다. 거대한 곤명호를 품은 이화원은 사실 정원이라 부르기 어색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사실 놀라운 점은 이 거대한 곤명호가 사람의 힘으로 만든 인공호수라는 점이다. 중국의 토목기술은 참 여러 번 사람을 놀라게 한다. 곤명호에서 파낸 흙들을 쌓아 호수 옆 만수산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이화원의 모습을 한눈에 보고 싶어서 만수산 위에 지어진 불향각에 올랐다. 불향각으로 오르는 길에 마주한 현판에는 만수무강이라는 글귀가 써져있다. 불향각으로 오르는 길 자체가 수없이 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이 길을 오르는 나는 참으로 만수무강하지 못하였다. 어쩌면 이 거대한 정원에서 호의호식한 서태후는 만수무강을 누렷을 지 모르겠지만 그 서태후의 생활을 떠받친 민초들의 삶은 그다지 평안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화원을 나가는 길 어떠한 풍랑에도 흔들릴 일이 없어 보이는 돌로 만든 배가 보인다. 청나라가 어떠한 일에도 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만들어진 구조물이겠지만 민중의 고통을 외면한 왕조의 끝이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화원 근처에 또 하나의 황실정원인 원명원이 있다. 원명원은 이화원에 필적할만한 거대한 규모를 가졌기에 모두 둘러보는 데에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구역은 한정되어 있다. 이화원을 이미 보고 온 터라 관광을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가장 유명한 곳들만 보기로 했다. 원명원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아 지어진 서양루이다. 전형적인 중국식 건물 보다는 유럽의 신전이나 왕궁에 어울릴 만한 건물의 모습이다. 아마도 서양과의 교류가 시작되고 서양의 문물이 전파되면서 지어진 부분일 것이다. 황제와 후궁들의 공간이었던 이곳은 아름다움으로 유명했으나 1860년 영국 프랑스 영국군의 공격으로 인하여 폐허로 변했다. 지금 그 잔해들로 당시의 모습들을 상상해볼 수는 있지만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황제는 서양의 아름다움만을 서둘러 가져왔을 뿐 그들의 기술이나 문명을 받아들이는 데는 더뎌 결국에는 서양인들의 손에 중국이라는 그들의 터전을 내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