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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의 베이징 여행 - 베이징 5-4

애증의 만리장성

by 넙죽

삼고초려 끝에 방문하다, 애증의 만리장성


베이징에 왔으니 만리장성을 아니 볼 수 없다. 헌데 이 만리장성은 이번 여행에서 참으로 애증의 존재였다. 여행 첫날,만리장성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기위해 갔던 버스정거장에 힘겹게 도착했더니 전날의 폭우로 인하여 당일 만리장성 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망했지만 대체 일정이 있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헌데 다음날 도착했을 때에도 약간의 문구만 변경 되었을 뿐 만리장성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그대로였다. 베이징까지 와서 만리장성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금세 우울해졌다. 여행의 마지막 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찾아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나 스스로도 무척이나 불안했던지 되도 않는 중국어로 호텔직원에서 부터 현지 여행사 직원, 버스 안내원한테까지 시도 때도 없이 창청 카이 부카이마(장성은 개방합니까?)를 외쳤다. 그들의 대답은 카이(開). 연다는 의미 였다. 겨우 직행버스에 올라 베이징 시내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팔달령 장성에 도착했다. 입장권을 사고 장성에 올라서야 비로소 내가 만리장성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제갈량을 얻기 위해 제갈량의 처소인 융중을 세번 방문한 유비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세번의 시도 끝에 만리장성에 오른 나의 벅찬 감정은 유비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험준한 산 능선에 만들어진 장성은 마치 용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과연 인간이 어떻게 이런 구조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대단한 모습이었다. 가능이야 했겠지만 당시 만리장성을 만들었던 군인들과 인부들은 아마 무척이나 고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존경과 동정이라는 두가지의 복잡미묘한 감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만리장성은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이 최초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명나라 때의 장성이다. 진시황 시대에는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흙으로 쌓은 토성에 가까웠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만리장성도 이러나 저러나 황제와 관련된 곳인가 보다. 만리장성의 주된 목적은 북방민족에 대한 방어이다. 농경민족인 한족이 유목민족인 흉노, 거란, 여진, 몽골 등에 대한 경계심으로 만든 것이다. 역사적으로 북방의 유목민들은 강력한 기병을 바탕으로 중국 대륙을 위협해왔다. 만리장성은 기병들의 기동성을 저지하고 방어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데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스로를 장벽 뒤에 고립시키고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장성이 정말 효과가 있었다면 과연 북방의 유목민족이었던 맍주족의 청나라가 중국대륙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진정한 안보는 유형의 구조물이 아닌 체제의 건전성과 치밀한 방비에 달려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왜 중국인들은 나를 친근하게 느끼는가


참으로 요상하다. 한국에서도 그렇고 해외에서도 그렇고 중국 사람들은 나에게 말을 참 많이 건다. 보통 중국어로 말을 거는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말을 걸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단순히 길을 물어보는 수준도 아니고 어깨도 툭툭 치면서 친근감을 표하기도 한다. 나는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전달하고 싶어서 워 부 쓰 중궈런(나는 중국인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열심히 배워 말했지만 소용이 없다. 계속 친근감을 표현하며 말을 이어간다. 아마도 그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그들과 닮은 외모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다지 닮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는데 주변 친구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가 보다. 이제는 대놓고 소황제라는 별명을 붙여놨다. 이제는 그저 그려러니 한다. 생각해보면 중국사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도 중국 사람들이 꽤나 호감을 가질만 한 외모를 가졌다고 하셨다. 그때는 반신반의했지만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중국 분들이 말을 거는 것을 보니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에 베이징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고향에 가는 것이냐고 놀려댔다. 중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나의 운명을 받아들인 나는 잘 다녀오겠다는 말로 놀림을 받아쳤다. 그리고 이번 베이징에서 정말 고향에 온듯 잘 지냈다. 만리장성으로 가는 버스 안 . 한국인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중국인들로 가득한 버스 안에서도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다음 번에 중국에 갈 때는 중국어를 공부해서 현지인과 조금 더 많은 교류를 해봐야 겠다. 물론 이 다짐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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