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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의 간사이 여행 - 교토 3-1

천년의 고도, 교토

by 넙죽

무로마치 막부의 상징, 금각사


교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들 다르겠지만 나는 항상 금각사가 떠오른다. 태양빛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각사는 마치 태양 그 자체를 내 눈 앞에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금박으로 장식되어 호화로움의 극치에 도달했다할 정도로 화려한 이 누각은 항상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강렬한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금각사는 일본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지은 누각이다.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일본의 중세에 해당하는 무로마치 막부의 황금기를 이끈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랜기간 남북조로 나뉜 일본을 다시 하나로 통합하고 중국과의 무역확대를 통하여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등 일본의 경제와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불가에 귀의하기도 하는 등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금각사도 그 주인을 닮아서인지 당초에는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별장으로 지어졌으나 그의 사후에는 사찰로 그 용도가 변경된다.

금각사 건물을 자세히 보면 각 층마다 건축양식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1층은 일본 전통 귀족들이 선호하는 양식, 2층은 무사들이 선호하는 양식, 3층은 선종 불교에서 자주 쓰이는 건축양식을 사용했다고 한다.

귀족이 가장 아래에, 무사가 그 위에 불교가 가장 정점에 선 모습은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불교의 가르침 아래 귀족과 무사가 공존하는 사회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만큼 무로마치 막부 시대는 불교가 융성했던 시기이기도 했고 귀족과 무사가 교토에서 공존했던 때이기도 하다.

사실 무로마치 막부는 일본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막부와 귀족들로 구성된 천황의 조정이 한 공간에서 존재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실권을 한 손에 쥔 막부이기는 하나 명목상 일본의 지배자인 천황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고 불편하기 때문에 보통은 조정과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최초의 막부인 미나모토 가문의 가마쿠라 막부도 교토에서 떨어진 가마쿠라 지역을 그 근거지를 삼았고 무로마치 막부 다음 막부이자 마지막 막부인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 막부도 지금의 도쿄지역인 에도에 자리 잡았다. 유독 아시카가 가문의 무로마치 막부만이 교토에서 천황이라는 존재와 같은 공간에서 살을 부대끼고 살았던 것이다. 우리의 막부는 천황도 어쩌지 못하는 강력한 막부라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천황도 마음대로 세우고 폐할 정도의 힘이니 그랬을지도 모른다.

교토에 자리한 금각사는 찬란했던 무로마치 시대의 영광을 영원히 기억해달라는 듯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일본의 막부


일본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 일본의 실질적인 지도자 노릇을 해왔던 것은 바로 쇼군이었다. 쇼군은 본디 일본 열도의 이민족들을 토벌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장군을 의미하나 군사 분야의 최고 우두머리, 더 나아가 일본 전체의 실권자로 그 의미가 변화하게 된다. 막부는 이러한 쇼군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며 쇼군과 고위 무사들이 그 구성원들이다. 일본의 역사를 통틀어 세 개의 막부가 존재했는데 미나모토 가문의 가마쿠라 막부, 아시카가 가문의 무로마치 막부,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 막부가 바로 그 것들이다. 막부의 이름은 주로 해당 막부가 위치했던 지역의 이름을 딴 경우가 많다. 막부는 일본의 무사계급의 등장과 그 시작을 함께 했다. 일본의 무사계급은 원래 농민들이었으나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토지를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들었고 이들이 집단화하면서 하나의 계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막부는 실질적인 군사력을 가진 무사집단이 권력투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성립하게 되었으며 대정봉환이 이루어지는 도쿠가와 막부 말엽까지 실질적으로 일본을 지배한 일본의 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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