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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의 오키나와 여행-오키나와 3-2

열대의 낙원, 오키나와

by 넙죽

슬픈 역사를 가진 열대의 낙원


오키나와의 아열대 기후는 일본 본토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낸다. 도로 양옆으로 야자수들이 즐비해있으며 해안도로에는 에메랄드빛의 바다가 눈을 즐겁게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오키나와를 보면 낙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만 오키나와의 지난 역사들은 축복받은 낙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류큐왕국의 황금기가 끝나고 시마즈 가문을 통한 일본의 간접 지배, 메이지 유신 시대의 폐번치현 등을 거치며 일본에 복속되면서 그 비극은 시작된다. 힘이 약한, 작은 섬나라였던 오키나와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일본에게는 매우 좋은 먹잇감이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열대 기후는 사탕수수 등 일본에서 구하기 힘든 물자 등을 얻는 주요 통로였으며 본토와 멀리 떨어져있고 애초에 같은 민족이 아니었던 오키나와 사람들은 수탈하는 것은 망설일 것도 없는 일이었다. 일본의 가혹한 수탈은 오키나와 본섬에서 더 약자인 근처 군소 섬들로 전가되었고 일부 섬들에서는 가혹한 인두세를 견디기 어려워 집단 자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오키나와의 비극은 태평양 전쟁 때 극에 달하게 된다 . 전쟁 수행을 위한 많은 물자들을 약탈당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본 제국군과 미군의 직접적인 교전장소가 된 것이었다. 가혹하게도 일본제국군은 오키나와의 주민들을 살아있는 부비트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고 패색이 짙어지자 대규모 할복을 종용하기도 하는 등 오키나와인들에게 많은 희생을 강요하였다. 현재까지도 나이가 든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때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키나와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마치 전리품처럼 일본에서 미군에게 그 지배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오키나와는 이때부터 주일미군의 주둔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후 1970년대에 다시 오키나와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본으로 그 지배권이 넘어가게 되었음에도 미군들은 아직 오키나와에 주둔해있고 오키나와는 미군들의 크고 작은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너무 아름답고 탐이 나는 섬이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오키나와는 너무 아름다운 낙원이었기에 이처럼 슬픈 역사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키나와의 명물인 만좌모


고래상어를 만나다


오키나와에 있는 츄라우미 수족관에서는 거대한 고래 상어를 만날 수 있다. 사실 츄라우미 수족관에는 이 고래상어를 보기 위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츄라우미 수족관의 슈퍼스타인 셈이다. 주로 온대나 열대의 바다에서 서식한다고 한다. 커다란 몸짓으로 여유롭게 수족관 속을 유영하는 그들의 자태를 보니 아름답기 그지 없다. 상어라는 이름이 붙어있기 때문에 고래 상어 역시 매우 난폭할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은 매우 온순한 편에 속하며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수족관 한켠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고래 상어를 한참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요즘 혼자 사는 젊은 사람들 중에서 집에 수조를 두고 열대어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 때문인가 보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때때로 물고기에게 말을 걸면 덜 외로울 것 같아보이긴 하다. 나도 혼자 사니까 집에 수조 하나 놓아둘까도 생각했지만 만사를 귀찮아하는 나의 성격을 떠올리고는 그 생각을 고이 접었다. 먹이를 제때 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때때로 물도 갈아줘야 하니 말이다. 물고기의 입장에서도 나의 보살핌을 받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듯 싶으니 서로를 위해서 물고기는 수족관에서만 보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을 보는 것이 좋겠다.

츄라우미 수족관

열대의 선물들


열대의 날씨는 인간에게 견디기 힘든 태양열과 높은 기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 근사한 선물을 주기도 한다.

오키나와의 경우에는 파인애플과 사탕수수다. 파인애플은 우리나라에서도 과일 그 자체나 통조림으로도 매우 쉽게 마트에서 만날 수 있다. 솔방울처럼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지만 몇 번의 힘든 칼질을 거치고 나면 달콤한 향을 가진 노란 속살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파인애플이 어떻게 자라는지 아는 사람들은 몇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이 파인애플이 나무에서 자라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헌데 오키나와의 파인애플 파크에서 파인애플이 실제로 자라는 모습을 보니 상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사과와 같이 큰 나무에서 주렁주렁 열리지 않고, 마치 꽃처럼 줄기를 가지고 땅에서 자란다. 나에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오키나와의 또다른 작물인 사탕수수 또한 열대의 소중한 선물이다. 오키나와 방언으로는 우지라고 불린다고 한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단 맛을 얻기 위해서 오랜 시간 노력해왔다. 단 맛이라는 것은 음식의 맛을 좋게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맛이었지만 과일이나 벌꿀 정도에서 얻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른바 설탕이라는 것은 중세 유럽 시기에는 이 것도 어느 정도 형편이 되는 부유층이나 귀족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여서 일반 농민들은 비교적 값싼 당근을 통해서 단 맛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당근 케이크 같은 음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탕수수가 등장하면서 단 맛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강한 단맛을 내는 작물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을 들이고도 설탕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열대에서는 매우 잘 자라는 작물이다 보니 오키나와 같은 열대 지방에서는 중요한 상품 작물이었다. 이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 또한 오키나와의 주요 특산품이다. 나는 오키나와의 사탕수수 즙을 우연히 맛볼 수 잇었다. 가공된 설탕이 아닌 바로 짜낸 사탕수수 즙을 맛보게 되다니! 바로 짜낸 사탕수수 즙은 생각 만큼 엄청 달지는 않았지만 사탕수수의 향과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오히려 너무 달았다면 갈증을 가시게 하는 데에는 적합하기 않았을 것 같다. 오키나와의 강렬한 태양에 퍽 지친 나에게는 꼭 필요했던, 매우 적절한 수준의 당 충전 음료였다.

지금은 기계로 즙을 짜지만 옛날에는 소가 그 역할을 대신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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