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사를 만나다
다음날 여행은 우사에서 시작했다. 우사는 매우 조용한 마을이지만 그 곳을 찾은 이유는 우사 신궁 때문이다. 일본은 신들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신사가 많지만 신궁은 일반 신사와는 격이 좀 다르다. 신궁은 일반신이 아닌 천황가와 관련된 신을 모시는곳이다. 그랬기 때문에 신사가 아닌 신궁이라고 불린다. 신토사상의 중심이 천황가이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라 생각했다. 우사 신궁은 일본에 존재하는 하치만 신사들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 하치만이라는것은 천황가의 초기 천황인 오진천황을 주신으로 모시는 신앙이다. 우사 신궁은 일본의 3대 신궁 중 하나인데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메이지 천황을 기리는 메이지 신궁,천황가의 조상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이세 신궁과 더불어 일본 신토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가 방문한 날은 태풍 란이 일본을 휩쓸고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비가 많이 쏟아지는 새벽시간대였지만오히려 풀냄새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새벽공기 때문에 신비한 느낌을 자아냈다. 우사신궁은 크게 상궁과 하궁으로나누어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상궁의 본전이다. 일본인이라면 이곳의 세전함에 동전을 던지고 박수를 치는등의 참배행위를 하겠지만 일본의 천황에 대한 복잡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차마 참배까지는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본의 문화를 알기 위하여 방문은 하지만 아직까지 신사는 한국인에게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사 신궁을 떠나서 시모노세끼로 갔다. 시모노세끼는사실 북규슈지역은 아니지만 워낙 북규슈지역과 가깝고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라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모노세키에 들러 아카마 신궁을 방문했다. 사실 시모노세키는 일본의 본섬인 혼슈에 있으나 내가 여행한 북규슈 지역과는 다리 하나면 건너면 갈 수 있는 곳이라서 연계해서 많이 방문하고는 한다. 아카마 신궁은 안도쿠 천황을 모신 신궁이다. 사실 고대 일본에는 두명의 천황이 존재하는 시기도 있었다. 일본의 큰 무사집단인 헤이케와 겐지가 일본의 패권을 두고 다툴 때 각 무사집단별로 각자의 뜻에 부합하는 황족을천황으로 옹립하였다. 안토쿠 천황은 헤이케 쪽의 천황이었는데 결국 겐지의 세력에게 패해 도주하다가 천황의 상징인 삼종신기를 껴안고 바다로 뛰어들며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삼종신기란 천황이 신의 자손임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한자루의 칼과, 옥구슬, 청동거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황의 권위를 상징한다. 사실 당시 안도쿠 천황의 나이가 8살남짓이니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리는 만무하고 주변의 신하들이 권했기 때문일텐데 그때 신하들이 안도쿠 천황에게 바다에 뛰어들것을 권하면서 한 말이 용궁을 구경하러 가자는 것이었단다. 그래서 안도쿠 천황을 기리는 아카마 신궁은 용궁처럼 붉은 색을 칠했다고 한다.
아카마 신궁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아카마 신궁에는 귀없는 악사 동상이 있는데 이 동상의 주인공은 호이치라는 장님 스님이다. 이 스님은 비파를 타는 실력이 뛰어나 헤이케 가문의 원혼들이 이 스님을 데려가려고 했단다. 그 절의주지스님이 이를 알고 호이치 스님의 몸에 불경을 새겨 원혼으로 부터 보호하려고했는데 하필 귀는 빠뜨려 귀는 원혼에 의해서 잘려나갔다고 한다. 호이치스님의 동상 근처에 헤이케 무사들의 합동묘가 있는 것을 보니 먼가 으스스하니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원통함을 가지고 죽은 어린 천황과 그의 무사들이 많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만 같다.
일본 신토에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있어서 일본을 신들의 나라라고까지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의 작은 마을에까지 신사가 없는 곳이 없으니까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인듯 하다. 때로는 조상이 신으로 모셔지기도 하고 때로는 동물이, 자연물이 신의 자리에 오르기도 한다. 어쩌면 예전에 우리네 마을 어귀에 있던 서낭당의 감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일본의 신사는 그 지역의 문화와 결합하며 때로는 지역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그 기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신사에 대하여 좋게만 볼 수는 없다. 일본의 신토는 일본 천황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천황가의 신격화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황가의 신격화는 일본 제국주의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그들로 하여금 많은 피해를 보았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지금의 서울 남산 타워 대신 남산에 큰 신사가 자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매우 충격이었고 그 이후에 일본의 신사에 대하여 그다지 좋은 감정을 느끼기가 매우 어려웠다. 지금도 사실 일본의 신사를 방문할 때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한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의 문화에서 신사를 빼놓을 수는 없기에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방문을 하기는 하지만 신사에서 절을 올리거나 하는 등의 참배 행위는 하지는 않는다. 그 것이 내 조상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