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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의 북규슈 여행 - 북규슈 4-3

일본 개항은 무엇을 남겼는가

by 넙죽

일본은 무엇을 그리워 하는가, 모지코 레트로


일본 전국시대의 최종 승리자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쿠가와 막부를 세운 후 일본은 쇄국 정책을 표방해왔다. 임진왜란 이후 쇠퇴한 국력을 회복시키기 위함도 있었겠지만 특정 지역의 영주가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힘을 쌓아 막부에게 대항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쇄국 정책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거대한 전함의 위력에 힘없이 무너졌다. 쇄국 정책이 무너진 후 일본은 빠르게 태세를 전환하여 적극적인 개항을 하게 되고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근대화를 이루게 된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모지코항은 이러한 일본의 개항 시대의 흔적을 느낄수 있는 곳이다. 모지코 항은 규슈의 관문같은 항구이며 일본의 본섬, 혼슈와도 다리 하나를 두고 맞닿아 있다. 이 항구는 일본의 개항시기부터 태평양전쟁시기까지 무수한 물산들이 오가던 곳이니 만큼 일본 개항 시기의건물들의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세관건물이 인상적이었는데 세관건물이 이토록 크게 남아있다는것은 이 지역의 무역량이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금을 부과할 건수가 많았다는 것이니 말이다.

모지코 항의 번성은 사실 일본 제국시대의 결과물이니 그 피해자인 우리로서는 마냥 좋게 볼 수는 없다. 일본인들이 이 모지코 항을 모지코 레트로라고 부르는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레트로라는 것은 복고를 의미 하는데 과거의 영광스러운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상처인 일본 제국 시대가 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과거인가 보다. 한 편으로는 그들이 빠르게 개항을하고 힘을 키울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새로운 것에 열려있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것.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지 않은가.

모지코 항의 세관 건물
저 다리 하나를 건너면 혼슈(시모노세키)다

모지코의 상징이 왜 바나나인가


모지코 레트로를 다니다 이곳의 명물 바나나맨을 만났다. 보통 이런 캐릭터들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해 귀엽게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그냥 바나나 옷을 입은 아저씨 모습이다. 이 독특한 모습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겠지만. 개인의 취향 문제이겠지만 나는 나와 같은 아저씨의 모습을 한 바나나맨을 사랑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바나나가 생산되는 열대의 지역도 아닌데 왜 이 곳에는 바나나 옷을 입은 사내들이 있을까. 그것은 이곳 모지코가 일본에서 최초로 바나나가 수입된 곳이기 때문이란다. 일본으로 수입된 바나나는 대만에서 온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바나나는 조금 사는 집에서나 먹던 고급 간식이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바나나 한송이 사는 데 큰 부담이 없지만 옛날에는 송이 단위가 아니라 바나나 한개 사기도 부담스러웠던 시기였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적인 모습과 달콤한 향 때문에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일본인들도 처음 바나나를 접했을 때 비슷한 기분이었지 않았을까.

한번 더 생각하면 대만도 일본의 식민지 중에 하나였으니 일본인들이 바나나를 먹게 된 것도 일본의 팽창 정책의 결과물이기는 하다.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한 나라에게는 영광스럽고 속된 말로 잘 나가던 시절이 다른 나라의 가슴 아픈 과거와 연결되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

모지코의 명물인 바나나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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