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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의 북규슈 여행 - 북규슈 4-4

북규슈의 맛

by 넙죽

북규슈의 맛


북규슈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돈코츠 라멘일 것이다. 라멘의 본고장인 일본에서는 여러가지 종류의 라멘들이 있지만 나는 특히 이 돈코츠 라멘을 제일 좋아한다. 특히 돼지의 뼈를 우려낸 진한 국물이 주는 감칠 맛과 쫄깃한 면발은 식욕을 자극한다. 친구와의 술 한잔에 얼큰하게 취한 어느 겨울의 늦은 밤. 돈코츠 라멘의 따뜻한 국물로 몸을 녹이고 귀가한 적도 많았다. 우리 부모님 세대 중에는 일본의 라멘이 느끼하다고 싫어시는 분들도 아직까지 많으신 것 같다. 아버지도 90년대 즈음 일본에 출장가셨을 때 처음 일본의 라멘을 접하게 되셨는데 너무 짜고 느끼해서 몇 입 못드셨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 세대는 라멘을 자주 접해서인지 라멘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일본까지 가지 않아도 맛있는 라멘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돈코츠 라멘의 진한 감칠맛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로서는 아무리 일정에 쫓기고 피곤하더라도 본고장의 라멘을 맛보지 않고 귀국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규슈 지방은 돈코츠 라멘의 본고장이지 않은가. 라멘과 함께 교자도 한 접시 시켜먹었다. 보통 일본에서는 보통 라멘집에서 교자를 같이 판다. 사실 일본에서 라멘 자체가 차이나 타운에서 시작된 요리이기 때문에 교자를 같이 파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국집 요리인 짜장면도 그 시초는 차이나 타운에서 시작되었지만 한국의 음식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는데 일본의 라멘의 유래도 차이나 타운이라니 재미있다. 일본의 라멘도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지 않은가. 이 날은 태풍 란이 일본을 강타한 날이라서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관광을 해 체온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상태였는데 라멘 한그릇과 교자 한접시를 먹고나니 한결 견딜만 해졌다.

돈코츠 라멘
교자

돈코츠 라멘 외에도 기억에 남는 요리들이 몇가지 더 있다. 고로케와 카레이다. 고로케와 카레는 일본의 개항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두 요리 자체가 개항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불교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육식을 하지 않았는데 개항을 하면서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자 육식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래도록 육식을 하지 않았던 나라였기 때문에 육류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적은 양의 고기로 고기의 맛은 느끼면서 배불리 먹기 위해 고안된 요리가 고로케와 카레이다. 음식의 양을 늘리는 데에는 자고로 튀기는 것과 그 국물을 내는 것만한 것이 없다. 튀긴 쪽이 고로케, 국물을 낸 쪽이 카레이다. 우선 고로케부터. 적당양의 고기를 갈아 튀김 옷을 입히면 적은 양의 고기로도 많은 양의 열량을 내는 훌륭한 요리가 된다. 튀겼으니까 당연히 맛을 수밖에 없다. 많이 먹게 되면 뱃살도 적당히 만들어주어 마치 잘먹고 잘사는 부유층의 외모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아니면 평범한 뚱뚱보로 보이던가. 물론 경험담이다. 온천 마을인 유후인의 거리에 파는 고로케가 참 맛있었는데 기름에 튀겼음에도 느끼하지 않고 고기의 육즙이 잘 살아있어서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예산과 시간이 허락하였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서너개 더 사먹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카레 또한 적은 양의 고기로 맛있는 한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요리이다. 특히 자취생에게는 이만 한 요리가 없다. 따끈한 흰 쌀밥에 카레를 얹으면 더 이상의 반찬이 필요없다. 약간의 돼지고기와 카레가루, 양파 등 적당양의 채소 정도만 있으면 그럴싸한 요리가 탄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맞벌이인 어머님들이 참 많이 애용하시는 요리이기도 하다. 나도 어렸을 때에 참 많이 먹었다. 한 때는 질려서 한동안은 카레를 일부러 먹지 않았었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취생활을 하다보니 어느새 카레를 만들고 있더라. 카레 한 그릇에서 어머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일본에서는 모지코 항에서 일본 카레를 맛보았다. 카레 위에 치즈를 얹은 일종의 야끼 카레이다. 카레 위에 치즈를 얹은 맛이 상상이 되지는 않았으나 치즈의 맛과 카레의 향이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거기다가 쌀밥까지 어우러지니 든든한 한끼였다. 일본에서 카레가 번성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도 쌀밥과 잘 어울려서일 것이다. 일본이나 우리나 쌀을 주식으로 하고 쌀로 지은 밥을 먹어야 그래도 식사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20대 때는 빵이나 파스타만 먹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30대가 되면서 밥과 김치를 먹어야 밥을 먹은 것 같더라. 나이에 따라 식성도 변하나 보다.

복어 튀김과 야끼카레

마지막으로 시모노세키의 가라시장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가라토 시장은 우리나라의 수산시장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수산시장은 회를 주로 팔지만 이곳에서는 스시를 주로 판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각자 마음에 드는 가게에 가서 마음에 드는 스시를 고르면 된다. 같은 종류의 스시라도 가게마다 가격도 다르고 스시에 올려진 생선의 크기도 다르기 때문에 골라 담는 재미가 있다.
초밥의 기원은 시큼하게 발효된 생선이라고들 한다. 생선에 밥알을 발라 발효시키는 것이다.그냥 먹어도 맛있는 생선을 굳이 발효시킨 것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 생선의 부패를 막아 오래도록 먹기 위함이었다. 당시 생선은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서 발효된 생선을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발효된 생선의 시큼한 맛에 길들여진 일본인들은 그 진미를 계속 맛보고 싶어했으나 발효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스시의 밥인 사리에 초를 섞어 시큼한 맛을 냈다. 그래서 우리가 스시를 초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거기에 생선살인 네타를 얹어 감칠맛을 더하고 네타와 사리 사이에 와사비를 발라 코끝 찡한 매운 맛까지 더한다. 생선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이 맛의 향연을 저렴하게 접할 수 있으니 행운이라고나 할까.
물론 수산 시장이기 때문에 회도 먹을 수 있다. 특히 이 지역의 특산물인 복어회가 일품이다. 종잇장과 같이 앏게 떠진 복어회를 보니 군침이 삼켜졌다. 사실 복어는 매력적인 생선이지만 체내에 독이 있어 제독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목숨을 걸고 먹어야하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숙련된 요리사가 손질한 복어는 안전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일본에서 이 복어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 있다. 이토 히로부미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나라에게는 철천지 원수이지만 일본에서는 일본 근대화에서 꽤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시모노세키가 속한 야마구치현 출신인 그는 일본의 근대화에 참여하여 일본을 단기간 안에 강국으로 만드는데 크게 일조한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전통 강국인 청나라를 청일전쟁에서 격파하고 이 곳 시모노세키의 춘범루라는 복요리집에서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가 좋아했던 복어에는 죄가 없지만 복어를 좋아했던 그는 우리에게 참 많은 죄를 지었다.

이 지역은 복어가 인기다
다양한 맛의 초밥들
시모노 세키의 명물인 복어회
이토 히로부미(왼쪽)와 당시 일본의 외상 무쓰 무네미츠(오른쪽)

이토 히로부미에 대하여


이토 히로부미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나라를 침략한 원흉이라는 것 이외에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가문의 배경 없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일본의 권력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바늘 장수 출신이었고 이토 히로부미는 농민의 자식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출신은 훌륭하지 않았지만 그 재능 만큼은 특출났다. 당시 근대화 사상가였던 요시다 쇼인의 제자로 들어가 실력을 키웠고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에 메이지 유신 등 일본 근대화에 참여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 이후 내각에서 여러 중책을 맡다가 총리대신 등을 역임하고 조선 통감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조선에서 참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의 최후는 모두가 알다시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기에 그의 삶이 의미하는 바도 크다. 왜 히로부미와 일본은 근대화를 이룬 후 조선을 포함한 이웃나라들을 침략해야만 했을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탄이 박히지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핵 폭탄이 투하되는 일도 없었을텐데.


패밀리 레스토랑의 추억


내가 학생일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아주 인기였다. 가격이 비싸서 자주 갈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생일 같은 때에 방문하게 되면 꽤나 신이 났던 기억이 났다. 맛있는 음식과 평소에 가던 식당과는 달랐던 분위기. 특히 처음 가족끼리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을 때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주말에 가족끼리 외식을 한다는 것 자체에 설렜던 기억과 가족들과 같이 나누었던 따뜻한 기억이 나에게 남아있다. 혼자 타지에 사는 지금은 가족들과 한달에 한번씩 얼굴을 보기도 힘드니 매우 아쉽다. 한국에서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인기가 약간 사그라들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패밀리 레스토랑이 성업중인가보다. 북규슈를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본 식당이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잠시 묵었던 료칸에서 아침을 먹으라며 식당 쿠폰을 주었는데 그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식당도 근처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과거의 추억도 떠올릴 겸해서 식사를 하기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사실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개념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두번의 식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일정을 마친 후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었고 두번째는 아침으로 먹었다. 처음에는 규슈의 명물인 명란으로 만든 파스타를 먹었다. 명란에 파스타를 비벼먹는 단순한 형태였지만 짭쪼름하면서 감칠맛이 나 맛이 괜찮았다.

두번째로 먹은 음식은 일본식 조식이었다. 미소된장국과 흰 쌀밥 그리고 달걀부침과 소시지 베이컨, 샐러드 등이 어우러졌다. 완전히 동양식도 아니고 서양식도 아닌 아침상을 받아보니 개항 이후의 일본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양의 정신과 신체를 가졌지만 서양의 문물을 빠르게 흡수해 성장한 일본. 쌀밥 한 숟갈에 베이컨을 얹어 먹으며 동서양이 어우러진 오묘한 조화의 맛을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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