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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의 시고쿠여행 4-4

시고쿠의 맛

by 넙죽

일본인의 소울푸드, 덮밥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는 국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진한 국물의 순대국밥을 먹고나면 그날의 안좋은 일도 눈녹듯이 녹아버리는 기분이다. 국밥이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저렴한 가격에 밥 같은 밥을 먹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자의 영혼도 치유해줄 수 있어 모두의 소울푸드인것이다. 일본에도 이러한 소울푸드가 있다. 덮밥인 돈부리이다.
가장 대표적인 돈부리는 규동이다.300엔에서 400엔 사이에 맛볼 수 있는 규동은 이 저렴한 가격에 고기와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게다가 양도 꽤 넉넉해 주린 배를 가득 채워 준다. 주문 직후 바로 음식이 나오는 패스트푸드이지만 맛과 영양은 패스트푸드의 그것이 아니다. 나는 사회초년생때 쓰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 퇴근 후 순대국밥 한그릇에 소주 한잔을 마시며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했는데 일본 땅에 사는 사회초년생은 규동 한그릇에 생맥주 한잔을 마시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나라나 직장인의 퇴근길은 지치고 배고프다. 그리고 그것을 달래주는 것이 소울푸드인 것이겠지.


이번 여름은 참으로 무더워서 사람의 진을 빼곤 한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에는 보양식을 먹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장어는 보양식 중 하나로 여겨지는데 일본에서도 장어는 보양식이자 매력적인 식재료로 평가된다. 이 장어를 이용한 요리 중 맛이 좋은 것은 우나기동이다. 일어로 우나기는 민물장어이다. 달달한 간장 양념에 졸여진 장어의 맛은 여름날 지친 몸과 마음에 기력을 더해준다. 가격은 조금 비쌀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장어를 맛보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니 여름을 나느라 고생하는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로 적당하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덮밥은 텐동이다. 텐동이란 일본식 튀김인 텐푸라를 얹은 돈부리란 뜻이다. 일본에서는 튀김이 꽤나 고급음식이었다. 애초에 기름이 매우 귀했고 더군다나 지금도 비싼 참기름으로 튀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튀김요리를 해본 사람을 알겠지만 튀김은 참 기름이 많이 필요한 요리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텐푸라를 참 좋아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이 텐푸라를 즐겨먹다가 복통으로 세상을 떠났다고도 전해진다. 텐동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왕 새우를 튀긴 에비텐이다. 바삭한 튀김을 먹고 느끼해진 속은 밥과 미소된장국으로 마무리한다. 황홀한 만찬이다.

일본식 김밥인 마끼


일본은 스시로 유명한 나라이다. 헌데 생선살인 네타가 쌀밥인 사리에 얹어져있는 모양인 일반적인 초밥과 달리 우리나라의 김밥과 비슷한 모양의 초밥이 있다. 마끼이다. 식재료가 밥 안에 품어져있고 마지막으로 김이 마끼 전체를 튼튼하게 감싸고 있다. 일반적인 초밥은 젓가락질을 하다가 모양이 뭉개져버리기 십상인데 마끼는 그에 비하 김으로 감싸져 있어 모양이 마지막까지 흩트러 지지 않아 젓가락질이 서툰 나의 입장에서는 참좋은 음식이다. 나는 마끼 중 네기도로마끼를 주문했다. 네기도로는 참치갈비살을 말한다. 익숙하고도 깔끔한 맛이라 이번 여행을 함께 한 부모님도 참 맛있게 드셨다.


에히메의 명물들


마쓰야마가 속한 에히메현에는 참 맛있는 것들이 많 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도미밥인 타이메시다. 이지역은 도미가 유명한데 밥과 함께 먹는 방식으로 도미를 먹어왔단다. 타이메시는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다. 도미 회를 밥 위에 올린 후 달걀 노른자와 타래소스 그리고 와사비를 얹어 먹는 형태이다. 도미 회덮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타이메시는 에히메현의 우와지마지역에서 먹는 식이란다. 다른 하나는 도미 한마리를 밥과 통채로 솥에 넣고 쪄내는 방식으로 마지막에 도미살을 으깨 밥과 함께 먹는다. 주로 마쓰야마 지역에서 먹는 방식이다. 도미 살의 고소함이 밥알 하나 하나를 감싸 밥의 풍미를 더해준다. 사시미 형태의 타이메시의 주인공이 싱싱한 도미 살이라면 솥밥 형태의 타이메시는 밥이 주인공인 셈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던 도미가 있어야만 타이메시의 맛이 완성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마쓰야마식 타이메시
우와지마식 타이메시

에히메현에서는 도미가 참 많이 잡히는 지 타이메시 외에도 도미 요리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엄마는 도미 머리로 요리 한 찜요리들을 참 맛있게 드셨다. 어두육미라 했던가. 엄마가 선택한 도미머리 요리들은 하나 같이 다 맛있었다.

도미는 생선의 왕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화려한 맛을 가진 생선이지만 꼭 화려한 음식만이 매력있는 것은 아니다. 에히메현에서 사는 작은 생선인 쟈꼬로 만든 어묵 튀김인 쟈코텐은 소박하지만 맛좋은 생선요리이다. 에히메현의 특색있는 요리를 먹고 싶다면 쟈꼬텐에도 도전해보심이 어떠할지.


고치현의 명물, 가쓰오 와라야끼


시고쿠 남쪽에는 고치현이 있는데 비록 일정상 가보지는 못했으나 운이 좋게도 내가 주로 여행했던 지역인 마쓰야마에서 고치현의 명물인 가쓰오 와라야끼를 맛볼 수 있었다. 가쓰오는 가다랑어를 뜻하고 와라야끼는 짚불에 굽는 방식을 말한다. 가다랑어 짚불구이라할 수 있다. 부산의 꼼장어 구이가 생각이 나는 조리 방식이다. 짚불에 가다랑어를 구우면 순간적인 화력이 강하기 때문에 겉이 바삭하게 익으면서 짚의 향이 배어 풍미를 더해주는 효과를 준다. 순간적으로 강하게 익히면 겉은 익고 속은 익지 않은 타다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구이와 회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별미이다. 짚불의 향이 아직도 나의 구미를 자극한다.

카가와 현의 명물, 사누키 우동


시고쿠의 또다른 현 카가와는 우동현이란 별명이 있다. 카가와현이란 이름은 낯설지만 사누키 우동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누키가 바로 카가와현의 옛 지명이다. 사누키 우동이 유명한 이유는 특유의 쫄깃한 면 때문이다. 우동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쫄깃한 면의 식감이 맛에 주는 영향력은 꽤나 절대적이었다. 우동이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현지에서 맛본 우동은 기대이상이었다. 우동만 먹기 위해서 이 지역을 방문해도 될 정도였다. 이 지역의 우동집들은 주로 제면소 형태로 운영되는데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우동 그릇에 면을 받아 기호에 따라 찬 육수나 따뜻한 육수를 붓는다. 보통 차게 먹는 우동을 붓카게 우동이라 하고 따뜻하게 먹는 우동을 카게 우동이라 한다. 얹는 토핑에 따라서도 우동의 종류는 더 다양해진다. 이른바 우동 천국. 시고쿠에서는 오헨로의 순례길 뿐만 아니라 카가와의 우동집들을 잇는 우동 순례길도 존재하나보다. 한끼에 적어도 두세군데의 우동집을 순례해보자

차갑게 먹는 붓카게 우동 그리고 갈치와 전갱이 텐푸라
역시 우동은 튀김과 먹어야 제맛
카게 우동과 온센다마고, 치쿠와 텐푸라

한해의 액운을 끊어주는 소바


우동은 탱글한 면이 매력이라면 소바는 메밀의 고소함과 장국의 감칠맛이 매력이다. 메밀로 만든 면은 밀로 만든 그것과는 다르게 글루텐 함량이 적어 잘 끊어진다. 일본은 이러한 메밀 소바의 특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한해의 마지막 날. 소바 면을 끊어 먹으며 그 해의 안좋은 기억들과 액운들을 끊어내는 것이다. 원래 안좋은 기억은 좋은 기억보다 잊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의식을 치르면 안좋은 기억들을 잊어내기 다 수월해지지 않을까. 메밀을 갈아 직접 면을 만든 이 집의 소바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메밀면만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스시나 사시미 같이 화려한 요리도 좋지만 소바의 본고장에서 소바를 먹어보는 일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닭고기가 들어간 장국에 찍어먹는 츠케 소바
소바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차를 마시는 것에도 기품이 있다


차는 한중일 삼국이 모두 즐겨마시는 음료이지만 각 국가별로 선호하는 차의 종류는 다르다. 일본은 가루 녹차. 말차른 즐겨마신다. 녹차의 영양을 그대로 즐길 수 있고 쌉싸레한 맛이 매력이다. 붓으로 거품을 내기 때문에 보다 풍부한 맛을 느낀 수 있다. 달달한 화과자와 당고 등과 함께 즐기는 말차는 식후의 훌륭한 디저트이다. 다양하고 화려한 요리들이 몸을 위한 것이라면 차를 마시는 것은 일상의 분주함에 쉼표를 찍어주는, 정신을 위한 행위이다. 특히나 일본에서는 차를 마시는 데에도 도가 있다고 한다. 이른바 다도. 다다미방에서 일본식 정원을 보며 일본의 다도를 살짝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크리미한 말차와 함께 나오는 간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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