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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의 시고쿠 여행 4-3

걷는 것의 즐거움

by 넙죽

일본의 순례길, 오헨로


시고쿠에는 꽤나 유명한 순례길이 있다. 오헨로이다. 시고쿠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잇는 길로 시고쿠의 고승인 홍법대사가 머물렀던 절과 걸었던 길들이다. 이 오헨로는 내가 시고쿠를 오고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우연히 티비에서 접한 오헨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팡이 하나를 들고 시고쿠의 사찰들을 돌며 자신만의 사색에 빠져있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 오헨로를 걸으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는 한단다. 시간이 있다면 오헨로의 사찰들을 모두 돌아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기에 마쓰야마에 위치한 오헨로의 사찰 중 이시테지를 방문했다. 이시테지는 아름다운 경내로도 유명하지만 절 곳곳에 오헨로의 순례자들을 형상화한 상징들이 더 눈에 띄었다. 커다란 삿갓을 쓰고 지팡이 하나를 들고 가볍게 떠나는 옷차림이지만 이 옷차림에는 나름 비장함이 서려있다. 순례를 마치지 못하고 길 위에서 죽게 되면 그 지팡이를 묘비로 써도 된다는 비장함이다.

88개의 사찰을 모두 돌게 되면 인생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될까. 조금 더 삶을 가뿐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불교라는 종교는 결국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초연해지고 조금 더 삶을 객관적으로 보게해주는 것 같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결국 내가 가진 군더더기들을 버려내는 것이니까. 순례란 그것들을 도와주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시고쿠의 오헨로 사찰 중 하나 이시테지
사찰 곳곳에 순례자들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절과 절사이에는 이런 순례길들이 펼쳐져있다

걷는길에 우연히 만난 에비스


시고쿠의 사찰을 걷는 중 아주 흥미로운 동상을 만나게 되었다. 큰 도미를 옆구리에 끼고 호탕한 웃음을 짓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이 노인은 일본의 칠복신 중의 하나인 에비스라고 한다. 에비스. 귀에 익은 이름일 것이다.

일본 도쿄의 지명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편의점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일본 맥주의 브랜드명이기도 하다. 이 에비스라는 신은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 유래된 다른 칠복신들과는 달리 일본에서 유래한 토착신이라고 한다. 이 에비스가 담당하는 것은 어업과 상업의 번창이란다. 큰 도미를 가지고 있거나 타고 있는 모양새로 보아서는 어업의 신인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어째서 상업의 신까지 겸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알고보니 당시에는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농가의 쌀과 물물교환 하는 방식으로 상업이 이루지기도 했는데 어업의 번창하게 되면 물물교환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상업의 신으로까지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이 에비스라는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한 회사는 아마도 에비스 신의 가호를 입어 자신들의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 않았을까.

시고쿠의 사찰에서 만난 이 에비스를 보고 엄마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랑 모습이 꼭 닮았다면서 매우 신기해하셨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서도 그렇게 생선을 드시는 것을 좋아하셨다면서. 일본 전역에서 사랑받는 신인 에비스 신이지만 도미로 유명한 시고쿠, 그것도 에히메 현에서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에비스 신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이 작은 우연 덕분에 나는 올해 한번 더 외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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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옛길을 걷다, 우치코


마츠야마에서 서쪽으로 40키로쯤 떨어진 곳에 작은 마을이 하나가 있다. 우치코이다. 현재는 아주 작은 마을이나 한때는 목랍으로 꽤나 번성했던 마을이다. 목랍이란 나무의 열매로 만든 왁스로 그것으로 초를 만들기도 한다. 목랍을 생산하여 번 돈이 많았던지 우치코에는 당시에 잘 나갔던 가문들의 저택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수많은 건물들 중에서 내 눈을 끈 것은 큰 저택들이 아닌 가부키 극장이었다.

이런 나무 열매에서 목랍이 탄생한다

가부키란 일본의 전통 극으로 다른 극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희로애락 등을 한번의 극에 담아낸 공연예술이다. 내가 이 극장에 주목한 이유는 예술이란 부유함 속에서 더 화려하게 꽃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난과 절망 속에서 어렵게 피어나는 예술의 꽃도 매우 아름답지만 수요가 있어야 공급도 있듯이 경제적인 여유를 가진 소비계층이 있어야 예술도 잘 발달할 수 있는 것 같다.


우치코에는 이런 저택들이 많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부유함에서 꽃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종교이다. 일반적인 종교인들은 재물에 대해 초연한 것을 미덕으로 삼으며 이상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더 가치를 두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이 종교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노동활동에 전념하지 않아도 되는 그 지역의 풍요로운 경제사정 덕택이다. 마을의 끝에서 만난 사찰인 고쇼지의 아름다움이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현실적인 기반이 튼튼할 때 정신적인 아름다움도 꽃필 수 있다고.

우치코의 옛길을 걸으면서 다른 대도시를 관광할때는 느끼지 못했던 평온함을 느꼈다. 오래된 목조건물들은 현대의 건물들에 비해 높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때문에 나의 눈과 마음에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이렇게 조용하고 작은 마을을 걷는 것 또한 그 나름의 맛이 있는 것 같다. 화려하고 웅장한 것을 보는 것만이 여행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걷는 것의 즐거움


대학생일때에는 꽤나 걷는 것을 좋아하고 많이 걸었던 것도 같은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걸을 일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출퇴근 할때 지하철역에서 직장까지 혹은 집까지 왕복하는 것 정도랄까. 최근에 작은 차량을 구입하면서부터는 이런 작은 걸음 또한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당연히 뱃살이 느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뱃살이 아닌 정신에 있었다. 걷는 일이 줄어들면서 몸이 편해지고 더 행복해질 줄 알았지만 묘한 우울감이 때때로 나를 감싸는 때가 많았다. 어쩌면 걷는 다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직장에서 화가 나는 일이 생겼다거나 누군가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도 퇴근 후 옷을 갈아 입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산책을 나서면 그저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일이 되는 경우가 참 많았던 것 같다. 걷다 보면 몸의 움직임 보다도 내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오히려 집 안에서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할때보다 나의 감정, 생각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때로는 고민하고 있던 문제의 해답이 툭 하고 튀어나오기도 한다. 거창한 순례의 길이 아니어도, 멋진 광경을 보며 걷는 길이 아니어도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힐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은 오랜만에 다시 산책에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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