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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Oct 06. 2023

한밤의 인라멘

20년지기 추억의 음식

나에게 인생라면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국라면이 아니라 돈코츠라멘을 떠올리게 된다. 


 온몸 모든 촉수가 예민하던 고등학교 시절, 고3 여름 늦게 시작된 미대 입시 준비는 고됨은 둘째치고 환경 자체에 자극거리가 가득했다. 


2000년대 초반의 홍대는 회상해 보면 정말 최고 절정에 이르렀던 때가 아닌가 싶다. 클럽데이가 부흥했고, 모든 문화의 선두에 있었다. 760을 타고 내려 산울림 소극장으로 오르다 보면 발길을 붙잡는 자그마한 샵들이 즐비했다. 벗도 없이 홀로 묵묵히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할 때라 밥때가 되어도 자연스레 산책을 즐기게 되었다. 주차장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트럭으로 장사를 했던 조폭 떡볶이가 있었고, 막걸리 아저씨도 늘 계셨다. 산울림 소극장 쪽으로는 무과수 마트와 이리카페가 있었고, 수카라가 있었다.(수카라는 21년에 없어졌다) 좀 더 가면 김진환제과점에서 식빵을 사다 뜯어먹으며 걸을 수 있었고, 반대편으로 걸어가면 호호미욜 커피를 지나 하카타분코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카타분코는 돈코츠라멘을 파는 라멘집인데 혼밥을 하기에 가장 애정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일본식 다찌 구조로 되어있어 주방 쪽을 바라보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앉자마자 "인라멘 하나요.-" 주문을 넣고 아기자기한 피규어들을 넋 놓고 쳐다보고 있다 보면 손에 닿으면 끈적일 정도의 깊은 육수에 담겨 나오는 돈코츠라멘이 나온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늘 맥주와 함께 먹었다. 생마늘을 아구 힘으로 짜 넣고 한두 젓가락을 먹다 보면 그저 빛이었다. 소식을 자랑하는 나도 그릇 바닥의 아리가또를 보려 열심히도 먹었다. 삐걱대는 나무판자 의자와 어둑했던 실내.


 지난겨울에 무슨 바람이 불어 추억 여행을 하자고 다시 들른 하카타분코. 

내복도 없이 영하 최저 온도를 자랑하는 날씨에 차에서부터 내달려 가게로 들어가니 여전히 바뀐 것 없이 푸근했다. 늦은 밤이라 새로운 메뉴도 주문할 수 있었고 몇몇 커플이 보였다. 사장님은 이제 주방을 지키는 대신 가끔 들러 이것저것 체크하는 듯했고. 우렁찬 사장님 목청 대신 조근조근 주문을 받는 홀 서버 직원 분과 여전히 시간 들여 라멘을 끓여 내오는 이 가게가 왠지 푸근하고 좋았다. 뭣보다 늘 있어준다는 자체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히읗이 있었다면 들렀을 테지만. 이 라멘집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그럼에도 고맙습니다. 


바람이 지금보다 더 차지면 생각나겠지, 라멘 한 그릇을 떠올려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따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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