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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Oct 09. 2023

진실한 노동의 산물에 마음이 움직이다

[아트컬렉션 입문기]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라는' 이진우 작가

 지난 9월은 KIAF(Korea International Art Fair)와 FRIEZE Seoul이 동시에 열려 한국 미술계가 뜨거웠다. FRIEZE는 런던에서 2003년에 시작되었다.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사로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예술 애호가, 전문가, 컬렉터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로 경향과 흐름을 파악하게 되는 지표가 되었다. 2012년엔 뉴욕, 2019년엔 LA로 그 영역을 넓히며 아시아권에서는 Seoul이 K-콘텐츠의 부상과 함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작년에 클라이언트와의 좋은 인연을 통해 아트컬렉션을 작게나마 시작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컬렉션은 조금은 어색한 것이었고 관심 역시 한정적이었다. 이번 전시 기간에는 혼자가 아닌 선배 컬렉터들과 함께 전시를 둘러보고 여러 경향과 흐름들을 함께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전혀 컬렉팅을 할 생각은 없이 순수한 관람객으로 전시를 둘러보던 중에, 사진자료와 구두로만 전해 들었던 이진우 작가의 작품을 눈으로 처음 보게 되었다. 리안갤러리 부스에 걸린 꽤 큰 작품이었는데 그 검은 덩어리들의 향연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소름이라거나 전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모자란 복잡한 기분이었다. 

 

'뭐지?'


 계속해서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듣는 중에도 잔상이 길게 남는 경험이었다. 중간중간 쉬는 때에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 이진우 작가의 쇠붓질이 담긴 작업 영상을 짧게 보는 순간 


'어, 이건 진짜 뭐지?'


 그땐 서서 돌아다니며 영상만 봤기 때문에, 쇠로 된 솔이 지면을 스치며 내는 기이한 소리도 들을 수 없는 부산스러운 순간이었는데도 엄청난 밀도의 노동이 집약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그날 당일 예정에 없던 선택을 했다. 처음 리안에서 본 작품보다는 조금 더 작은 50호 사이즈의, 그러나 훨씬 진하고 옹골 차게 느껴진 작가의 2020년 작품을 박여숙화랑을 통해 소장하게 되었다. 


 전시가 종료되고 대략 2주 정도 뒤에 그림을 작업실 테이블 정면으로 설치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오래도록 그림을 봤다. 처음의 인상은 제주도의 차갑고 축축한 겨울의 돌담을 옮겨왔다는 느낌이 강했다. 바닷물에 검게 젖은 돌담이 생동한다고 느꼈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강가 근처에서 볼 수 있는 맨들 반질한 조약돌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맨발로 어싱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고요함이 느껴졌다. 볼 때마다 이렇게 다른 느낌이라니. 


 언제고 한 번은 이진우 작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고 오늘 운동으로 남산을 걸어 오르는 와중에 인터뷰 몇 개를 보게 되었는데 인터뷰를 보다 문득 그림을 보고 싶어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먹을 갈아 한지에 붓으로 글씨를 쓰는 일을 뒤집어 생각했다는 작가, 숯을 가장 밑에 깔고 그 위에 수십 겹의 한지를 올려 쇠로 된 솔로 모든 굴곡을 스치고 긁어내며 덮는다. 자신은 그림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거꾸로 덮고 없애는 행위를 반복했다고 설명했는데 이때 처음 종이 위로 스치는 쇠솔질의 소리를 들었다.(나는 택배상자끼리 부딪혀 스치는 소리도 잘 못 듣는다) 이 쇠솔질은 진실된 노동의 행위였다. 작가는 계몽하거나 무엇을 전달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했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뭔가를 주장하거나 외치고 드러내지 않아도 지금 존재 자체로 존귀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다. 그림이 집으로 도착하고 나서 주위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사진으로나마 공유했었는데, '어두운 그림은 너를 더 쳐지게 할지도 모르니, 밝은 그림을 거는 게 어때?'와 같은 의견이 꽤 많았다. 나를 좀 더 안다는 사람들은 늘 저런 부분을 걱정한다. 비치는 것보다 여리고 때로 침잠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걱정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꽤 단단하고 깊은 곳으로부터의 힘을 느낀다.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아주 깊은 근원의 힘이다. 아주 깊은 땅 밑으로 뿌리를 단단히 내린 느낌에 가깝다.

아마 그 느낌은 작가의 저런 의도가 시간을 들여 켜켜이 쌓은 노동의 시간 속에 배어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의 인터뷰(https://www.youtube.com/watch?v=A-QqhLSwe0A)를 보며 아주 초기에 부족했지만 당당하게 성실했던 150만 원짜리 작품이 몹시 보고 싶어 졌다. 그 엄청나고 절실한 에너지가 담겨있을 것 같아서다. 


그럼에도 좋다. 나는 운이 좋다.

그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언제고 작업실 책상 앞에 앉아 하루종일도 볼 수 있어 감사하다.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이런 새로운 관점의 영향을 준다. 나는 또 깊은 뿌리내림의 에너지를 통해 지금으로도 충분한 나를 지탱하는 힘을 느끼고 있다. 세상과는 관계없는 일. 내가 오롯이 서는 일. 그걸 자존감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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