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본을 보이기'의 마법
나는 수요일마다 여전히 학생이다. 서실에 나가 글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쓰는 일은 늘 즐겁기 때문에 숙제를 안 하는 일은 없지만 문제는 수면 리듬이다. 요 근래 리듬이 꼬이고 아침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지다 보니 놀랍게도 알람을 몇 개씩 들어도 못 일어나는, 평소에는 없는 일이 꽤 잦다. 여전히 내일을 위해 오늘 자두는 성미가 아니기도 하고.
시간 약속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선생님임을 알고 있었지만, 몇 번 반복된 지각에도 별말씀이 없으시고 다정하게 지도해 주셨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불편했다.
이번주는 컨디션이 몹시 떨어져 전날 밤 앓았고 열이 떨어지고 나서야 잠에 들어 일어나 보니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가지 말까.' 잠시 고민하다 그래도 빠질 순 없었다. 나는 그 시간 자체를 무척 즐기고 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부랴부랴 도착한 서실에서는 이미 선배님들의 채본이 시작되고 있었다. 조용히 카메라를 켜고 기록을 하고 있다.(기록이 내 담당이다)
그러다 문득 채본 하나가 끝나자 선생님은
"지연 숙제 검사 해야지, 다 같이 내려가자! 여긴 좁아서 안돼."
아뿔싸... 구축 아파트 상가에 있는 서실은 중정처럼 사방의 계단이 가운데로 모이는 구조다. 별도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없다. 3층에 서실이 있고 숙제검사는 2층 복도 끝의 빈 공간에서 한다. 그럼 지금 지각한 나의 숙제검사를 위해 선생님을 포함해 이 모두가 그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일을 또 해야 한다니.
"선배님들 채본 다 끝나고 가겠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나의 시간관리에 대한 아주 강력한 지도를 받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 없이 스스로 변화하게 하는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부러 잘못을 지적하지 않아도 이미 당사자는 다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 그 부분을 지적하는 대신 더 큰 포용으로 접근하면 상대는 몸 둘 바를 모르는 상태가 된다. 그럼 다음엔 행동을 변화할 다짐을 하거나, 저 사람에게 큰 빚을 졌다는 마음으로 늘 조심하게 될 것.
부모 자식 사이도 다르지 않다. 서로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나는 네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메시지와 깨달을 수 있는 가벼운 행동 하나면 충분하다. 그리고 바뀔 상대방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내가 막연하게 어렵게 생각하는 자식 키우는 일도 해봄직하겠다. 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꽤 먼 일을 자주 생각하는 편 ㅎㅎ)
결국 선생님이 나에게 보이신 건 따듯한 햇살로 외투를 벗기는 위상차였다. 그리고 잔소리처럼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채득 한 경험이기에 이 기억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믿음이 나를 변화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