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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Oct 25. 2023

이 가을, 그들의 신파가 반가운 이유

성시경 x 나얼, 2000년대 발라드 감성을 소환하다.

 사실 올여름 김동률의 황금가면이 나올 때만 해도 그저 어깨를 들썩거리고 벅찼다. 물론 반갑기도 했다. 그의 새로운 시도가 신선해서 즐겁고 고마웠달까.


 하지만 이번 나얼의 펀치는 그 강도가 좀 다르다. 나는 발라드를 그렇게 애정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가사가 고스란히 박히는 노래들 보다는 선율을 즐기는 일이 좋아 팝이나, 철수아저씨가 틀어주는 리스트 중에 끌리는 것들을 찾아 듣고 편하게 듣고 싶을 땐 재즈나 클래식을, 운동할 때는 하우스 믹스를 듣는 식의, 필요에 의해 비트를 기능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 나얼이 들고 나온 노래는 나를 훌쩍 2000년대로 데려다 놨다.


https://www.youtube.com/watch?v=IGVOxPeeCMI


 나얼, 그의 첫 등장은 얼굴도 몰랐지만 그 음색으로 충분히 인상적이었다.(당시 브라운아이즈는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중2, 한창 약도 없는 냉소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시절에 들었던 브라운 아이즈가 부른 벌써 일 년(https://www.youtube.com/watch?v=LZlIqfMn4cc)은 아직도 생생하다. 복싱씬이 계속 나왔던 뮤직비디오와 함께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따라가게 되었다.

 그 뒤로도 이 미대오빠는 위드 커피,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두 번째 이야기... 모든 앨범 모든 노래를 지금 생각하면 과하고 부담스럽게 꽉꽉 채워뒀다. 거의 1년 내내 차트에 있었던 것 같다.(지금 아이돌이 한 곡 활동을 일주일 정도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 다른 호흡이다.) 덕분에 앨범의 전곡을 다 외울 정도로 브라운 아이즈의 1집은 특히 빠지는 노래가 없는 전설의 앨범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


 김나박이(*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를 보컬 왕들을 세트로 묶어 불렀다)가 노래 잘 부르는 건 뭐 새로운 얘기도 아니고. 여하튼 이번 이 신파는 성시경의 일본 앨범을 위해 나얼이 만든 곡인데 노래가 너무 좋아 성시경이 한국에서 내고 싶다며 나얼과의 듀엣을 제안해 성사되었다고 한다.

 성시경을 보자. 식영이형이 왜 거기 있어? 그는 이제 먹방 유튜버가 다 된 줄 알았는데, "힝, 속았지?" 하며 멀쩡히 찾아왔다. 물론 개인 싱글들로도 여러 시도를 했었지만 결국 정공법이 먹힌 걸까. 며칠 전 멀끔하게 슈트를 입고 뉴스룸에 앉아있는 걸 보고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다 났다.


https://www.youtube.com/watch?v=k8rargfhUDI

이젠 신파 발라드를 부르면 뉴스초대석에 불려 가는 세상이구나.


 사실 식영이 형은 좋아하지만 성시경은 아직도 좀 밉상인 부분이 있다. 근데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을 당했는지 그의 말에 예전처럼 구시렁거리게 되지는 않는다. 성시경이 음악도시 시장이던 시절에는 그렇게 가르치는 발언들이 참 싫었다. 네가 뭘 얼마나 안다고... 근데 이제 진짜로 뭘 좀 아는 게 납득이 가는 아자씨가 되어서 그런지. 식영이 형 밥먹고 술먹는 걸 너무 봐서 미운 정이 든 건지.


 이 인터뷰에서 성시경은 발라드를 이제 대중이 비교적 찾지 않는 이유로 '연결'을 이야기했다. 발라드가 워낙 '단절'과 '이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라고. 단절된 뒤에 이 마음 전할 길이 없어 부르고 듣는 노래가 발라드라는 거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만남도 이별도 카톡으로 한다.(정말 그렇다.) 이제 이게 어이없거나 무례한 일로 느껴지지도 않는 걸 보면. 우린 어느새 익숙해진 것 같다. 헤어지면 영영 볼 일이 없던 예전의 인연들도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다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것만큼 위험하고 허무한 일이 있을까. 개인의 의지와 결단이 더 중요해지는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잠시라도 우리>라는 노래 이야기로 돌아오면 거의 공개되고 일주일 내내 듣고 다닌 것 같은데 어쩐지 계속 이 노래 1시간 재생 클립을 틀어놓고 질척거리는 이유가 뭘까.


그들의 신파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 그래도 되는 가을이니까.


가까스레 잠이 들다 애쓰던 잠은 떠났고
아직 타는 별 과거의 빛은 흐르고
몇 번의 사막을 거쳐 몇 번의 우기를 거쳐
고요를 거쳐 이제야 추억이 된 기억들

떠나간 모든 것은 시간따라 갔을 뿐
우릴 울리려 떠나간건 아냐 너도 같을거야

십년쯤 흘러가면 우린 어떻게 될까
만나지긴 할까 어떻게 서로를 기억해줄까
그걸로 충분해 서로 다른 그곳에서
잠시라도 우리 따뜻한 시간을 갖는다면

떠나간 모든 것은 시간따라 갔을 뿐
우릴 울리려 떠나간건 아냐 너도 같을거야

십년쯤 흘렀다고 그렇게 생각해봐
그때에 터뜨릴 웃음을 지금 질 수 있잖아
그걸로 충분해 서로 다른 그곳에서
잠시라도 우리 따뜻한 시간을 갖는다면

십년쯤 흘러가면 우린 어떻게 될까
만나지긴 할까 어떻게 서로를 기억해줄까
그걸로 충분해 서로 다른 곳에서
잠시라도 우리 따뜻한 시간을 갖는다면


 잠시라도 우리 - 성시경, 나얼




p.s. 올해는 When October goes 안 들어도 되겠다. 휴

https://www.youtube.com/watch?v=YPqNGzg4M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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