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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Nov 06. 2023

노키즈존 유지 요망

어린 생명체 주의보

 고등학교 친구 둘은 잊을만하면 만나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또다시 각자의 삶을 산다. 우리는 이 루틴에 제법 익숙해졌다. 우리가 벌써 20년이라는데 기절할 노릇이다. 이렇게 가끔 봐도 늘 어제 만난 듯 반갑다. 


 지난 만남에 뱃속에 아이를 담아왔던 친구 K는 어느새 2인분이 되어 돌아왔고 한창 석사 때문에 지도교수님을 만난다던 친구 H는 야무지게 시험과 과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일도 공부도 잘 챙기고 있는 모습이 꽤 멋지다. 


 우리가 나눈 얘기는 너무나 많지만 오늘 주목할 부분은 'K의 2인분'인데, 7개월이 채 안된 꼬물이를 데려왔는데 귀엽고 예쁘다는 단어로는 설명이 어려운 경이로운 생명체를 목격한 기분이었다. 


 나는 막연하게 어린이를 어려워하고 내가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아 가까이하기 두려워한다.(무섭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내가 초등학교 때였나, 고모가 아들을 갓 낳았을 무렵 같이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중에 잠시 고모가 아가를 안고 있으라고 했다. 너무 작디작고 말도 못 하는 생명체를 받아 드는 순간 엄청난 무게의 책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뿐만 아니라 수족냉증이 있는 나에게 그는 너무나 뜨거운? 존재였다.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데운 호빵 정도의 열기를 지속적으로 뿜어내는 거대한 슬라임 덩어리가 전적으로 나를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던 기억, 내 손이 차가운 것에 대한 송구함 등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왔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지만 이 경험은 내 촉각의 예민함과 함께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 잡았고,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내 손길이 닿는 일에 대해 굉장히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실제로 지금도 요가 핸즈온을 해야 될 때 내 손이 차가운지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아마 겨울왕국의 엘사가 뭐든 만지면 얼려버려서 스스로 혼자가 된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나는 그 감정을 아주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그러다 문득 엘리멘탈의 웨이드처럼 자기가 수증기가 되어 없어질지언정 잡은 손을 놓지 않는 사람 정도나 되어야 마음을 놓고 얼음장 같은 차가운 손을 건네게 된 것. 보통은 내 손발이 너무 차가워서 다들 놀래기 바쁜데 '난 늘 손발이 더워서 오히려 좋아'라고 말한 사람이 떠오른다.


 애니웨이 K의 미니미는 나주배 만한 얼굴에 말도 안 되게 작은 눈코입이 선명하게 있었고 잘 웃고(심지어 눈웃음을 치고) 또 콧볼만큼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둘리같이 혀를 내미는 습관이 있는 생명체였다. 그 모양이 너무 기이하고 신기하여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나는 아이를 안아보겠다는 말은 엄두도 내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2-3시간을 보내자 아가 엄마가 꽤나 지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김에 한번 안아보겠냐는 말에 덜덜 떨며 안아 들었다. 이 생명체 역시 호빵같이 따끈하고 슬라임같이 말캉했다. 생각보다 팔다리 기운도 세고 자기주장도 강렬한 생명체. 안아 들고 보니 표정은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K가 아이 상태를 체크해 줬다. 나의 광활하고 단단한 대퇴부가 꽤나 안정적이었는지 얼마간 잘 놀았다. 어느새 이 작고 따끈한 호빵의 열기에 내 손이 데워지고 땀도 송글 맺혔다. 묘한 감정이 스쳐갔다. 내가 뭔가 전적으로 해줘야만 하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작은 것이 나를 데우는 힘을 가졌다.


 나에게 찾아온 위기는 다른 게 아니라 내 확고한 생각이 이 별 것 아닌 소박한 체험으로 일순간 바뀌게 될 일이었다. 아가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존재, 언제까지고 내 마음은 노키즈존이어야 맘이 편한데. 그래야 인생이 덜 복잡할 것 같은데 왜 이 생명체가 꼬물거리는 모양에 눈을 떼지 못하나. 그저 신기한 것이겠지. 되뇔 뿐이었다. 위기로 명명한 사실 자체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잠시잠깐 안아본 것으로 판단하기엔 너무 섣부르다. 


자나 깨나 어린 생명체 조심

노키즈존!

노키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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