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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Nov 07. 2023

돌고 돌아 다시 리모와

혁신과 최초의 반복


 1898년 독일 퀠른에서 시작된 브랜드, 파울 모리스첵이 창업자다. 당시에는 여행 = 소수의 사치를 증명하는 상징이었다. 캐리어라는 상품 자체가 사치품이었다는 얘기다. 나무와 가죽이 주재료였던 이 케리어 회사는 공장에서 화재가 나는 위기를 겪었는데, 그 와중에도 가방의 이음새로 사용한 알루미늄은 멀쩡하다는 걸 발견하고 알루미늄 자체로 가방을 만들어야겠다는 발상을 하게 된다. 동시에 올메탈 소재 비행기 외장재에서 영감 받아 알루미늄 합금으로 가방 전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1937년 지금의 오리지널 라인이 등장한다. 이 자체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고 이 창업자는 자신의 이름의 앞글자를 따고 RI-chard MO-rszeck 그리고 '상표'라는 의미의 독일어 warenzeichen의 WA를 따와 RIMOWA라는 이름을 완성한다. (리모봐라는 발음에 더 가깝다고 하는데, 엄청난 조합어가 아닐 수 없다)


 융커스사 비행기 F13을 분석하는 디자인들을 계속 개선했고, 비행기 표면에 있던 요철을 가져와 그루브 패턴을 시그니처로 활용했다. 이런 내구성이 입소문이 나서 사진작가, 영화감독 등 장비를 가지고 다니는 예술가들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이후 가업을 이은 3세 시대에는 방수 포토케이스를 만들어 온도, 습도를 견디게 만들었다. 계속 극한 상황에 대한 대응을 해 온 것. 대부분의 고객에게는 오버스펙이었지만 늘 리모와는 제품의 모든 기능을 최대치로 밀어붙였다.


 2000년에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알루미늄에 대해 보완 버전으로 전투기 캐노피, 방탄차 창문에 쓰이는 폴리카보네이트를 활용한 SALSA모델을 출시한다.(반짝이고 가벼운 소재) 소재가 바뀌면서 컬러풀한 버전이 나왔다.


 지금은 상징이 되어버린, 노룩패스가 어떤 각도로 가능할, 360도로 회전이 가능한 바퀴도 2001년에 나온 걸 생각하면 얼마 안 된 얘기다. 이 바퀴는 짐을 담은 채로 거친 노면 위에서 돌려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작은 부분 지속적인 혁신을 계속해서 이어간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살사가 나온 이후에도 알루미늄 토파즈 라인이 계속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으로, 심지어 잘 팔리는 이유는 그저 그 유려한 멋 때문이라고 하겠다.


 2016년 LVMH가 인수한 뒤에는 더 큰 변화가 있었다. 92년생 MZ세대인 알렉산드로 아르노가 운영하게 되면서 로고를 바꾸고 가격을 올렸다. 유통 방식을 바꿔 가방 편집샵에서 모두 철수하고 매장 단독 판매 정책을 고수했다. 바뀐 로고와 올린 가격이 욕을 먹으면서 한동안 독일 캐리어 편집샵을 돌며 구모델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이 잠시동안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못생겼다고 욕을 먹었던 리뉴얼된 로고 심벌 플레이로도 여전히 힙하고 럭셔리한 브랜드로 자리 잡아 버렸다.


 이번에 구매한 라인은 에센셜 슬리브 라인인데, 사실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먼, 못생긴 슬리브를 달고 있는 디자인이지만 이 파우치 칸은 프런트 오프닝이 가능해 노트북과 배터리를 모두 때려 넣고 한 번에 꺼낼 수 있어 공항 출국 심사 시간을 한층 줄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더욱이 업무 가방과 세트를 이뤄 한층 레벨 업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리모와를 대체할 브랜드가 너무 많이 나와있다. 그동안 여러 쓸모, 다양한 상황에서 무인양품, 로우로우, 샘소나이트들을 거치면서도 그래 소모품이니까, 그래 이 정도로 충분하지, 이쯤이면 훌륭하지 등의 말들로 나의 적절한 타협에 당위성을 부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리모와가 혁신과 최초를 반복하며 쌓아온 로열티는 대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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