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 명상 10일 코스 - 제0일
토요일, 차와 명상에 관련된 강의를 들으며 담마코리아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신청을 해두고 그날 저녁부터 필리핀 출장 관련 짐을 싸고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명상코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도 '명상하는 코스' 정도로 인지했을 뿐, 10일이니 통신과 기기사용에 제약이 있느니와 같은 정보는 흘려듣고 보았던 것 같다.
우선 출장이 우선이었기에, 캐리어를 열어두고 중간중간 떠오르는 물품들을 던져 넣었다가 다시 패킹하는 건 그날 넘어가는 새벽에 쌌다. (주로 나는 짐을 이렇게 싸는 편이다.)
마이솔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혹시 몰라 다음 날 오전 충전하러 다녀오는 길에 더현대가 열자마자 기다렸다가 접혀서 휴대가 가능한 요가매트를 사 왔다. 생각보다 무게가 나가서 고민했지만 챙기니 마음은 든든했다. 그렇게 출장을 다녀오고(일정에 치여 매트를 매일 쓰진 못했다.) 몇 번의 메일과 회신이 있었다.
별로 기대 안 했기 때문에 준비할 필요가 없이 업무 일정과 대응에 바빴다. 내년 업무 제안서와 견적 같은 것들을 꾸리고 전달하고 챙기느라 꽤 정신이 없었다.
여전히 대기자였다. 계속 변하지 않는 상황을 계속 업데이트해 주는 AI급 커뮤니케이션에 다소 놀라웠다. 나는 이 사이에도 원래 하던 명상은 하고 있었다. 주로 비행기에서는 명상을 하는 편이 마음이 편해진다. 명상 이후로 이륙 때 기절(?) 하는 일은 많이 줄었다.
응? 자리가 생겼다고? 참가 의사에 대한 재확정을 요청하는 메일을 받았다. 약간 당황했다. 될 줄 모르고 했으니 부담이 없었고 가벼웠다. 핑계도 있다. 해봤는데 안되더라고 말하면 충분했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재확정을 하는 의사 표현을 해야 다음사람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말에 갑자기 진지해졌다. 후기를 찾아봤다. 이 코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무한데 어떤 유튜브의 유일한 후기 영상을 찾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6uSFlqKa3uE) 물론 4년 전 영상이었지만, 얼마나 최신인가 보다도 이 내용을 보며 약간 현실감을 느낀 것 같다.
'아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명상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구나.'
이 메일을 받자마자 이 코스를 소개하신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나는 동시에 석사 과정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하고 있었다. 교수님은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잠시 출가한다고 생각하고 한번 다녀와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다. 물론 결정이야 내가 한 것이지만, 대화중 나왔던 교수님의 메시지가 큰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잘 견딜 수 있을 겁니다.'라고도 하셨는데, 그땐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견딜 일"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 힌트를 받아먹지 못했다.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이 달라질 겁니다.
그 열흘이 대관절 뭔데 삶까지 달라진다는 건가. 우선 재확정한다는 회신을 보냈다. 마음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부담감에 짓눌려 문 반대편으로 발 끝을 돌려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물론 익숙한 모습이다. 저질러놓고 수습하는 자의 흔한 정서 불안상태.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가 뭘 원하고 있는지 어디로 움직이고 있을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묵묵히 공백을 채우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장 걱정은 '일'이었다. 큰 계약 건에 대해, 또 처음 시도하는 영역에 대한 제안을 하는 상황에 그 회신의 일정은 클라이언트가 쥐고 있는 상황. 만약 계약이 성사되고 일이 급속도로 진행되어야 하는 상황에 내가 전혀 연락이 안 된다면 그 일은 내 운명이 아닌가 보다.라고 하기엔 내가 거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11/6, 그래도 똥을 찍어먹어야 똥인지 아는 미련한 나는 그 답을 알면서도 센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의를 한다.
"재확정 하면서 참가 룰에 대해 읽고 있는데(이미 읽었으면서)
전자기기 부분에 문의가 있어 연락드립니다.(답을 알고 있는데 뭘 문의해)
기간 내 업무를 확인하고 진행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지 궁금합니다.(그렇다잖아...)
답변 기다리겠습니다.(부득이한 경우의 예외를 제발 열어줘...)"
"센터 내 코스기간 중에는 이곳의 규율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전자기기로 개인의 업무를 보는 것은 불가하오니 양지해 주세요."
그래 알고 있었다. 그랬지만 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
이때부터 '24시간이 모자라' 모드가 시동을 걸었다. 주로 마감 때 나오는 템포다. 일단 글루틴을 수습해야 했다.(하루 한 개의 인증하는 챌린지를 3개월 +1개월 재시작 중인데, 기간 내에 총 8편의 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틀 만에 8개... 어떻게 쓰냐 이걸.
다른 하나는 나의 묵혀 둔 사이드프로젝트 티터토터가 이미 내가 필리핀에 있을 때부터 소프트 론칭이 시작된 상황에서 더 이상 공식 안내를 미룰 수 없었던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전략 방향성에 대한 수정이 필요한 비핸스 오픈은 못하더라도 글로 된 형태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안내는 해줘야 했다.
"그럼 이걸 합치자."
연재 형태로 사이트 프로젝트를 왜 시작했는지 어떻게 진행했는지의 대략 서사를 그리고 7일부터 한 편씩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총 5편의 글로 프로젝트를 오픈했다.
https://brunch.co.kr/@junekook/129
그 와중에 집을 오래 비우며 챙겼던 일은 집에 열흘을 묵히게 될 갓 장본 식자재들을 버리는 상황은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고 이웃주민 디자이너와 점심 겸 프로젝트 얘기도 할 겸 그녀에게 감사히 일용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어 마음이 좋았다. 신문사에 전화해 휴독 요청을 하고 더불어 청연 이모님께 식물 물 주기와 택배를 들여다놔 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부친께는 센터 번호와 주소, 간단한 내용을 설명해 드렸다. 늘 그렇듯 그런 건 왜 하나 같은 걱정보다는 잘 다녀오라는 응원이다. 고마운 일이다. 핸드폰데이터를 백업해 두고(전원을 끌 뿐인데 왜 이러는 건지) 원래는 끝까지 기피하던 카톡과의 주소록을 연동했다. 필요하지 않으면 카톡으로는 업무를 보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젠 뭐 가릴 재간이 없다. 도로록 끌려오는 엄청난 연락처들에 당황했다. 당황은 뒤로 미뤄두고 뭐 대단히 큰 일하는 사람처럼 카톡 대문에 연락 안 되는 기간과 양해를 구했다. 혹시 연락 두절에 당황할 클라이언트에게 변명할 방편이었다.
그렇게 가는 날 서초 IC 빠지기 직전 충전소에서 충전하면서 까지 마지막 글을 발행했다. (사실 가는 길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이것저것 빠뜨린 게 많은 게 불안했다. 디자이너와 점심밥을 먹으면서도 침낭 침낭 침낭을 챙겨 오라던데. 몽골에 챙겨간 침낭은 그곳에 두고 왔고. 미리 챙겼으면 쿠팡 주문이라도 했을 텐데. 동네에서 급히 당근을 찾아 문의했지만 당장 거래가 가능한 사람은 없었다. 서초 노브랜드를 휘젓고 다니며 침낭을 찾다 문득 '추우면 좀 떨면서 자고, 필요한 건 가서 어떻게든 구해야지. 뭘 이렇게 불안해하냐.'
나는 또한 '준비되고 갖춰진' 것에 안정을 찾고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모든 게 편안해지며 한결 단순해진 머리로 도로를 내달릴 수 있었다. 만남의 광장을 지나 알밤을 파는 정안휴게소에 한번 들리고 완주 슈퍼차저에서 한번 더 차량 충전을 했다. 이미 4시까지 입소할 것을 5시로 미뤄둔 상태였지만 이미 6시를 지나고 있었다.
명상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언제쯤 도착하시나요?"
"아 6시 30분 정도면 갈 것 같습니다."
"네 조심히 오셔요."
이 전화를 끊고 나니, 아 그냥 서울로 갈까? ㅋㅋㅋㅋㅋㅋㅋ라는 마음이 올라온다. 나도 놀라울 마음이었다. 나는 뭐든 마음을 먹으면 번복하거나 후회하거나 망설이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보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이걸 내가 진짜 할 수 있냐?
내가 단절에 이렇게 취약한 인간인지 몰랐다. 늘 외부에 시선이 있는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모든 단절이 나에게 주는 것은 불편을 넘어선 공포였다. 아무리 출장을 가고 몽골을 가도 연결이 절대 전혀 정말 안 된다고 나를 겁박하진 않았다. 완전한 단절 앞에서야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나의 취약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가 걷혀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아마 앞으로 언급할 일이 많은 개념일 거다.
나는 수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맛본 것이다. 굉장히 강렬하게 연결을 갈망하고 강력하게 단절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회사계정에 브런치에 쓴 매거진 5편의 링크를 거는 포스팅을 했다.
이제 정말 끝이었다.
쇳덩이 같은 몸을 이끌고 충전소로부터 30분 남짓을 달려 도착한 센터. 나는 가장 마지막 자리에 차를 주차하고는 트렁크를 내렸다. 후리스가 하나 차 뒷자리에 나뒹굴고 있길래 그것도 들고 내렸다. 저벅저벅 자갈길을 걸어 사무실로 들어가니 간단한 원서를 쓰고 있으니 핸드폰과 시계, 지갑을 맡길 수 있게 안내해 주셨다.
'아? 벌써 바로?'
정신도 못 차릴 틈에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내맡기고 배정된 숙소를 향해 걸었다. 곧 7시에 오리엔테이션이 시작한다고 했다. 10여분 여유가 있었다. 방에 들르기 무섭게 오티가 예정된 장소로 갔다.
이곳에서의 규율, 어떻게 진행되는지 간단한 설명과 함께 오늘 바로 시작될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명상을 마치고 누웠다.
잠이 쉽게 올 것 같진 않았다. 무려 오후 9시가 갓 넘은 시간이었고(내 생활리듬상 한창 대낮 같은 시간이다) 여긴 9시 30분부터 취침을 권장했다. 매일의 일정이 새벽 4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그런 게 있다.
이곳 규율 중엔 필기구도 금지한다고 되어있다. 필기나 메모로 정신을 산만하게 하지 말라는 취지인데, 나는 기록병에 걸려있기 때문에 도라에몽 가방을 뒤져 언제 샀는지 모를 포스트잇과 콘퍼런스에서 받은 볼펜을 찾아냈다. 아마 앞으로 나의 기복과 갈등을 이 초록 메모지에서 많이 보게 될 거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이 코스에 참가하실 분들은 메모가 안된다는 점. 꼭...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좋은 예가 아닙니다.....)
꽃무늬 침대보 위에 누워 패턴을 따라 그리기도 하고, 급 올드보이 오대수에 이입을 하기도 했다. 불안한 정서가 모두 담겨서 이제 보니 웃기기도 하다.
저렇게 사시나무 떨 듯 흔들리다 잠에 들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어떤 디바이스 없이 보낸 열흘은 굉장히 높은 질의 수면과 뇌의 편안함을 경험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내가 이걸 해냈다.
문제는 고작 제0일, 아직 카운트도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
내일부터가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