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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Dec 09. 2023

100% 목화솜이불 상속자의 고민

마지막 남은 미련덩어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늙은" 조지클루니를 사랑한다.


 잘생긴 남자가 늙어 견갑이 살짝 들떠 어깨가 쳐진 상태를 좋아한다.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은 어깨를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참 이 얘길 하려던 게 아니고...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조지클루니가 나온 몇몇 영화 중에서도 나는 인디에어(up in the air)와 디센턴트(the decendants)를 특히 사랑한다. 조지클루니 같은 완벽한 남자가 돌연 쓸쓸해지거나 헐렁하게 고난을 겪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디센던트는 그의 필모 중에서도 단연 일등인데, 그 환상의 섬 하와이를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 꽤 신선했다. 맷 킹으로 분하는 조지클루니는 극 중에서 하와이 왕국 초대 왕의 1대 후손이다. 그 덕에 그 핫한 섬에 땅이며 집이며 이런저런 유산이 많다. 그럼에도 그는 선친의 뜻을 존중해 유산은 건들지 않고 변호사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별 부족함 없이 산다. 그런 굳건함도 삶의 엄청난 고난이 연속되자 곧 흔들리게 된다. 이 것들을 지키는 일이 '뭐시 중허냐'라고 현타가 올 때쯤 남은 가문의 땅을 리조트로 개발하고 싶은 회사가 나타나고, 그는 갈등한다.


-여기서부터 스포라기엔 너무 옛날 영화다-


 그럼에도 그는 소신을 지키고 모든 후손이 행복할 수 있는 주체적인 방법을 찾기로 한다.

딸 둘과 소파에 모여 앉아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끝나는 그 여름이 흠뻑 담긴 영화를 난 왜인지 자꾸만 보게 된다.




 많은 것들이 빠르게 흘러가고 또 사라지는 시대에 산다. 시대를 언급할 것도 없이 작게는 매해 연말이 되면 정리 병이 도져 집을 뒤집는 나는 물건과 사연이 어지럽게 엉켜 미련덩어리들로 탈바꿈한 보따리들을 마주한다. 보따리 열 개 중 하나를 비워내면 그것으로도 작은 성공이라고 위로하기도 한다.


 어쩐 일인지 올 해는 내버리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모토로라 스타택 같은 하이테크 기술의 골동품, 무슨 기념주화 무슨 화폐, 무슨 우표 세상 모든 수집병의 결과들도 미련 없이 바이바이. 열 개 중 아홉 개는 맥을 못 추리고 스러져갔다. 그럼에도 최대 강적은 다름 아닌 '목화솜이불'이다. 그놈의 귀. 한. 목. 화. 솜.

나는 이 이불을 엄마로부터 받을 때, 신신당부를 들었다.


"이 이불은 정말 귀하고 대단해, 이 백 퍼센트 목화솜이불은 지금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 솜틀집에다도 함부로 가져다주어서는 안 돼. 한번 관리한 것이니 일단 잘 쓰고, 앞으로도 네가 참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신 없으면 그냥 두고 써라."

 

 내가 이미 가진 것에 대한 귀중함을 알기는 참 어렵다. 난 레어템 귀. 한. 목. 화. 솜. 이불이 있었고, 그 이불은 적당히 다를 짓눌러 주어 늘 숙면에 들게 해 주었다. 그래도 매번 찜찜함이 있었다. 커버를 이렇게 빨아대면 뭐 하나, 마음 편히 세탁 맡기는 것도 어려운 저 목화솜은 과연 깨끗한가... 생각이 많아지고 관리가 어려우니 마음이 불편하여 고민하다 버리지는 못하고 꽁꽁 싸매어 압축팩에 들어간 귀한 목화솜이불이 밖으로 다시 나오는 대신 몇 해 전 나는 폴란드 구스 필파워 800 어쩌고 구름 같은 호텔 침구 어쩌고 그런 걸 가져버렸다. 구름 같은 무게에 적응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 지내던 나는 그 미련덩어리를 다시 이 정리 주간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나의 역량을 한참 벗어나고 있는 이 '귀한 몸'을 어찌해야 할지 나는 막막해하다, 이런 두서없는 글을 쓴다.


부디 굉장히 현명한 살림 베테랑 작가님이 지나가다 나의 글을 보고 개운한 솔루션을 주길 바라며.


디센던트의 매트처럼 개운하게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퍼 먹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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