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가장 한국적인 것에 대한 해답 찾기 02
나는 거의 10여 년 전, 유럽을 여행하며 호스텔을 도는 동안 늘 방명록이 보이면, 독도는 왜 우리 땅인지에 대해 영문으로 번역해 간 노트를 늘 적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ㅋㅋㅋ) 정성스럽게 한반도 일대의 지도까지 그려가며 독도가 어딘지, 동해는 어딘지 꼭 표기를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동행한 친구에게도 굳이 보이지 않아도 되는 이른 아침이나, 칵테일을 들이켜고 난 늦은 저녁이 적기였다.
어딜 가나 아임프롬코리아를 외치면 뒤따르던 질문은 북쪽이야 남쪽이야? 였다.
대접? 이 융숭하게 바뀌어 어리둥절했던 것은 2013-4년부터 오가던 상하이에서의 생활부터였는데, 한창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로 모든 것이 천송이와 도민준으로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상하이 유명한 한인타운 홍췐루는 치킨에 맥주를 파는 호프집이 넘쳐나고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 카페베네 같은 한글 상호를 쓰는 모든 상점들이 북적였다. 실온에 맥주를 내놓고 먹던 중국인들은 이가 시리게 잔까지 칠링 한 생맥을 들이켜고 뜨겁게 튀긴 치킨을 집어먹고 배탈이 나도 좋아했다.
불금을 즐기러 모처럼 난징동루나 신텐티 지역 클럽에서 놀 때면 한국인이라면 과장을 조금 보태 언제든 테이블에 앉아 모엣샹동을 마실 수 있었다. 한국말 한두 마디에 위챗아이디를 나누고, 다음 날은 그 친구들의 학교에서 점심을 나눠먹으며 놀았고 저녁엔 또 다른 파티로 놀러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류 문화가 세계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기보다는, 일부 스타들의 인기에 한류가 편승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콘텐츠 자체의 힘이라기보다는 캐릭터의 힘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한류는 신기하고 재밌는 '열풍'이지 '주류'는 아니었다.
코로나를 지나 온 지금 우리가 오징어게임과 BTS, 킹덤으로 뭉뚱그려 한류를 이야기하기에는, 이미 소비자들은 그 외의 K-pop들, 비비고 등 우리가 모르는 영역까지 세분화된 니즈를 가진 채로 문화 깊숙히 침투해 즐기고 있다.
일본의 장인 정신이 그랬 듯, 고추장을 Korean Spicy Source가 아니라 Gochujang으로 표기하는 것처럼.
우리가 즐기고 있는 모든 한류에 대한 것들은 냉정하게 자본에 의해 선택되어 대중에게 인정받는 경로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더 이상 우리는 한식을 알리기 위해 해외로 나가 '이것 좀 맛보세요.'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 중국 밑에 일본 옆에 작은 반도가 있는데 그 좀 더 밑에 있는 이 독도라는 섬은 우리 땅입니다.'라고 누가 듣지도 않을 메모를 남기는 대신, 자본의 선택에 노출된 사람들이 '오 여긴 뭔데?'라고 알아서 알아보고 파기 시작했다는 것.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 BTS들이 자본의 선택을 받지 않았다면 그 도도한 서구 기득권의 축제, 아카데미나 할리우드에서 관심을 가졌을까?
한국 콘텐츠들은 사회적 관점에 대해 과감하게 이야기하고 꽤나 노골적이다. 오징어게임과 기생충이 그렇다. 애매하고 적당히 해피한 결론을 내는 순간 여기저기서 물어 뜯긴다. 현재성 - NOWNESS를 놓치는 순간 모든 대중들로부터 외면받는다. 이게 뜨거운 한국 대중이 선호하는 서사라는 것. 콘텐츠가 관객에게 대충 비벼서 약을 팔 것 같으면 "요것 봐라?"라는 마음이 든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이제 더 이상 한국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이나 배다른 형제, 신데렐라 콘텐츠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카테고라이징을 하기 어려울 만큼 그 소재가 다채로워지고 있다. 이토록 냉정하고 좀처럼 봐주지 않는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1차로 가차 없이 검수받고 난 뒤 날이 설대로 선 콘텐츠들은 세계로 나가 모두의 마음에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은 현재, 지금, 우리와 같이 숨 쉬는 역동성이자 현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