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 이름에 좋은 기운이 깃든다.
오늘 받은 한 가지 질문이 이 글의 시작이 되었다.
나의 인스타 프로필 속 사진의 주인공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 2046 속 남자 주인공 주모운으로 분한 양조위다. 사진이 워낙 작으니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다. 오로지 그 장면을 직접 본 이들만이 알아보는 재밌는 사진이기도 하다.
왕가위의 또 다른 영화 화양연화에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비밀을 봉인했던 순애보의 상징 주모운은 싱가포르로 돌아와 2046의 난봉꾼 주모운이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wzFkOJNwq4
이 둘은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이름을 공유한다.(이제와 생각해 보면 왕가위는 연기사상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비정전과 화양연화의 장만옥이 그렇듯, 왕가위 영화 속 이름은 세계관을 잇는 매개다. 그렇기에 왕가위 구조는 (아비정전)-화양연화-2046로 연결할 수 있다.
왜 계정 이름이 2046인가?
때로 인스타를 공유하자는 지인들은 계정 이름을 보고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왜 2046이야?" 혹은 "그 사진 혹시 양조위?"
그때마다 “왕가위 팬이에요~!”, “양조위 좋아해서~”라고 명랑 쾌활하게 말하곤 하지만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설명할 일을 생각하면 상대가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가 지나치게 장황해질 일이 아찔하여 언급을 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실제 영화 속 의미를 살펴보면 2046은 왕가위 감독의 전작 화양연화에서 주모운이 머무르는 객실인 동시에 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양제가 끝나는 2047년 직전의 시점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왕가위는 명백하게 홍콩이 겪을 극단적인 불안의 상징으로 이 숫자를 썼다.
2046의 소설 속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한 곳으로 묘사된다. 그렇기에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2046을 향하는 열차를 탄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2046의 역사는 대학 때 첫 독립을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예로부터 사는 집에 이름 붙이는 일은 집에 사는 이의 정체성을 담고 나아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선언적인 의미를 갖는다. 좋은 이름은 좋은 기운을 불러일으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물둘, 지금의 집으로 독립하게 되면서 집의 호수를 받아 들고 전율을 느낀 이유는 당시 왕가위의 2046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집을 이루는 숫자를 조합하면 놀랍게도 2046이 된다. 당시 참새가 방앗간 들르 듯 재료를 사러 가던 홍대 호미화방에서 ‘2’, ‘0’, ‘4’, ‘6’ 숫자 4개 스티커를 사들고 와 현관 밖에 붙이던 때가 생각난다.
이때 설익은 생각이었지만 막연하게 이 공간을 처음 명명하고 정체성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이름처럼 산다는 말이 있듯 정말 나의 공간은 점점 2046 그 자체가 되었다. 과거지향적인 인간이 언제든 찾아와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곳.
해외로 얼마간 나가게 되면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할 때에도 여전히 이 공간은 2046이라는 이름을 달고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기억을 함께 했다.
정말 2046으로 여행을 떠난 이들이 과거의 기억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 속 그곳으로 떠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에.
사실 계정의 첫 번째 이름은 ‘대피소’였다. 말그대로 ‘대피소’ 역할을 했던 이곳은 곧 2046을 떠올리게 했다. 이후 2046이라는 집을 떠나 여행하며 보는 세상들을 기록하는 계정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여행 외에도 삶의 모든 순간들을 담는 새로운 현실세계가 되었다.)
왕가위 세계 속 2046의 정체성이 옮겨와 이 계정에서 역시 2046으로부터 과거로 여행하길 바랐던 것 같다.
오랫동안 왜 2046 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아왔던 터라 이 기회에 내용을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