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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Feb 05. 2024

설날에 꽃을 든 사람들

낭만적인 홍콩의 명절



 홍콩은 지금 한창 1년 중 가장 큰 명절, 춘절을 앞두고 있다. 명절이 점점 간소화되는 느낌을 받는 한국과는 달리, 여전히 중화권은 그 의미가 크다. 물론 홍콩에서 영국냄새를 찾아다니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북방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문화가 보여 내가 겪은 중화권 춘절에 대한 에피소드를 기록해 본다.



Ep.1

상하이 한복판에서, 설날 아침 울려 퍼진 총성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중국에 살던 시절, 춘절이 되자 거주한인 혹은 외지인, 나 같은 단기 외노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한족들은 고향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났다. 당시 함께 일하던 친구가 차로 운전해서 3박 4일 동안 걸리는 거리의 고향에 간다고 해서 대륙의 광대함을 느끼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가족들의 선물을 사느라 거의 몇 달치 월급을 탕진한다고 했다.

그렇게 꽤 고요해진 상해의 설날 아침, 별안간 정신없이 울려 퍼지는 총성에 놀라 급히 나의 중국생활을 도와주던 동료에게 위챗을 했더니 나를 안심시키며 단지 명절에 하는 "화약 놀이" 란다... 뭐라?


https://www.mk.co.kr/news/it/8235740


중국은 매년 새해 나쁜 운을 쫓는 액땜을 위해 춘절 기간 불꽃놀이를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다량의 폭죽은 중국 내에서도 이슈가 될 정도로 많은 초미세먼지를 배출한다. 지름 2.5 ㎛(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먼지를 뜻하는 초미세먼지는 일반 미세먼지의 4분의 1로 입자 크기가 매우 작아 기관지에서 잘 걸러지지 않고 체내에 쌓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국내 연구진이 춘절 기간이던 지난해 1월 30일 새벽 한반도 대기 중 초미세먼지를 포집했더니 칼륨의 농도가 평소보다 약 7~8배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령도부터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관측됐다.

명절에 터트리는 화약 때문에 미세먼지를 고민해야 한다니, 과연 대륙이다.




Ep.2


꽃의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 迎春花市 [영춘화시]


춘절 화시 花市는 중화권 문화에서 새해를 맞아 꽃 시장을 열어서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을 가리킨다. 트램을 타고 이동하다가 말도 안 되는 규모의 꽃시장이 보여 무작정 내렸다.


처음 목격한 노부부와 꽃,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낭만에 탄복했다.


그들이 꽃시장을 열고 꽃을 한아름 사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는 새해의 시작과 함께 화사하고 희망찬 분위기 속에서 꽃을 구매하여 행운을 빌고 봄을 맞이하는 전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내가 북방에서 못 느낀 이유를 친구에게 물으니 북방 쪽은 2월이면 한창 뼈가 시린 추위에 떨고 있는 때이기 때문에 땅이 꽁꽁 얼어있어 꽃이 필리가 만무하기에, 대륙의 남쪽에서 주로 행하는 풍습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금 홍콩은 20도를 웃돈다. 가지고 온 옷은 당연히 못 입고, 운동용 탑 위에 요가 숄을 겨우 걸치고 다닌다.)


홀린 듯 꽃 시장 아니, 꽃 운동장?으로 들어가니 펼쳐진 장관.

양파... 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어머님. 뭐 양파도 이쁘네요
난을 이 규모로 보게 되면 좀 무서워진다
얼마나 향기롭길래 화려한 나비가 머문다.
내 키만 한 꽃...
그녀는 꽃나무를 째로 가져가 행운을 기릴 예정인 듯 하다



다발이 된 꽃들은 어쩔 수 없이 뿌리가 제거된 채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관상물이기에 '사치'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여기서 꽃다발이 옳으냐 그르냐의 이야기까진 하지 말자.)


그래도 기꺼이 한 해 동안 가족들과 주변의 평온과 행운을 위해 입에 넣고 배를 불리는 일뿐 아니라 눈에 두고 즐거울 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꽤 낭만적이었다.



오늘 양조위가 즐겨 찾는 국숫집에 가는 길에, 작은 매장 앞에 세워 둔 자전거에 발걸음을 멈췄다.


이런 낭만적인 사람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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