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불효자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
ICU 3주 되던 날, 아빠는 일반 병동으로 올라왔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준비하려고 생각했던 것보다 진척속도가 빨라 고맙기도 하면서도 다른 한 편 간병이나 스케줄 걱정이 밀려왔는데, ICU의 담당 간호사님이 이 병원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는 안내를 해주셨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란 입원환자가 보호자나 개인 고용 간병인이 필요 없도록 간호인력에 의해 전문적인 간호서비스를 24시간 받게 됨으로써 입원서비스의 질을 향상하고 환자 및 가족의 간병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간호사와 간호보조인력이 전인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로 코로나 시기에 도입되었다.
중환자실 하루 10분 면회보다는 나아지지만 여전히 면회 가능시간은 하루 2시간 이내로 제한되고, 약간의 식사 혹은 위생관리를 도울 수 있다. 다만 저녁으로 면회 시간이 바뀌어 오늘 처음 저녁 시간 운전으로 이동을 해보게 되었다. 서울 시내에서 일을 마칠 즈음 이동하려고 네비를 찍어보니 '으악 1시간 48분이 걸린다?' 내가 예상한 건 막혀도 1시간이었는데... 퇴근시간은 예상하지 못했다. 부랴부랴 뛰어나와 출발하고 보니 면회시간은 이미 1시간을 날렸다. 그래도 1시간은 가능하겠지 싶어 요리조리 집중을 해서 운전을 하고 가니 6시 58분. 생각보다 양호하게 도착했다.
병실로 들어가니 반갑게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아빠가 보인다. 숨도 좋고 표정도 좋다. 질문에 대답도 잘해주고, 특유의 사람 좋은 대사들이 많이 나왔다.
편안한 분위기가 되니, 나도 아무 말? 이 잘 나왔다. 얼굴을 닦고 로션을 바르고, 발에는 무좀 연고를 발라주고. 컨디션을 체크하고 두루 살피고 있는데 '고맙다, 딸 밖에 없다, 간호사들이 고마운 사람들이다, 신나게 살아야겠다'와 같은 말들을 잔뜩 했다. 추임새도 넣고 리액션도 하다가 얼굴에서 좀 멀어진 발을 닦으면서 그냥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해 안심하고 "나도 옛날부터 다 알고 있었는데, 원래 불효자들이 깨달음이 다 늦지. 깨닫고 나면 늦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냥 그건 나에게 내가 하는 말이었을 거다.
잠시 조용하더니
아직 안 늦었어.
라고 그가 또렷하게 대답했다. 놀란 나는 "뭐라고?" 되물었고 아빠는 다시 또렷하게
"아직 안 늦었다고. 같이 신나게 살자고."라고 대답했다.
맞다. 안 늦었다. 퍼주고 또 퍼주는 부모가 불효자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는 투병일지도 모르겠다. 지독한 희생정신이다. 살던 대로가 아니라 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만든 유년기의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돕는다. 오글거리는 말도 서슴없이 할 수 있게 돕는다. "나중에 시간 나면 하지 뭐."를 "지금 당장 해"로 바꿔놓을 수 있게 돕는다.
그의 상태에 일희일비하는 나날들이지만 나는 그의 지독한 근기를 믿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아직 안 늦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