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컨설팅이 기업과 브랜드를 위해 실행하는 번역과 운용의 기술
기업은 진행하는 모든 사업을 전 구성원에게 완벽히 내재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현장에서 꽤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익명성을 보장하는 편한 자리에서 가능합니다.)
질문자 :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목적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답변자(실무) : “위에서 하라니까 하는 거지, 뭘 왜 하겠어요.”
답변자(임원) : “사업을 이윤추구 하려고 하지, 뭐 다른 이유가 필요해요?”
애초에 이 질문은 실제 정보를 얻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닙니다.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정도 및 방식을 파악하는 질문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무책임함이 아니라 일종의 신호로 해석합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별개라기보다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습니다.
1. 문제의식이 아직 ‘공통 언어’로 합의되지 않았다.
2. 그래서 의사결정 기준이 사람·상황·부서마다 흔들린다.
외부 컨설팅의 첫 역할은 바로 이 신호를 정의 가능한 문제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왜 하는가”를 철학으로만 말하지 말고, 현장에서 쓰는 한 문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사 내재화는 외부 컨설턴트가 혼자 꾸는 한가로운 꿈입니다.
어떤 경우 프로젝트 종료 후 몇 년이 흘러야 그 효과를 체감하기도 합니다.
현실적인 해법은 “단계별 내재화”입니다.
더블더블유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프레젠테이션에 담지 않더라도 보통 아래 네 문장을 한 장에 적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문제의식 선언문(Problem Charter)라고 부릅니다.
지금 단계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단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비협상 항목(Non-Negotiables) 은 무엇인가?
의사결정 기준은 무엇인가?
하지 않을 일(Not-to-do)은 무엇인가?
*Insight: 철학 → 원칙 → 기준 → 하지 않을 일까지 내려가야 현장이 쓴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BIS는 늘 대단하고 웅장합니다.
하지만 현장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단출한 다섯 문장을 원합니다. 예시(식품 기업 기준):
우리는 속성 경쟁 대신 경험 경쟁을 한다.
고객이 새로움을 발견하거나 쉽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실행 안은 매출이 아닌 경험 확장 지표로 평가한다. (체류·반복·UGC 등)
B2B에서는 사장님의 자신감을 높이지 못하면 보류한다.
가격·판촉은 보조수단이다. 제안서 앞장에 오지 않는다.
물론 현장이 곧바로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다섯 문장이 있으면, 누가 결재하든 판단의 흔들림이 줄어듭니다.
이후 소개할 브랜드의 사례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많은 경우 후발 주자로서의 전략을 구축할 때 One of them(속성 싸움) 이 아니라 Only 1(경험 프레임)을 선택해야 합니다.
경쟁의 축을 바꿔야 합니다.
*Insight: ‘Only 1’은 경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룰을 다시 쓰는 일입니다. 기준이 생기면 실행이 빨라집니다.
내재화는 거대한 캠페인이 아니라 작은 디테일에서 시작됩니다.
자산 헤리티지 유지 + 사용성 개선을 우선한다.
겉으로 티 안 나더라도, 현장이 덜 흔들리면 성공이다.
파트너(디자인/유통/제조)의 깊은 해석과 손길을 기록한다.
*Insight: 결과물이 아니라 기준이 남아야 이후 내부에서 다음 프로젝트를 쉽게 시작합니다.
2024년 하반기부터는 프로젝트 마지막 단계에 의사결정 보드를 내부와 함께 만드는 과정을 업무 범위에 별도 추가했습니다. 이 과정은 외부 컨설팅과 내부 실무자 모두에게 고되고 힘든 작업입니다.
그러나 모인 자리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결론을 짓고, 실습까지 마칩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프로젝트 오너십의 의지가 가장 강력하게 필요한 지점입니다.
Goal: 이번 분기의 단 하나의 목표
Non-Negotiables: 비협상 3가지
Decision Rule: 채택/보류 기준 체크박스 5개
Guardrails: 하지 않을 일 3가지
Metrics: 경험 확장 지표(예: 재방문·반복구매·UGC·체류)
Owner & Cadence: 책임자/주간 루틴
*Insight: ‘좋은 전략’은 A4 한 장으로 현장에 배포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장은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내재화 워크숍 참석 요청을 하면 “해야 하니까”라는 문장으로 방어합니다.
우리가 이 과정을 통해 바꾸려는 것은 단순합니다. "시키니까, 위에서 하라니까, 해야 하니까 한다" -> “그래서 무엇을 기준으로 실행할까”
기준이 생기면 불필요한 설득과 재작업이 사라지고, 작은 성취가 쌓입니다.
그 작은 성취가 곧 내재화입니다.
모든 사업을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깊이로 완벽히 내재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단계의 문제의식만 정확히 정의해도, 대부분의 흔들림은 멈춥니다.
철학을 현장 문장으로,
문장을 의사결정 보드로,
보드를 주간 루틴으로.
외부 컨설팅의 역할은 그 번역과 운용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프로젝트는,
그 괴롭고 지난한 과정을 기꺼이 함께 걸어준 내부 구성원들 덕분에
더 단단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