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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더 오지라퍼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시선이 주변을 향해 조금 더 따듯해야 하는 이유

by JuneK


오늘 명상 수업 때, 봉사와 선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 하나 건사하기가 버거운데 무슨 봉사를 하냐.”라는 의견을 예를 들어 설명했는데 이에 대한 반론은 결국 나 먹고사는 일이 나에게서 끝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 좋자고 먹은 것이 결국 비료로 쓰일 배설물이든, 나의 성미로든 발현이 되고 그것은 또 어떤 작용을 유발한다는 것.


놀랍게도 이번주 내내 붙들고 있는 승효상의 책에서 그 역시 비슷한 얘길 하고 있었다. 사유원을 만든 창립자가 꽤 오랜 시간 몽골에 푹 빠져 있고, 그 덕에 함께 몽골 여행에 동반한 일화였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찾아 열었다.


(유 회장의 권유로 둘이 함께 몽골에 갔다는 얘기 - 중략) 그곳에서 유 회장으로부터 감동적인 얘기를 들었다. 몽골의 초원은 겨울이 워낙 길어 눈이 쌓이면 5월이 되어야 녹는다고 한다. 초원의 풀을 뜯어먹고사는 동물들에게는 재앙의 기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동물들은 눈이 오기 전 풀을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어서 자기 몸을 세 배 이상으로 불려 놓는다. 그리곤 긴긴 겨울 동안 몸에 비축된 지방을 소진하며 버틴다는 것이다. 드디어 봄이 오면 동물의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있는데, 그때 초원에 남아 있는 눈을 들치고 나오는 최초의 풀은 약 성분이 있어 이 약초를 뜯어먹으며 건강을 신속히 회복한다. 힘을 얻은 동물이 봄풀이 솟아 나오도록 언 땅을 헤집으면 초원은 다시 온갖 풀과 야생화로 뒤덮이게 된다.

<승효상 -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중 발췌


이 대목 뒤에 승효상은 이 원시적 적막에서 느껴지는 생명이라는 힘에 눈물이 핑 돌 정도의 감동을 느꼈다고 표현한다. 나도 그러했다. 뒤이어 부끄러워했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다. 회사에서 일만 잘하면 됐지. 하던 시절이다. 오만하고 어리석었기에 당당했겠지. 우린 도무지 혼자 살아갈 수가 없다. 모든 것이 그렇다. 모든 것을 함께 이루며 산다. 빚질 때도 있고 도울 때도 있다. 하지만 착각하면 안 된다. 그게 빚인지 도움에 대한 대가인지 판단은 이르다. 정확하게는 알 방법이 없다.(실제로 그렇다.) 모를 땐 주고 보는 게 낫다. '줄 수 있어 내가 고맙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다행이다.' 언젠가부터 입에 붙은 말인데, 예전 같았으면 낯이 뜨거워 못했을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한 방울의 꾸밈도 없는 진심이다. 주고 나면 갚을 게 있으면 갚은 것이고, 갚을 게 없다면 쿠폰하나 적립하는 것이니 뭘로 봐도 땡큐인 상황이다. 이걸 알게 되자 사는 건 좀 더 편했고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들면 오히려 좋았다. 그저 고마워졌다. 언젠가 구글의 디렉터가 세바시에 나와 톨게이트에서 뒷 차들의 통행료까지 계산했다던 일화를 들려주며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하, 여유 있어서 모든 게 좋아 보이는구나.” 했었다. 아니다. 그는 덮어놓고 주고 보는 게 땡큐인 상황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보다 앞서 마음공부를 하고 자유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느끼고 보게 될 때가 있다. 마음이 두 가지다. 아 난 이렇게나 늦었구나. 하지만 이 방향이 틀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우리는 조금씩 더 주변을 살피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게 결코 너를 위한 일이 아니다. 결국 다 나들을 위한 일이다. 늦게라도 알게 되었으니 참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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