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으면 멀리 간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
6월에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며 참여했던 글루틴이 벌써 마무리된다. 시작은 그저 동기부여 정도였다. 나를 구조 안에 밀어 넣고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자. 정도로 시작했던 일은 그보다는 많은 것을 남겼다. 물론 내 코가 석자인 날들이 많았으니, 사려 깊게 동료의 글들을 살피진 못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과정에서 늘 새로운 환기가 있었다. 같은 글감으로도 '이렇게나 달리 혹은 이렇게나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구나.' 깨닫는 시간들이 의미 있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늘 같이 쓰고, 또 같이 고민했다. 작은 소감의 댓글에 고맙고 또 새로운 관점에 놀라움을 느끼기도 했다.
비단 글뿐일까. 어제 독립 후 처음 우리 수고에 대한 자축의 의미로, 또다시 도약하자는 응원의 의미로 동료 디자이너와 워크숍을 다녀왔다. 그녀는 시작 당시 나를 암흑에서 꺼낸 장본인이자 지금 여기까지 어찌어찌 흘러오게 한 주범이다. 또 생각이 많아지고 방어적인 태도가 올라올 때 늘 단순하고 명쾌한 해답을 주었다. 이번 워크숍 역시 그녀의 온건한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흐지부지 되었을 일이다. 작고 예쁜 새 같은 존재이지만 불현듯 성숙함으로 나를 깨어나게 하는 걸 보면, 생각이 많아지기도 한다. '그렇지, 방어적이기보다 내어주는 일, 그렇게 마음 편하게 생각해도 되는 일이지.' 늘 서로에게 고맙고 미안해하며 격려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같이 걷는 일의 가치를 느끼게 한다. 지난밤 좀 더 긴밀한 협업구조에 대한 논의를 했다. 그 결과물 역시도 실행 여부와 관계없이 그 과정까지도 몹시 만족스러웠다. 모든 세상 일이 혼자 할 수 없음을 알아간다.
어쩐지 내가 뭔가 더 베풀어야 하는 자리에 있었는데도 오래도록 마음에 고마움을 남겼던 예전 동료 역시 비슷한 마음을 느끼게 했다. 그녀의 집들이에 빈 손은 부끄러워 일정을 끝내고 서둘러 좋아할 것 같은 브랜드 매장으로 직행했는데, 들어서고 보니 가진 아이템이 겹칠까 걱정이었다. 교환환불이 안된다는 말에 미간을 모으고 그녀의 인스타를 점원과 함께 뒤지며 "이건 없겠죠? 혹시... 신상은 어떨까요?" 고르는 내내 부디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내가 이토록 이타적인 인간이었나?' 아니다. 그렇다기보다, 결국 그건 내가 어떤 식으로든 더 받았기 때문일 것. 그게 마음이던, 걱정이던, 고마움이던. 그런데도 자긴 해준 게 없다는 답장을 남긴 그녀도 참 못 말린다. 그 마음 역시 고맙고 감사했다.
앤 해서웨이가 로버트 드니로와 어떤 인터뷰(https://www.youtube.com/shorts/FRkAeT8P4O8)를 진행하며 "선배님이 연기를 해오며 잊히지 않는 대사가 있느냐. 있다면 이유는?"이라는 질문을 한다.
그는 "Uhm.." 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If I only knew then what I know now. That's it."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고 대답한다.
완전히 공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고백하건대, 그동안의 수많은 나 중 지금의 내가 가장 좋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이들에게 감사할 뿐. 셈을 더 정밀히 하는 대신 좀 더 내어주며 배려하는 일이 더 멀리, 더 오래갈 수 있다고 믿는다.
23년의 상반기 마지막 날을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뿐. 감사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