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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long.. partner."

첫 차와의 아름다운 이별

by JuneK

"아름다운 이별"


이 말은 굉장히 이상한 말인데, 이별이 아름답다니. 어폐가 있다고 표현할 일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아름다운 이별을 했던 바 그 사건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10대 시절의 나는 속박이 싫고 이상을 좇으면서도 굉장히 보수적인 데가 있어서 (아마도 어릴 적 청학동 서당의 영향이 클 것 같다.) 대학교 입학하고 귀를 뚫으려고 1년을 주저하며 고민하다 거의 1년이 되는 07년 2월 5일에 귀를 뚫었다. 수지발부 신체부모라 했는데 내가 액세서리를 하자고 '이 조막만 한 귓불에 감히 구멍을 뚫어도 되는가'라는 주체적이지 못한 생각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에 친구들은 오색찬란한 귀걸이들을 하고 다니며 한껏 새내기의 멋 부림을 즐겼더랬다. 1년 만에 귀를 뚫었더니 그 고민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엄마는 신이 나서 귀걸이 선물을 열심히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어딘가에 완전히 꽂히지 않는 다음에야 무슨 결정을 할 때 몹시도 미적거리고 돌다리를 두들기다 두들기다 겨우 건너는 성미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뭐라 규정하기가 어려워지고 말았지만.)


이런 나에게 테슬라의 차량 판매 방식은 너무나 적격이었던 것 같다. 당시 첫 차를 고민하던 나에게 무척이나 충분한 시간을 주었기 때문인데 그 과정을 한번 트레킹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1. 이제 그만... 차가 사고 싶어

출퇴근 버스는 환승 횟수가 많았고, 지하철도 버스 - 지하철 - 버스를 타야만 했기에 코로나가 터진 후로는 핑계가 생겨 주로 출퇴근에 택시를 타는 일이 잦아졌다. 택시는 늘 비슷한 경로, 그 시간대에 최적의 경로로 움직였기 때문에 언제 몇 차선을 타는지, 어떻게 진입해야 빠른지 대충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운전은 왜 안돼?'라는 생각이 스쳤고, 그때부터 작은 불씨가 마음에 심겼다. 기존 시장의 문제인식 기반으로 규제 속에서 창의적 솔루션을 제안한 타다서비스가 고마웠던 차에 기존 택시 기사들의 강력한 반발과 법규 위반이라는 논란의 중심에 서며 결국 서비스가 사라지고 소비자는 다시 일반 택시를 타야 하는 경험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더 강력하게 차를 사야만 한다는 불씨는 커져갔다. 택시 기사님의 안방 귀퉁이에 까치발로 서서 잠시 귀를 틀어막고 조용히 얹혀사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던 기억 - 성난 목소리를 쏟아내는 라디오, 급정거-급출발에 놀라는 새가슴, 내장재에 모두 스며버린 담배 냄새들이 점점 울상이 되는 아침을 만들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2. 첫차는 무슨 차를 사야 해요?

차에 대해 고민하는 기간 동안 주변에서 '초보는 무조건 사고가 날 테니 첫차는 무조건 중고', '여자는 귀엽게 미니' 이런 소리는 너무 많이 들었는데, 물론 동의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지만 나는 13년에 면허를 딴 중고 초보였고, 가족 차를 간간히 주말에 몰기도 했다. 연식이 오래된 역사적인 차였고 잘 가다 문득 길에서 서버리기도 하는 오피러스를 경험해서인지 크게 두렵진 않았다. 워낙 겁이 없기도 하다.


#3. 아우디 A3, 그 논란의 차

2018년 사실은 아우디 A3 TFSI 모델을 살 뻔? 했다. (관련 기사 - https://www.audi.co.kr/kr/web/ko/newsfolder/201808/20180827.html) 이 당시 아우디가 국내에 처음 A3를 선보인다고 했고 차량가격이 3천만 원대에 나오면서 그야말로 대란이었고, 그 대란의 행렬에 나의 이름도 넣었었다. 뭐든 멋진 걸 좋아하는 나는 점잖고 귀여운 해치백 형태가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기회였다. 행사 개시 하던 날 당장 100만 원의 예약금을 보내고 딜러를 볶아대기를 몇 달, 결국 아우디 코리아가 가격대 혼란을 막기 위함이었는지 중고차 판매 채널을 통해 판매하기로 결정하면서 나의 첫 차의 꿈은 조금 더 뒤로 미뤄졌다.


#4."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 세계적 전환 가속화라는 사명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테슬라가 된 테슬라 모터스는 19년 여름에 국내 론칭을 하고 당시 출고를 하는 최초 오너들에게 평생 슈퍼차저 무료 같은 프로모션을 했다. 기업인 중에서는 인싸 정용진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고, 나는 세상보다 3-4개월쯤을 먼저 사는 컨설턴트였기에 주변 역시 새로움에 대한 갈망으로 술렁였다. 출고를 한 사람, 시승하는 사람, 비판적인 시선으로 전기차는 인프라 부족이라 시기상조라 하는 사람 등 다양한 부류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테슬라가 접근하는 파괴적 혁신은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두들기다 두들기다 결국 가장 맘에 드는 브랜드를 만났기에 큰 결단으로! 얼리어답터라기에는 너무 늦었지만 20년 7월 모델 3을 예약하게 된다.



차를 샀을 뿐인데, 나를 일순간 에너지 전환 가속화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테슬라


#5."차는 언제 줄 거야 대체?"

예약하고 나서 내가 한 일은 주식을 차근히 처분하는 일이었다. 2년이나 묵혀둔 주식은 상한 동태였다가 명품 황태였다가 외줄 타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나름 최고가를 경신하던 시기에 잘 정리하게 되었다. 현금을 들고 그들의 연락만 기다렸다.


이런 메일을 받으면 득달같이 저 설문조사 응답 기한 안에 내가 차를 받을지, 받는다면 지불방식은 어떤 것인지 답변을 제출해야 했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저 설문을 3번은 한 것 같다. 그래도 내 차가 온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6. 다시 주식장으로 들어가는 현금

돈이 놀고 있기에는 주식 장은 꽤 좋았다. 차를 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이 돈으로 차라리 주식을 사야지 뭐 하고 있나. 다시 주식을 매수한다. 거의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7. 갑자기 일주일이요?

해가 바뀌어 21년, 두꺼운 외투를 이제 좀 정리해야 하나 싶던 차에 히트펌프가 탑재된 리프레시 버전이 평택항에 도착했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믿지 않았다. 3월 8일 어드바이저의 전화가 울렸다. "일주일 내로 결제 가능하시면 차가 바로 출고 가능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일주일이라니 7개월을 기다리라고 하더니 일주일 안에 목돈을 내어놓으라니 이 날강도 같은 놈들. 그래도 내 손은 이미 매도 버튼을 누르며 보조금을 신청하고 있었다.


#8. "오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렇게 7개월 만에 감감무소식이었던 내 첫 차는 일주일 동안 번갯불에 콩을 몇 번이나 구워대며 출고되었다. 번호를 직접 고르고, 이런저런 신청을 하는 동안 번거로운 일이 많았지만 꽤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코로나 시기라 탁송밖에는 방법이 없었고, 운전에 자신이 없어 틴팅샵으로 탁송을 받았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틴팅샵 사장님이 위임장을 쓰고 근무하는 나에게 세세하게 사진을 보내주셨다. 밤 운전이 걱정된 사장님은 대리를 불러 집으로 돌아가라고 도와주셨고 웃기게도 나는 첫 차의 첫 운전의 영광을 대리 기사님께 넘겨드렸다. 그 버거운 영광에 아저씨도 덜덜 나도 덜덜 이런 차는 너무 이상하다며 수다를 떨며.


스티어링 휠 비닐 떼는 영상을 찍어놨다. 이제 보니 귀여운 마음이다


#9. DDPP 고마웠어!

이렇게 구구절절 궁금할 일도 아닌 첫 차 출고기를 쓴 이유는 나의 이름으로 산 첫 차와 오늘 "아름답게 이별"했기 때문이다. 뭐 여러 이유들로 차를 바꿀 필요가 있었고 6월 한 달 동안 거의 모든 차브랜드들의 전기차모델을 시승하며 많은 공부와 경험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곳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 세계적 전환 가속화라는 사명에 동참" 시켜버린 그들의 가스라이팅이 나를 재구매 고객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2년 동안 힘들게 출고한 만큼 무정물인 차에게 인격을 부여하며 이 아이를 진심으로 애정했고 아꼈다. 뛰 뛰 빵빵이라는 이름도 지어주며:) 워낙 뭔가 주렁주렁 늘어져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차 안에서 웬만하면 뭘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서비스센터엘 가면 계속 새 차라는 얘길 듣던 친구다. 누가 탈 일도 손에 꼽았다. 손에 꼽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아주 소중한 사람들뿐이었으며, 잊지 못할 좋은 추억도 참 많았다. 외로운 시간에는 친구가 되어주고 프리랜서의 지루한 루틴엔 잠시 환기할 수 있는 나들이의 핑계를 주었으며 누군가 기꺼이 데리고 오고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을 실현하게 해 주었다. 모든 것이 고마웠어!


무엇이든 처음 같은 마음이 지속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거다. 첫사랑, 첫 차, '첫-'이 붙는 일은 단 한 번뿐이니까. 지금 만난 친구와는 좀 더 멀리 좀 더 재밌게 놀아볼 거다. 긴장은 줄었고 나는 좀 더 노련해졌을 테지. 풋풋한 시절을 함께 보내서 더 좋았어. 이제 멋지고 귀여운 새 주인과 이곳저곳 더 씽씽 달리길!


고마워! 잘 가!

https://www.youtube.com/watch?v=UGovM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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