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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가디건 같은 글을 꺼내 입어요.

겨울에 산 박준의 계절 산문을 여름에 꺼내 읽다.

by JuneK



어제 하루종일 시원하게 폭우가 쏟아지고 나니 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온 느낌이다. 하지는 지냈고, 작은 여름 - 소서는 아직이다. 며칠 전 낮게 뜬 보름달이 더 여름을 실감하게 한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센서는 아무래도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민감해지는 것 같다.

21년 겨울, 강릉으로 워케이션을 떠났을 때 그곳에서 만난 동행들과 엄청난 추위를 뚫고 버드나무 브루어리에서 저녁과 맥주를 먹고 마셨다.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책맥' 메뉴가 있었는데 책을 한 권 사면 맥주를 한잔 주는 몹시도 낭만적인 기획이었다. 각자 맘에 드는 책을 하나씩 들고 와 안주삼아 두런두런 맥주를 마셨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고른 책이 MZ 대표 시인 박준의 산문, '계절 산문'이었다.

IMG_5611.heic 다행히도 사진을 남겼다.

널려진 많은 책들 중 무얼 고를까 둘러보다, 문득 그 순간 잠시 평소 고르지 않는 책을 고르자, 조금 말랑말랑 해지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땐 너무 추운 겨울이라 움추러든 마음이 그의 감성을 받아내기 어려웠던 듯, 곧 완독 하지 못한 채 잊히고 말았다.


오늘 이 잊힌 책을 꺼내어 칠월 산문 부분을 펼쳐 읽어본다. 그는 칠월 산문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나열하고 있다. 우동은 외래어지만 그 발음이 가락국수로 대체할 수는 없을 만큼 우동 단어의 발음할 때 입모양이 좋단다. 지도 보는 일도 좋단다. 그중에서도 새로워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천렵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얘기였다. 처음 보는 '천렵'이라는 단어. 그의 책을 읽지 않았으면 영원히 몰랐을 것 같은, 농가월령가에 등장한다는 이 생소한 단어의 뜻은 뭘까?


천렵 (川獵)

여름철 피서법의 하나로 주로 성인남자들이 냇물에서 고기를 잡으며 즐기는 놀이.
봄부터 가을까지 즐길 수 있으나 여름철에 더 많이 놀이되며 주로 남자들이 즐긴다. 여름철 피서법의 하나로 산수 좋은 곳을 찾아 찬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 탁족(濯足)과 함께 행하기도 한다. 냇물이나 강가에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으며 헤엄도 치고, 또 잡은 고기는 솥을 걸어 놓고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데 때로 농악이 따르기도 한다. 천렵할 때는 바람이 조금씩 불어야 고기가 잘 잡힌다고 한다. 정학유(丁學游)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4 월령에 그 내용이 소상히 나타나 있다.

“앞 내에 물이 주니/천렵을 하여보세/해 길고 잔풍(殘風) 하니/오늘 놀이 잘 되겠다/벽계수 백사장을/굽이굽이 찾아가니/수단화(水丹花) 늦은 꽃은/봄빛이 남았구나/촉고(數罟)를 둘러치고/은린옥척(銀鱗玉尺) 후려내어/반석(磐石)에 노구 걸고/솟구쳐 끓여내니/팔진미(八珍味) 오후청(五候鯖)을/이 맛과 바꿀쏘냐.”

원래 천렵은 고대 수렵사회(水獵社會)와 어렵사회(魚獵社會)의 습속이 후대에 여가를 즐기는 풍속으로 변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도 천렵은 더위를 피하거나 여가를 즐기기 위한 방법으로 놀이되고 있으나 과거에 비하여 그 양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천렵, 천렵하고 몇 번 소리를 내어 보면 서늘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듯도 하단다. 요리에 재주는 없어 천렵으로 잡은 물고기탕이 썩 맛있지는 않지만 종아리 사이를 스치며 작은 물고기들이 지나가는 것 같다는 그의 설명에 잠시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상상을 해본다. 재밌다. 그의 짧은 산문에 잠시 피서를 다녀온 느낌이 든다. 계절을 자신의 언어로 느끼는 그가 부럽다.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따듯한, 에어컨 바람을 막아 줄 정도의 여름 외투 같은 글에 기분 좋은 여름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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